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래, 트란티 반 부부

반 씨는 ‘미세변화 신증후군’이란 병명의 신장질환자다. 신증후군은 심한 단백뇨와 전신부종이 갑자기 나타나는 특징을 보여준다. 다행히 치료에 반응이 좋은 편이어서 환자의 약 75% 이상은 완전한 회복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부는 재발과 치유가 반복되기도 한다.
반 씨도 그랬다. 갑자기 몸이 퉁퉁 붓는 첫 발병은 지난 해 발생했다. 그리고 다문화 관련 이웃들의 도움과 관심 속에 대전성모병원에서 치유가 됐다. 그런데 올 들어 또다시 재발하고 만 것이다. 그래서 또 한 달에 한 번 씩 대전을 오가며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다. 문제는 돈이다. 병도 병이지만 솔찮게 들어가는 병원비가 반 씨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물론 반 씨도 의료보험 혜택을 받고는 있다. 하지만 진료비와 약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들 부부에게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 알약 한 줌씩을 하루 세 번 먹으며 약에 취해 산다
남편 성래 씨는 아직 이렇다 할 뚜렷한 직업이 없다. 요즘 괴산군을 오가며 하는 일도 사실 노동일이나 진배없다. 정기적 수입이 없다는 것은 가정생활 운영이 불규칙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성래 씨의 고향은 현재 살고 있는 회인면 송평리다. 4형제 중 셋째인 성래 씨를 비롯해 형제 모두가 장성한 뒤에는 외지에서 생활했다. 그러던 중 농사를 짓던 아버지가 3년 전 논에서 일하다 갑자기 돌아 가신 것이다. 집안에는 이웃 신대리에서 19살 때 시집와 4형제를 낳고 이 마을에서만 57년을 생활해 온 어머니만 홀로 남게 됐다.
그래서 성래 씨가 고향으로 복귀했다. 논농사 4,300㎡와 마늘농사를 짓는 밭이 있지만 오순도순 살며 같이 일할 여자가 없었다. 2006년 5월, 베트남 신부를 맞아들이기로 결심을 했다. “꽝빈( Quang Binh) 여자가 살림을 잘 한다”는 결혼중개인의 조언도 받아들였다. 이것저것 따져볼 것도 없이 반 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꽝빈 여자’ 반 씨는 정말 살림을 잘 했다. 시어머니가 ‘너무 깔끔한 것이 탈’이라고 할 정도로 이 날도 집안 정리정돈이 깔끔하게 잘 되어 있었다. 한 창 집안 구석구석을 어지럽히는 나이의 딸 지선(3)이가 있는데도 정말 그랬다.
# 아내의 고향 꽝빈성의 유네스코 지정 석회암 동굴 ‘퐁냐’
반 씨의 고향 꽝빈성(省)은 베트남 지도에서 볼 때 남북을 잇는 중부지역의 허리가 잘록한 부분에 있다. 성도는 동허이(Dong Hoi)로 수도 하노이에서 비행기로 40분, 기차로 6시간 거리다. 반면 호치민에서는 기차로 23시간이 걸린다.
꽝빈은 동쪽으로는 남지나해를 끼고 서쪽으로는 라오스 국경과 맞닿아 있다. 베트남 전쟁을 승리로 이끈 유명한 ‘호치민 루트(쯔엉손 루트)’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호치민 루트는 꽝빈 서쪽 라오스, 캄보디아의 국경인 쯔엉손 산맥을 따라 중부를 거쳐 남부 지역 송베까지 무려 2만여 ㎞의 호치민 군대 이동 보급경로를 말한다. 호치민 군대는 맹수와 독충이 우글대는 정글을 헤쳐나간 이 루트를 이용해 우회 공격함으로써 최강대국 미국에 패전을 안겼다.
꽝빈에는 또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매우 크고 아름다운 석회암 동굴 퐁냐가 있다. 이 동굴 역시 과거 월남전에서 무기를 숨겨두었던 곳으로 내부의 엄청난 크기에 비해, 입구는 매우 낮아 작은 배나 지나갈 수 있는 아주 인상적인 동굴이라 한다.
# 우리 며느리 몸만 건강하면 더 바랄 것이 없겠는데...
반 씨는 2006년 8월 한국에 입국했다. 그리고 물설고 낯설고 또한 말조차 제대로 통하지 않는 이국에서의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반 씨에게 있어 외국 생활은 크게 낯설지는 않았다. 한국에 오기 전 집을 떠나 객지인 호치민에서 4년 간 직장생활을 한 바 있고, 이어 말레이시아의 컴퓨터 회사에서 3년간 해외생활을 한 경험이 있었다. 잊을 수 없는 가슴 아팠던 일은 있었다. 한국에 시집온 지 1년 됐을 때 아버지 트란 반 환씨가 71세를 일기로 돌아가신 것이다. 그러나 곧 친정에 갈 수가 없었다. 첫 애 출산 하고 산후조리 중이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5개월이 지난 2008년 1월에야 비로소 외손녀를 안고 뒤늦게 아버지 묘소를 찾을 수 있었다.
성래 씨의 베트남 처갓집에는 장모 모티 투(70)씨가 막내처남과 함께 살고 있다. 또 자신과 동갑내기인 아내 반 씨의 큰 오빠를 비롯해 3명의 손위처남과 처형이 있다. 현 시점에서 처갓집은 큰 걱정거리는 없어 보인다.
지금 좌절하지 않고 이겨내야 하는 건 반 씨의 건강을 되찾는 일이다. 그래야 보다 큰 행복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말미까지 곁에 앉아 있던 시어머니가 “우리 며느리 몸만 건강하게 되면 더 바랄 것이 없겠는데...”라며 혼잣말로 읊조리신다.
글/사진 최동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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