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유적 사적지 지정과 기념사업 충실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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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유적 사적지 지정과 기념사업 충실기해야
  • 송진선
  • 승인 2001.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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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문화원, 보은의 정신문화탐구 세번째 세미나 개최
보은 문화원은 보은의 정신문화 탐구 시리즈 세번째인 보은 장내리의 동학 집회와 오늘의 교훈이란 세미나를 개최했다. 지난 14일 문화원 시청각실에서 개최된 세미나에는 기관단체장을 비롯해 문화원 회원 뿐만 아니라 동학 농민군 유족회원 등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임병무 중부매일 논설실장의 사회로 신영우 충북대 교수와 차용걸 충북 대교수, 신순철 원광대 교수, 정남기 동학농민군 유족회장 등이 주제발표를 했다. 주제발표 요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보은의 동학 집회와 그 성격의 이해란 주제를 발표한 신영우 교수는 1893년 보은집회의 결정 배경, 장내리 집회의 상황, 보은 집회의 성격 등에 대해 설명했다. 우선 장내리가 동학의 총본부로 선정된 배경은 교주와 동학교도들이 오가기 쉬운 교통 요충지였고 유사시 상황 파악에 적합했기 때문이 가장 크고 동학교도 중에 보은을 비롯한 옥천, 영동, 황간 등 인근 지역사람이 많았던 것도 고려됐을 것으로 분석했다.

또한 장내리에 모인 동학교도들은 다른 지역에서 열린 집회와는 다르게 삼가천과 옥녀봉 사이의 비탈진 곳에 돌성을 쌓았는데 성 축적의 목적이 외부의 공격을 막기 위한 방어시설이 아니라 집회를 위한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다. 장내리에 모여있던 교도들은 전국에서 3만명 정도가 모여들었기 때문에 질서유지도 고려해야 하고 서로 다른 집단을 결속시키기 위해서는 공동작업이 필요했으므로 교도들이 성을 쌓는 협동과정을 통해 서로 가까워 졌고 지도부에서는 좁은 지역에 대규모 인원이 집결해 있기 때문에 효율적인 통제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교수는 동학교단은 1892년 10월부터 1893년4월초까지 조선국가 체제안에서 일련의 집회와 상소운동을 벌였으며 이중 1893년3월11일부터 4월2일까지 벌인 보은 장내리 집회는 제2세 교주 최시형이 직접 참여해서 교단 지도부와 함께 도회소를 설치하고 시위를 통제, 수만명이 모인 이 집회는 보은 관아나 충청감영 뿐만 아니라 왕조정부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교조신원운동에서 동학교도들이 주장한 것은 동학의 공인과 왜양의 배척, 관부의 백성 침탈 금지라는 세가지였는데 이중 장내리 집회에서 표면에 내세운 구호는 척왜양창의 였다는 것.

장내리 집회는 직접 큰 성과는 얻지못했지만 동학교단은 전국의 동학교도들을 집결시켜 수만명이 참여하는 시위를 질서있게 진행한 경험을 쌓았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이러한 경험의 축적은 갖가지 성향의 사람들이 동학에 들어와서 사회운동을 벌여나갈 토대를 마련했다. 또 부패한 관리들과 토호들의 탐학 및 불법행위에 대한 항의는 장내리 집회의 주요 목적 중의 하나로 농민항쟁이 계속되던 당시 전국 조직망을 갖춘 동학은 체제와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중심으로 변신할 수 있었으며 교리는 그 기본 줄기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실천 사업이었다고 결론지었다.

▲보은 동학 관련 유적의 사적 지정 문제 주제발표를 한 충북대 차용걸 교수는 보은동학 유적의 문제점과 문화재 지정의 여건, 문화재 지정 신청에 앞서 해야 할 일 등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차교수는 보은동학 유적의 몇가지 문제에 대해 우선 공주 우금치나 정읍 황토현의 경우 지표 위에 남은 것이 거의 없는 것과는 달리 보은 장내리의 경우 돌성, 벙어리 성이라는 보루, 옛마을 흔적 등 이와 관련된 자세한 관찰 내용이 남아 있어 유적을 복원할 수 있는 자료가 남아있어 다행이라는 것. 그러나 문제는 첫째 장내리의 경우 범위를 어디까지 포함 할 것인가 둘째는 근처에 있는 상현서원과 정부인 소나무, 선씨가옥 등 유교 문화재의 관계도 문제여서 동학을 종교로 인식하면 같은 지역에서 자칫 상충되는 견해가 나올 수 있다는 것.

또 이들 유교 문화재가 당시의 상위계층과 관련된 문화재이기 때문에 동학관련 유적은 하위 신분관 관련된 유적으로 볼 수 있는 여지도 있는 것도 문제이며 서양계통의 기독교나 천주교의 시각에서 동학과 그 후신을 자처한 천도교와의 시각차이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역사적 현실에 대한 당시의 상황을 토대로 설득하고 공감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는 달리 북실 중심의 전투와 관련된 유적의 경우 더 구체적으로 당시를 재현할 수 있는데 우선 소천도 찰방을 한 김세희 가옥의 터가 누청리 1234-6번지임을 알고 있으며 거기서 이전돼 잔존한 사랑채가 보은읍 삼산리 157번지에 남아있어 구체적으로 이 유적은 빨리 건물을 사들여 원상으로 복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직 실측 조사도 하지 않은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다라니 뒷산의 작은 보루 터와 다라니에서 앞으로 뻗은 구릉지역에 걸쳐 대곡 성운선생, 충암 김정 선생 등과 관련된 유적이 있으며 남쪽 바로 앞에 삼년산성이 있고 고분군과 천연기념물 백송 등의 문화재가 즐비, 이들 전체를 묶는 견학 코스는 고대에서 현대까지를 통시대적으로 배울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졌다며 이 일대를 복합적인 보은 지역의 문화를 설명할 수 있는 전반적인 조사는 물론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차교수는 보은의 동학관련 유적들은 문화재 보호법 제 2조 문화재에 대한 정의에서 제3항의 기념물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보은의 동학관련 유적이 가지는 학술적, 역사적 가치를 높이는 일은 이들 시도지정 문화재를 거쳐 국가 지정 문화재로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여건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또 현재 보은의 동학 관련 유적들은 아직 법적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문화재 등록이나 가지정을 거쳐서라도 문화재로서의 지정 절차를 밟아 제대로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대접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동학관련 유적 외에도 이미 지정돼 있는 문화재와 아직 주목받지 못한 문화유산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전환을 요구하면서 이들 유물 유적과 종합적인 연관을 지어 개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충고했다.

▲ 동학농민혁명 유족회 정남기 회장은 동학농민 혁명의 정신 계승을 위한 방안 중 서훈 문제를 중심으로 주제발표를 했다. 정회장은 학계에서도 동학 농민혁명의 2차 봉기는 일제의 침탈에 대한 반외세를 지향했다고 인식하고 있어 서훈하는데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동학 농민군을 서훈하는 데에는 우선 국회 청원 입법을 통한 특별법 제정이다. 다음으로는 서훈에 관한 특례법을 개정해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라는 명문에 1894년부터라고 명시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서훈과 명예회복에는 반드시 물질적 보상이 뒤따르나 동학 농민혁명 유족회에서는 물질적 보상보다는 명예회복을 더욱 가치있게 생각하고 있다며 당시 비적으로까지 몰렸던 동학 농민군을 서훈하는 의미는 국가와 민족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원광대 신순철 교수는 보은 동학 농민혁명 기념사업의 방향에 대한 발표에서 동학 농민혁명의 최대 승리지역인 전주성 점령의 전투 기록이 있는 전주시나 삼례집회지인 완주군 등은 관 주도의 일방적인 기념사업이 아닌 사업 추진과정에 민간이 참여한 추진위원회를 둬 설계공모과정 등에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다양한 의견과 공감대가 형성된 가운데 기념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우선 짚었다. 이는 관청 발주의 사업이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고 사업 추진의 유연성과 창의성을 보완한다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라며 보은의 동학 공원 사업도 지역주민과 전문가 그리고 관련 단체가 참여하는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이를 통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역사공원의 주제를 동학 농민혁명으로 설정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보았는데 우선 보은은 동학의 종교운동과 갑오년의 농민전쟁을 연결하는 장소가 될 수 있다며 19세기 후반 농민봉기의 대표되는 민중운동의 흐름과 민중 종교로서의 동학운동의 흐름을 연결하는 고리라는 점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

동학 농민전쟁의 전국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인 북실 전투지는 우리 역사상 최초이자 최대의 민중 저항이 있었던 곳으로 이 사건의 객관적인 평가에 걸맞는 기념사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공원은 전시관 및 체험 학습장으로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역사공원에 어떤 시설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공원의 성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문제로 중요한 과제는 무형의 메시지를 어떻게 연출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것.

전시관의 진시연출 시나리오와 체험 학습장, 상징 조형물은 전문가의 영역이지만 발주처의 의지에 따라 새로운 명소를 창조할 수 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추진위원회를 통해 관련 자료를 수집과 국내외의 비슷한 시설들을 방문하는 등의 활동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또 전시관이나 박물관 사업이 추진된다면 시설을 완공하고 인력을 선발하는 행정 절차 때문에 일을 그르치치 말고 먼저 전문인력을 선발, 설계단계부터 참여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보은 장내집회의 경우 여러번 다뤘던 주제였기 때문에 큰 반향이 없었지만 보은동학의 사적지 지정 문제와 기념사업 방향 제언에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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