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잃은 잉꼬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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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잃은 잉꼬 할아버지
  • 보은신문
  • 승인 2007.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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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 할머니 잃은 삼승면 선곡 이지용씨
삼승면 선곡리에 살고 있는 올해 80의 이지용 할아버지.

이지용 할아버지는 보은읍 풍취리에서 태어나 7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서모 밑에서 온갖 설움을 받고 살았다.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서모에게 온갖 풍파와 설움을 받고 산 이지용 할아버지는 21세에 결혼을 했고, 23살 되던 해에 군대를 가 26살에 중사로 제대했다.

27살에 맏아들을 낳은 이지용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많은 방황의 시간이었다.

많은 여자들을 만나 바람도 많이 피웠고, 여자 바람은 물론 술바람으로 인해 그 많던 재산도 다 날렸다.

많은 재산을 날리면서 쓰고, 먹고 할 때는 이 친구, 저 친구 등 친구도 많았고, 여자도 많았다.

그러나 돈이 친구고, 돈이 여자더라.

많은 재산 다 털어내고 막상 돈이 떨어지니 그 많던 친구들도 다 떨어지고, 여우같은 여자도 다 떨어졌다.

하지만, 그 꼴을 보면서도, 바람둥이 남편을 보고 사는 그의 아내는 어떻게 살았을까?

떨어질 것 다 떨어지고, 많은 재산 다 털어먹고, 어쩔수 없이 조강지처 아내와 똘망똘망한 아들 형제를 앞세우고, 이지용 할아버지는 30살이 되던 해에 보은읍 풍취리에서 삼승면 선곡으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8년 동안 남의 집살이를 했고, 부인은 바느질 품을 팔아 어린 아들 형제들과 산 밑 오두막집에서 그럭저럭 삶을 꾸려갔다.

세월은 흘러, 아들 형제들은 모두 결혼해서 직장을 따라 도시로 나간 후에는 노부부만이 오순도순 생활을 이어갔다.

젊어서 핀 바람과 난봉쟁이로 많은 재산을 다 털어버린 죄책감에 늦게나마 아내에게 늦 정이 든 이지용 할아버지는 아내를 너무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겨 손수 밥해서 상도 차려 주고, 빨래도 손수하고, 어디를 가든 꼭 아내를 데리고 나갔으며, 운동을 하더라고 반드시 아내와 함께 했다.

잠시라도 떨어지면 큰 일이 날 것 처럼, 노 부부는 늦게 신혼부부가 됐다.

동네 방네 잉꼬부부라고 소문이 났고, 이지용 할아버지는 잉꼬 할아버지라는 별명도 붙여졌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잉꼬 할머니는 병이 악화 돼 자리에 눕게 됐다. 할머니가 자리에 눕게 되자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잠들기 전에는 화장실도 못가고, 할머니들 잠들게 한 후 밥도하고, 청소도 하면서 할머니를 돌봤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부르면서 “나 좀 봐유. 나 심심하니까 노래 좀 해 봐유.”라고 하면 할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불러줬다.

그렇게 지내 온 것이 꼭 3달이었다.

할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일어서게 하고, 눕히고, 밥해 먹이며 세 달을 정성스럽게 간호했지만 한 달 전 할머니는 남편의 품에 안긴 채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고생을 했어도, 할망구 시중들며 살았던 지난 3개월. 그때가 사는 것 같았어.”

이지용 할아버지의 두 눈에서 굵은 눈물 방울이 흘러 내렸다.

오늘도 이지용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끌었던 유모차를 끌고 나와 할머니가 묻힌 산쪽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 쉬며 먼저 떠난 할머니를 그리워 하고 있다.

조순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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