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티고개 넘는 길손들이 쉬었다 가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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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티고개 넘는 길손들이 쉬었다 가던 마을
  • 박상범 인턴기자
  • 승인 2008.03.14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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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티고개, 그 옛날의 명성은 사라져가고

세월은 참으로 부지런한가 보다!

불과 보름 전에 흰 눈이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어 놓더니, 이제는 완연한 봄이다.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이 따스하다, 봄이 왔음을 느끼게 해준다.

속리산면 갈목리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섰다. 속리터널이 뚫려 편하게 갈 수 있는 중판리쪽을 버리고, 이젠 열두구비를 넘나드는 차량이 많이 줄어 그 옛날 명성이 퇴색되어가는 말티고개로 방향을 잡았다.

한옥마을을 지나 장재저수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겨우내 얼음 밑으로 자취를 감추었던 장재저수지의 푸른 물결이 잔잔하게 일렁이고 있다.

마치 봄이 왔다고 기지개를 펴는 것 같다.

서서히 오르막이 시작된다. 이제 말티고개를 오르고 있는 것이다.

말티고개를 다 오르도록 차 한 대 비껴가질 않는다.

버스가 커브를 돌 때 반대편 차선의 차는 서서 기다려야 하던 말티고개는 변함이 없는데 말이다.

이제는 이리로 다니는 차들이 적어, 커브를 도는 차를 위해 잠시 서는 일도 없을게다.

고개를 넘어서니 둘리공원, 솔향공원이 반겨준다. “날이 좀 더 풀리면 이 넓은 공원에 아이들의 웃음소리, 카메라 셔터소리로 가득 차겠지!”하는 생각을 하면서 갈목리 경로당을 찾았다.

농사철이 시작되어서 일까, 어르신 두 분만이 경로당을 지키고 계신다.

길이 갈라지는 목에 위치한 마을이기 때문에 '갈목리'가 되었다는 이 마을은 김경렬(52) 이장과 김춘만(73) 노인회장, 박영자(36) 부녀회장 그리고 정창복(54) 지도자 등 17가구 30명의 주민들이 한 해 농사준비에 다들 바쁜 모습이었다.

마을 6집이 고추농사를 짓는데, 지금 고추묘를 포트에 이식하는 시기여서 일손이 부족한 주민들이 서로 품앗이를 하기 때문에 경로당이 한가하다고 하신다. 또 몇몇 남자 어르신들은 함께 밭둑을 태우러 가셨단다.

농사철이 시작되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는데, 그나마 이제는 자주 보기가 힘든 모습이 되어 버렸다.

갈목리는 장수하시는 어르신들이 많다. 대부분이 70, 80대로 최창원(88, 남자), 윤귀인(88, 여자) 어르신들이 이 마을의 최고령자이시며, 50대 미만은 부녀회장인 박영자씨가 유일하다. 어르신들이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만큼 한창 일할 수 있는 일손은 적어 농번기가 돌아오면 또 어떻게 농사를 지을지 어르신들의 목소리에 걱정이 가득 묻어있다.

#양봉, 장뇌삼 농사에 주력

갈목리는 산간충적지에 논이 약간 형성되어 있고,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답게 밭이 많이 개간되어 있다.

보은에서도 속리산은 3, 4도 낮은데 갈목리는 이보다 기온이 더 낮다.

서리피해가 자주 발생하여 비교적 고소득 작물인 고추농사를 많이 하지 못하고 있단다. 그래서 주로 감자와 무, 배추 같은 고산성 밭농사를 많이 하고 있다.

그런데 산과 인접한 곳에 밭이 있다보니 멧돼지, 고라니, 노루들이 산에서 내려와 농작물에 많은 피해를 주고 있어, 군에서 대책을 세워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군에서 피해를 많이 보는 밭주위에 철조망을 둘러주면 좋을 텐데!” 하신다.

옛날에는 대추나무가 집집마다 많이 있었으나, 재래종 대추로 상품성이 떨어지고 나무가 오래되어 지금은 수확량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이런 지역의 여건으로 갈목리 주민들 대부분이 소득이 높지 못해 자식들 가르치느라 진 빚을 아직도 갚고 있는 집들이 많다.

그래서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의 특색을 살려 양봉과 장뇌삼 재배를 시작했다고 한다. 노인회장님이 10여년 전부터 양봉을 시작했고, 이장님과 몇 집이 작목반을 만들어 인근의 산을 임대하여 장뇌삼을 재배하고 있다.

KBS '6시 내고향'에도 소개가 되었고, 판매는 주로 인터넷을 통해 하고 있단다.  소득이 높지 않았던 갈목리에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

“잘 되어서 갈목리 주민들이 모두 부자가 되셨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건넸다.

또 가을에는 젊은(?) 어르신들 5명 정도가 송이버섯과 능이버섯을 채취해 부업으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외지 사람들이 많이 캐가 살림에 큰 도움은 안된다며 아쉬운 소리를 하신다.

갈목리가 농사짓기에는 척박해도 전원생활하기에는 안성마춤인가 보다. 살기가 힘들어 마을을 떠난 빈자리에 최근 3∼4년간 4가구가 이사해와 그 빈자리를 채웠다. 새로 이사온 가구는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마을행사에 열심히 참석해 이제는 오래전부터 같이 살아온 이웃사촌이 되었다.

#“좀 앉아서 쉬었다 가게나!”

갈목리는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보니 인근 지역으로 넘어가는 고개들이 많다.

유명한 말티고개를 비롯하여 웃갈목에서 삼가리 작은고개말로 넘어가는 삼가리고개, 웃갈목에서 삼가리 불목이로 넘어가는 불목이고개, 장안면 서원리로 넘어가는 회너미재 등 많은 고개가 있다.  회월티(回越峙)로 불리기도 하는 회너미재는 재미있는 지명유래를 가지고 있는데, 옛날에 속리절 스님과 구병절 스님이 이 고개에서 서로 만나게 되면 허행하고 되돌아 갔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이렇게 여러 고개로 둘러싸인 갈목리에 주막이 없었을 리가 만무하다. 지금은 밭으로 변해버렸지만, 50여년 전만해도 갈목 삼거리에 주막이 3집이 있었단다.

버스가 다니지 않아 걸어다니던 시절에 보은이나 관기 방향으로 드나들던 사내리, 상판리 등 주민들은 이 주막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쉬었다가던 곳이다.

아침 7시에 나가서 밤 9시나 되서야 도착하게 되는 30리(12㎞)를 걷는 길손들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으리라.

또한 법주사를 찾는 외지 사람들은 주막에서 묵고 길을 나섰다고 그때를 회상하신다.

“그 시절에 주막장사가 잘 됐었지!, 논 10마지기를 준대도 주막하고 안 바꿨지!”.

이랬던 주막들이 버스가 다니기 시작하면서 이용객이 줄어들다가, 도로확장 공사시에 건물이 낡고 흉하다고 강제철거를 했다고 한다. 잘되던 장사에 대한 권리금 한푼없이.

“그 시절에는 다들 그렸지, 뭐!”.

읍내에 볼 일보러 갔다 오신다며, 문용복 어르신이 경로당으로 들어오신다.

“이장이 바빠서 못 왔나보네!, 뭐든 물어봐, 마을소식은 내가 그래도 좀 알고 있어!”

#온천개발이 왜 이리 더딘지

갈목리에는 쓰레기 매립장이 있다. 1996년에 조성되어 가동되던 이 매립장이 2004년 침출수처리 문제 등이 발생하여 갈목주민들의 반발로 매립이 중지됐었다.

약 3년 반 정도 중지되었던 이 매립장이 군에서 갈목리에 주민지원사업을 약속하는 등의 대화와 설득으로 2007년 7월부터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다.

갈목리 주민들은 쓰레기 매립장의 여파로 기침을 하는 등의 주민건강과 농작물에 대한 피해가 나타나 시위를 했었다고 말한다.

"그때 기침하는 주민들이 많았어, 농작물 피해도 만만치 않았고!”

이런 피해에 대한 보상을 군에서 약속해 마을에서는 한우 판매 및 먹거리촌을 구상하고 있다. 토지만 매입하면 바로 사업에 착수할 수 있으나, 주민들이 열악한 주머니 사정으로 이 사업을 운영할 토지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집집마다 농협 빚이 몇 백씩은 되는데, 주민들이 돈을 내서 땅사기가 쉽지 않지!”하고 넋두리를 하신다.

그래서 주민들은 갈목리에 온천이 개발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3년 전에 약 3억 정도를 들여 온천공을 팠다. 980m지점에서 28.5℃온천수가 나와 주민들은 잔뜩 개발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 수질 및 수량 모두 검사에 합격하여 온천개발로 갈목리는 물론 속리산면 전체가 활성화되는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문용복(73) 어르신은 “군수가 온천개발 업자가 신청하면 바로 사업허가를 내주겠다고 약속했어!, 한우촌하고 온천개발로 관광수입이 많아져서 우리 동네도 좋아지고 속리산 전체가 발전되는 것을 기대했지!”라고 그 때를 회상했다.

그런데 온천공 착공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온천개발권을 서울에 사는 업자에게 2년전에 넘겼으나, 무슨 이유에선지 아직 개발을 하지 않고 있단다.

온천 개발업자와 계약서를 쓸 때 개발 시기를 명시하지 않은 것이 큰 실수였다고 후회를 하고 있다.

지금은 온천공을 막아 놓은 상태로 물줄기가 애기오줌 줄기처럼 조금씩 흐르고 있다. 이 물로 세수를 하면 피부가 참 좋아진다고 슬쩍 자랑을 하신다. 하루 빨리 온천이 개발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의 하나인 보은군, 보은군에서도 상대적으로 열악한 조건을 갖고 있는 속리산면 갈목리. 그러나 넉넉한 인심으로 자연에 순응하면서 사는 마을, 갈목리!

돌아오는 길에 둘리공원과 솔향공원을 바라본다. 머지않아 이곳을 가득 채울 아이들의 모습처럼 갈목리에 활기가 넘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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