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명작 제대로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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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작 제대로 읽자
  • 보은신문
  • 승인 2002.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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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어른들은 어린이를 위한 책하면 '세계 명작'을 떠올린다. 어른들은 어린 시절 당연히 세계 명작을 읽어야만 하는 줄 알고 자랐고 그 어른들이 학부모나 교사가 된 후에도 아이들에게 자신이 읽었던 세계 명작을 권하고 있다. 지금은, 별다른 비판 의식 없이 읽어 왔던 이 세계 명작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자리 매김이 필요할 때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서양의 어린이 책도 처음에는 구전되어 오던 옛 이야기가 문자로 정착되면서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20세기 초까지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나왔던 어린이 책 중 지금까지도 어린이의 사랑을 받으며 읽히는 책이 ' 세계 명작'으로 불리고 있다. 서양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나라보다 먼저 아동 문학이 시작되었고, 개인주의에 기반을 둔 독립, 평등, 자유의 근대정신은 봉건적인 아동관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와 어린이를 어른의 종속물로 여기지 않고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게 되었다.

어린이는 어른과 평등하며 그들의 세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되면서 국가의 장래로 보나 성인 자신의 문제로 볼 때 어린이는 매우 소중한 존재라는 의식이 자리잡게 되면서, 어른과 비교되지 않는 그들만의 세계를 인정받으면서 어린이가 즐길 수 있는 어린이를 위한 문학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서양의 '고전'으로 불리는 책들의 어떤 요소가 끊임없이 아이들의 사랑을 받게 하였는지, 과연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은 어떤 것인지 알아보자.

첫째, 어린이는 상상력이 풍부한 책을 좋아한다. 상상은 어린이의 세계에 충만해 있다. 어린이는 자신들이 즐겨 머릿속에 그리던 것을 보여 주는 책을 좋아하는데, 현실의 굴레로 묶는 것이 아닌 상상의 세계는 어린이를 기쁘고 행복하게 한다. 상상의 세계는 모든 것에 대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자라나는 어린이에게 상상력이 풍부한 동화는 창조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둘째, 예술성이 높은 책이다. 어린이는 문학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책을 직관적으로 인식하며, 의외로 예술성이 높은 책을 좋아한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새롭고 독창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완벽하게 형상화시킨 작품이 좋은 책이다. 그런 작품 속에는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재미가 있다. 명작을 만든 작가들의 치열한 예술정신은 어린이 책이 문학으로서도 훌륭한 의의와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며, 이런 예술정신이야말로 서양 어린이 책이 상업 자본주의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도 계속 성장하고 발전하게 한 저력이다.

셋째, 철저하게 동심의 세계에서 쓰여진 작품이다. 작가는 동심을 바라보는 어른이 아니라 동심 속에서 사는 어른이다. 작가는 어린이가 즐거워하며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그것을 사랑하는 어른이다. 어린이들은 위와 같은 특징을 가진 책들을 재미있게 읽고 이해하며, 감동을 받아 일생동안 마음에 간직한다.

그러나 서양 명작이 재미와 작품성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세계 명작을 읽은 뒤에 느끼는 감동과 우리나라 창작 동화를 읽은 뒤 느끼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은 사뭇 다르다. 유럽의 정서와 우리의 정서가 다른 것뿐만 아니라, 역사적 현실이 다른데서 오는 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문제와 정신은 우리의 창작 동화만이 다룰 수 있고, 그것이 우리의 문학이 발전해 가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따라서 서양의 어린이 명작을 우리 어린이가 읽으면서 느끼게 될 부정적인 측면은 반드시 있다. 첫째, 19세기에 쓰여진 작품들이 많기 때문에 현재의 민주적인 가치관과의 차이에서 오는 혼란이다. 작가가 시대에 앞선 의식을 가졌다 해도 시대적인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21세기를 지향하는 오늘의 가치관에 맞는 작품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둘째, 서구 중심의 사고 방식으로 쓰인 내용을 역사 의식 없이 받아들인다면 우리 것에 대한 열등 의식을 조장할 수도 있다. 『로빈슨 크루소』를 예로 들면 로빈슨 크루소는 유색 식인종이 흑인을 잡아먹을 때는 가만있다가 백인을 잡아먹을 때는 자신과 같은 종족인 백인을 구하기 위해 모험을 한다. 또 야만인이 스스로 노예가 되기를 원하고 야만인의 머리 위에 로빈슨의 발을 올려놓는 장면 등에서는 노예 제도에 대한 봉건적 가치관이 어린이에게 시대 열강의 논리만 있지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쓰여진 작품이 아니다. 따라서 유색 인종에 대한 백인 우월 의식은 우리나라 어린이에게 열등 의식을 조장할 수도 있는 위험 요소를 지니고 있다.

20세기 이후 세계 각 국에서 아동문학이 시작되고, 각 지역의 문화와 특성을 간직한 작품들이 출판되고 있다. 이제부터는 유럽에 편중되어 있는 책보다는 다양하게 제3세계의 어린이 책과 접하게 함으로써 여러 문화에 대한 감각을 갖게 하는 것이 좋겠다.

셋째, 몇몇 작품에는 역사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그대로 녹아 있어 역사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심어 줄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서양의 고전이 주로 애니메이션으로 편집되어 유아나 저학년 어린이들에게 많이 읽히고 있다. 이 책들은 원작의 줄거리만을 요약해 놓았기 때문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알맹이가 빠져 있다. 그림도 대부분 디즈니 만화 영화의 복사판으로 작품성이 떨어진다. 이와 같은 책들은 어린이가 좋은 책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버리는 것이다.

어린이가 서양의 고전을 흥미 있게 읽으려면 초등학교 3∼4학년 이상이 되어야 한다. 고전을 읽으려면 원작을 읽어야 하는데, 원작은 대개가 장편으로 작가가 그려내는 상상의 세계를 마음 속에 영상으로 그릴 수 있는 독서훈련이 되어 있어야 끝까지 재미있게 읽어 낼 수가 있다. 애니메이션화되어 있는 것이 아닌 원작을 읽으면 감동도 그만큼 더 커지게 마련이다.

이처럼 발달 단계에 맞는 재미있는 책과의 만남을 통해 어린이는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경험을 해 본 어린이는 책읽기를 좋아하게 되고, 어린이의 상상력을 북돋아 주는 재미있고 좋은 책을 통해 어린이는 생각과 마음이 자라난다.


<정해자의 신나는 글쓰기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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