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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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에
  • 송원자 편집위원
  • 승인 2009.10.0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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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를 타고 창밖을 바라보니, 성급한 감나무는 잎사귀를 빨갛게 물을 들여놓고 주렁주렁 열린 노란감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들판에는 누런 빛깔로 물들어 가는 벼이삭과 과일과 곡식들로 가을이 익어가고 있었다.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며 바쁘게 사는 동안 고개를 살짝 돌려보면 계절은 이미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아니 매일매일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이틀만 있으면 우리의 최대 명절인 추석이다. 곧 고향을 찾는 사람들로 민족의 대이동은 시작이 되고 조용했던 농촌마을은 집집마다 북적되며 활기에 넘칠 것이다.
명절이 돌아오면 주부들은 음식을 만들고 끼니때마다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곤 하는데 그 일이 정말 힘들다. 전에는 그게 무지 싫었고 동서 간에도 보이지 않는 갈등이 흐르곤 하여 명절지내고 오는 길부터 부부싸움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시간은 나를 하나씩 하나씩 가르쳐 주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를 돌아보니, 난 내 입장보다 시댁식구들을 먼저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의지가 없었고, 일하기 싫어하는 얄미운 동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 일을 하면 남편한테 생색을 내며 주변사람들을 피곤하게 했다는 것도 반성하게 되었다. 별로인 며느리에서 조금씩 나를 버리고 적응을 해서 이제는 나름대로 꾀부리지 않고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시댁의 형제가족들을 만난다는 것도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결혼 후, 추석을 보내면서 큰 애와 작은애 수능을 보던 해에는 시댁에 가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지냈다.
친구한테서 들은 이야기인데, 어떤 여자가 교통법규를 어겨 단속경찰이 차를 세웠더니, 그 여자가 핸들을 잡고 머리를 잠시 숙이고 있다가 경찰을 보고 하는 말이 “나 누군지 알아요?” 했단다. 경찰이 “누구신데요.”하고 물으니 “나 산전수전 다 겪고 공중전까지 치루고 있는 수능생엄마인데 한 번만 봐주세요.”하더란다. 그 말을 듣고 경찰은 딱지를 떼지 않았다고 하는데 사실유무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수능생의 엄마는 자녀 뒷바라지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서 힘들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한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큰 아이가 수능생이던 해에, 아이는 추석날 하루밖에 쉬지 않았기에 남편과 작은애만 시댁으로 보내고 난 추석전날, 새벽부터 아이학교에 가서 밥 당번을 하였다. 네 명의 자모가 40명 학생들의 아침과 점심 그리고 저녁밥까지 먹이고, 설거지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너무 힘들어 시내버스에서 내려 잠시 방향감각을 잃기도 했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수능을 앞두고 열심히 공부하는 내 자식을 비롯한 여러 아이들의 밥을 해주었다는 것에 대해 보람을 느꼈다.
아이는 밤 10시가 넘어 집으로 왔다. 기숙사에 있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큰 아이와 둘만의 시간을 가지며, 하룻밤 내 곁에 두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내 마음은 보름달처럼 꽉 차있었다.
추석날 아침에는 따뜻한 밥을 짓고 반찬 몇 가지와 미리 준비한 송편과 탐스러운 사과 배 등 과일을 담은 상차림을 하고 큰 애와 둘이서 잠시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였다.
“조상님들! 우리아이가 수능을 앞두고 차례를 지낼 수 없게 되었는데요. 너그럽게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11월에 치루는 수능을 잘 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렇게 말을 한 뒤, 아침을 먹고 난 그저 그 아이를 편안하게 두려고 노력에 노력을 했었다. 그날 내 아이가 내 곁에서 내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이 아주 기쁘고 행복했다.
그 때 이후 3년이 지난 추석에는 시댁에 남편만 혼자가게 되었다. 큰 애는 군대에 있었고 작은 녀석이 수능생이라 갈 수가 없었다. 수능 공부를 하고 있는 작은 애 뒷바라지하는 나를 보고 친구들은 둘째라 그런지 첫 아이 때보다 관심이 못하다며 좋게 얘기하면 좀 더 여유로워진 것이라 했다.
그래서일까? 추석 전날, 느긋한 마음으로 아이한테도 하루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아이와 킥킥 웃어가며 재미있게 놀았다. 아이가 자기 방으로 돌아간 뒤, 혼자 남겨진 시간부터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왠지 왕따 당한 듯한 공허함이 가득했다.
추석날 아침에는 큰 애 때와 똑같이 상을 차려 기도하고 현재 우리를 있게 한 조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수능대박에 대한 간절한 기원도 해보았다. 그리고 보너스로 의경생활을 하는 큰 애가 아침에 와서, 오랜만에 두 형제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두 번에 걸쳐 내 아이들과 조용히 추석을 보냈지만 그래도 명절날은, 많은 시간을 힘들게 일을 하면서 보내야 한다고 해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과 함께 보내면서 웃고 떠드는 것이 명절다운 것 같다. 그리고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한 고향에서 추석을 보내는 것은 더더욱 넉넉하리라 생각한다.
고향을 지키고 있는 우리들은 고향을 찾은 많은 분들에게 군민 간에 대립된 모습보다는 정겨움이 넘치는 고향에 맞는 훈훈한 소식을 한 아름 안겨 주어야 되지 않을까? 명분없는 개인주의 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배려하며 화합하고 있는 모습을 ......
/송원자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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