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탐방(112)-삼승면 천남1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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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탐방(112)-삼승면 천남1리
  • 송진선
  • 승인 2007.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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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팔아 자식 공부시켰을 정도로 학구열 대단
농촌의 겨울 모습은 참 쓸쓸하고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황량한 겨울 들녘은 찬바람의 매서운 기까지 느끼게 한다.

삼승면 천남1리(이장 유재선)를 찾았을 때는 해가 질 준비를 하는 오후 4시 가까이 되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한해 농사를 끝낸 농촌 마을은 삼 계절 동안 고생했으니 겨울 한 철만이라도 따뜻한 경로당에 모여서 담소를 나누거나 취미생활을 하겠거니 생각했지만 경로당에는 사람이 없었다.

기자가 찾아가니까 겨우 이장님이 경로당에 불을 넣고 계셨다. “기름 값이 워낙 올랐어 야죠. 운영비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아직 경로당을 운영하지 않아요”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기름 값은 농촌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화합을 다지는 기회마저도 빼앗아 가고 있는 것이다.

언제쯤 고공행진을 멈추고 서민들이 덜 부담을 느끼며 기름을 땔 수 있을까 참 걱정이다. 마을주민 대부분이 건강을 위해 게이트볼을 친다는 얘기를 듣고 단체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다시 날을 잡았다. 그 날이 12월12일이다. 오후 2시가 넘어선 시각. 마을 입구에 있는 게이트볼 장에는 어르신 서너 명이 게이트볼을 치기 위해 모여 계셨다. 다 모인 것이 아니란다. 유재선 이장님은 기자가 도착하자 경로당으로 부리나케 휴대폰을 걸고 다시 여자 어르신 대 여섯 명이 내려오셨다.

11월 끝자락 취재를 위해 마을을 찾았을 때 기름 값을 절약하기 위해 경로당 운영을 하지 않았던 마을은 이제는 경로당을 운영하고 계신단다. 참 다행이다 싶었다.

유재선 이장과 이응구(70) 노인회장, 이시중(46) 새마을지도자가 주민화합과 마을 발전을 위해 지역 봉사자로 활동하고 전체 30호 58명 가량이 거주하고 있는 천남1리는 어떤 마을일까?


# 게이트볼장 조성해 건강 다져
천남1리에서는 다른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시설물이 하나 있다. 4년전 군비 보조 안 받고 순수하게 마을 기금으로 만든 100평 규모의 게이트볼 장이다. 주민들은 틈틈이 게이트볼을 치며 건강을 다진다.

스틱을 이용해 볼을 쳐 게이트를 빠져나가도록 하는 경기인데 운동량이 과격하지 않아 노인들이 적절하게 즐길 수 있는 운동이다. 단순히 힘만 쓰거나 손발만을 쓰는 운동이 아니고 머리를 써서 작전을 잘 하면 경기에서 불리한 점을 만회하여 승패를 180도 뒤집어 승리를 거두는 통쾌감도 맛볼 수 있어 천남1리 어르신들은 경로당에만 있지 않고 야외에서 게이트볼을 치며 묘미를 즐긴다.

신체가 건강해지는 것은 물론 정신도 맑아지고 생각도 건전해진다고 한다.
게이트볼을 치지 않는 사람들은 걷기에 열중이다. 연세가 높은 어르신들도 동네를 한바퀴 돌고 여름에는 동네 뒷산인 경사가 심한 삼승산 입구까지 오르기도 한다. 이렇게 운동을 한 주민들은 겨울이면 경로당에 모여 담소를 나눈다.

모범적으로 경로당을 운영해 지난해 10월 노인회 군 지회로부터 모범 경로당 수상을 한 천남1리 주민들은 겨울철이면 경로당에서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동네 출향인들로 구성된 한마음 회에서는 대형 냉장고를 기증하고 향우회(회장 이상근)에서는 노래방 기계를 기증한 경로당에서 여느 마을처럼 담소도 나누고 점심때가 되면 다함께 국수도 끓여먹고 담북장을 끓여 무 생채나물에 비벼 먹기도 하고 동태찌개를 시원하게 끓이는 등 맛있는 점심식사를 해 먹는다.

날씨가 ‘꾸물꾸물’ 하면 김치를 숭숭 썰어 넣고 밀가루를 개어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 부침개를 부쳐낸다.

모두가 경로당이라는 주민 화합의 장소에서 이뤄지는 천남1리 주민들의 겨울풍경이다. 공공시설 내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는 것처럼 경로당 안에서는 금연이다. 경로당에서 금연을 철철이 준수하는 규칙으로 인해 금연에 성공하는 어르신들이 많다고 한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당연히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워야 한다. 이 같은 경로당내 규칙 준수로 인해 경로당은 매우 깨끗하고 냄새도 없다.

# 자식농사 잘 지은 곳
농사 중에 가장 큰 농사는 자식농사라고 한다. 잘 지었다고 하면 건강하고 튼튼하게 잘 자란 것도 있을 수 있고 경제적으로 이름을 내는 것도 있을 수 있다. 그래도 자식농사를 잘 지었다고 하면 공부를 잘해서 입신양명, 출세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작은 농촌 마을인 천남1리만큼 자식농사 잘 지은 곳도 드물 것이다.

옛날 어른들의 일찍 눈을 떠 자식들 공부 가르치는데 열성을 다했다. 맛있는 거 먹고 좋은 옷을 사 입고 돈 모으면 땅을 사는 대신 이 마을 주민들은 1년 농사 열심히 지어 모은 돈으로 자식 농사 밑천에 다 들이밀었다.

자식 공부 가르치는데 한정이 있나 남들 중학교 과정 겨우 밟고 상급 학교 진학을 그만두게 할 때 이 마을 주민들은 더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등학교를 진학시켰다.

다른 마을의 또래 아이들이 고등학교 과정까지만 밟고 더 이상 학교를 다니지 못할 때 천남1리 아이들은 대학교까지 나왔다.

옛날 고등학교는 여간 부자 집 아드님(?)이 아니면 갈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과정이었다.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데 수업료에 육성회비에 책값에 학용품에 들어가는 돈이 끝이 없는데 고등학교 보낼 정신이 어디 있나.

기계 없이 순전히 사람 손에 의해 농작 업이 이뤄지는데 장성한 사내아이는 한 집안에 큰 일꾼이었기 때문이다.

70년대 천남1리 자녀들은 이같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땅을 팔아서라도 자식 뒷바라지를 하는 부모들 때문에 삼승초등학교만 나오면 대전 중학교를 나와 대전고등학교, 대전여고를 가고 일부 청주고등학교를 가는 등 과거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명문 고등학교에 다니고 그들이 서울대, 연, 고대를 나와 박사가 되거나 사회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보이는 등 자식농사 수확량이 매우 좋다.
이 점은 옆 동네 주민들이 천남1리를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기도 하다.

# 사회 각계각층에서 두각
부자동네였던 천남1리는 땅을 팔아가면서 까지 자식 공부에 공을 들여 지금은 가구당 소유 경지 규모는 작아졌지만 자식들은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어 부모들을 기쁘게 하고 있다.

이기석(이만재씨의 아들)씨와 류진국(고 류학록씨의 아들)씨가 경제학 박사이며 류동렬(류창근씨 아들)씨가 우리은행 여의도 중앙 지점장이다.

현직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정봉기씨는 고려대 출신이고 정회준씨는 서울대 출신이며 이서영씨는 연대출신이다.
이기하씨가 청주 교육청에 있고 이달상씨는 현대 계열사의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 사과 등으로 부농 일궈
수원이 좋아 벼농사가 잘되고 소출도 많은 땅이 자식뒷바라지를 위해 많이 팔았다. 땅은 크게 줄었지만 옛날에는 2/3 정도가 일꾼을 두고 살았을 정도로 부자였다.

빗자루 병으로 지금은 없지만 대추나무와 감나무가 많았던 천남1리는 벼농사 외에 삼승면이 사과고장인 것처럼 7농가가 사과 농사를 짓고 일부 한우를 사육하고 있다. 특히 삼승사과는 황토에서 자라고 낮과 밤의 온도차가 큰 지역적 조건으로 인해 어느 지역에서 생산된 것보다 알이 단단하고 과육이 많으며 물이 많고 당도가 높아 우수한 품질이 모두 서울 양재동에 팔린다.

삼승사과를 구입하는 양재동 농협 유통회사는 삼승사과는 겉포장 박스에 보은 산이라는 표시만 보고 박스를 뜯어보지도 않고 가격을 매길 정도로 신뢰를 한다.

이 정도 신뢰를 얻기까지 사과 재배농가들의 노력이 어느 정도였을까 짐작이 간다.

천남1리 사과재배농가들은 요즘 품질이 우수한 것을 모두 양재동으로 보내고 맛을 나무랄 데 없으나 흠이 있어가 모양이 다소 흐트러진 것들만 골라 다시 크기별로 선별해 아는 사람들에게 판다. 이렇게 판매과정을 차별화 해 농가소득을 높이고 있다.

이렇게 농사규모가 큰 농가는 매출 1억 원이 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는 농가는 4, 5천 소득은 되는 등 부농 축에 들고 있다.

일제말기 마을 이장을 지낸 고 김수의(김기주씨 조부)옹이 마을 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치는 훈장을 지내 석남, 상승이, 각골 주민들이 공적 비를 세워 줄 정도로 은혜를 아는 사람들이 사는 곳인 천남1리에 꼭 손을 볼 곳이 있다.

유재선 이장은 내망과 천남 간 경계에 있는 하천이 400m정도 유실돼 밭 한가운데를 차고 나가 복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을입구 농협 창고 바로 뒤편에 기이한 모양을 가진 돌도 아닌 큰돌이 세워져 있다. 과연 무슨 사연을 담고 있는 돌일까.

주민들에 따르면 88년 마을 입구 창고 아래에 버려져 있다시피 한 것인데 우연히 발견해 포크레인을 동원해 세워놓았다고 한다. 삼국시대 경계 표시가 아닌가 할 정도로 귀하게 여기고 있다.

탄부 구암→삼승 천남2리(각골)→천남1리→판동초등학교→옥천 청성 신그령재에 있는 바위로 이어지는데 꼭 경계를 나타내는 것 같다는 것.

그 돌이 정말 과거 국경을 표시하는 경계석이 맞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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