중도적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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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적 행위
  • 보은신문
  • 승인 2002.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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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완제(충북도청 공보관실/회북 애곡)
‘이분법적 사고’, 어떤 사물이나 사안에 대하여 단 두가지로만 분류해 놓고 각각 양자에 대한 가치가 부여되고 규정되어져야 한다는 뜻의 이 말은 중도적, 중립적인 가치나 개념은 당연히 변방으로 밀려나게 될 뿐만 아니라 이 같은 이분법적 사고의 틀로 형성된 제반 여건에서의 ‘중도’는 어디까지나 걸림돌이거나 논외적인 것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항간에서는 이분법적 구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이분법적 구조란 우선적으로 우주 만물의 기본원리인 ‘상대성 원리’를 내포한다. 무엇보다도 대립항을 설정하거나 구성하는 용어이므로, 이 용어에는 또한 우선적으로 역동성이 내재한다. 상대성 원리나 대립적 구조는 사실상 엄청난 에너지를 바탕에 깔고 또한 끊임없이 에너지를 분출하는 것이므로, 그것 자체로서 역사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또 존재한다"고 정의하면서 "대립구조 - 이분법적 사고가 우리 사회를 이만큼 발전시켜 왔으며 그 힘은 끊임없이 우리의 삶 속에서 생성하며 분출되고 있다" 고 역설하고 있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나 이 같은 논리는 다소 주관적으로 치우쳐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으며, 상당부분이 침소봉대적이지 않나 생각된다.이러한 논리는 우리 민족이 흥망성쇠의 부침을 거듭하면서 발전해 온 역사의 도도한 줄기가 결국 이분법적 사고가 근간이 되어왔다고 단정하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어떠한 사상이나 가치기준을 왼쪽 아니면 오른쪽으로 구분해 놓고 각각 나름의 체계적인 이론을 가지고 그렇지 않은 상대와의 대립항의 구조 속에서 서로의 모순을 극복하면서 각각의 에너지를 극대화시키는 것은 우리의 삶과 정신을 활력있고 윤택하게 할 수 있다"라는 논리로 까지 비약(?)하고 있다.

작년 9.11 미 뉴욕 맨하탄가의 세계무역센타 비행기 테러사건 당시 부시 대통령은 "우리가 응징할 테러와의 전쟁에 협조하는 국가는 우방, 그렇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한다"고 당당하게 큰소리 쳤다. 이게 무슨 오만 방자한 발언인가. 자칭 맏형이라면서, 그것도 자기네 국익을 위해 여러 분야에 걸쳐 손아귀에 넣고 떡 주무르듯 군림하여 여러 국가들에게 굴욕과 분노를 삼키게 하면서도 "자기네 뜻에 동조하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하고 응분의 제재를 가하겠다"는 일방적 통고는 불특정 다수 국가의 자존심을 아무렇게나 짓밟은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한 극단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안하무인격인 논리가 있을 수 있는가.

테러는 분명 없어져야 할 국가간 사상과 이념 대립의 산물이며, 9.11 테러 역시 매우 불행한 사건이었다. 아무리 그렇다하더라도 그런 이분법적 논리로 수많은 국가를 향해 으름장을 놓을 수 있는가.  테러에 반대하면서도 여러 가지 여건상 협조하기가 곤란하거나 사태수습의 추이에 따라 대응여부를 결정해야 되는 국가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며,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불가피하게 중립을 지켜야 할 국가도 있을 것이다.

본질과 다소 동떨어진 예를 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삶의 주변에도 이런 경우를 볼 수 있다. 우리 편 아니면 모두가 적으로 간주되고 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이며 이기적인 흑백논리는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인간적인 처신을 매우 난처하게 만든다. 이러한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극단적인 논리가 어느 새 우리의 의식 속에 상당부분 뿌리내려 있음에 그저 놀랄 따름이다.

유교 경전이나 행동원리에 중용지도(中庸之道)라는 말이 있다. 이는 행동이 너무 모자라도 문제지만 지나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는 말로서 지나침과 모자람이 없는 행동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고 있다. 또한 부처께서는 "나는 중도(中道)를 통해서 진리를 알았다. 중도란 양 극단(極端)을 떠난 가장 올바르고 알맞은 길을 뜻한다. 어느 한 쪽으로 지나치게 빠지거나 자신의 육신을 너무 괴롭히는 것도 모든 것을 그르치게 되는 것이다"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만고의 행동지침으로 가르치고 있다. 여기서 중도란 이것과 저것의 중간인 ‘가운데 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가야할 가장 올바른 삶의 길(正道)를 의미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이념이나 사상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일단 균형을 잃고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그 본래의 본질과 동떨어져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이분법적 세계는 단선화된 이념만을 강요하게 됨으로 정상적인 삶을 구속하고 억압하게 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이 있다. 모나지 않은 합리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중용적 생활자와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해방의지는 대다수 사람들의 원초적인 속성일 것이다. 따라서 편향적인 사상이나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가져다 주는 획일화된 이념과 사상을 우리는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경계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정이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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