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아래 첫 동네 여기가 천국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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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아래 첫 동네 여기가 천국이네
  • 송진선
  • 승인 2007.06.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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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북면 갈티리
회북면 갈티리를 찾아가는 길은 정말 험했다. 행정구역상 회북면이니까 당연히 회북면에서 찾아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수리티를 넘었다.

애곡리에서 계속 가면 된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건촌리에서 애곡리 방향으로 들어섰다.
갈티리를 찾아가는 것도 처음이지만 건천리에서 애곡리로 나있는 도로를 타는 것도 처음이었다.

곧 마을이 나오겠지 생각하며 다시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도대체 갈티리 마을은 어디야, 얼마나 더 가야 된단 말이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느새 마을이 나온다. 애곡리다. 그런데 갈티리는 어디로 간단 말인가.
마침 논에 비료를 뿌리고 있는 주민이 있다. 갈티리는 어디로 가죠? 그냥 쭉 가란다.

아니 그런데 그동안은 아스팔트 길이었는데 아저씨가 계속 가라는 길은 아스팔트 길 대신 길도 좁고 좁은 시멘트 콘크리트 포장길이다. 애라 모르겠다 그냥 가보자.

# 고개를 넘고 넘어
갈티리를 가는 길은 이제부터 였다. 애곡리를 지나면서 부터 강원도 어느 이름모를 지역인양 사방이 첩첩산중이다. 가는 길은 해발이 무척 높아 세상이 산 아래에 펼쳐져 있다.
아마 500고지는 될 듯 싶었다.  구불구불 산이 생긴 대로 길이 나있다. 좁은데다 가파르기까지 하다. 마을 진입로라기보다는 임도 같다.

가도가도 마을이 나올 것 같지 않은 길이 계속 이어진다. 마을 진입로라면, 그 안에 마을이 정말 있다면 아무리 산길이라도 어느 정도 가면 길옆으로 농경지가 나오는 법 아닌가. 그런데 도대체 임도 같은 길만 계속될 뿐 농경지는 한 평도 보이지 않는다. 강원도 산골도 산을 개간해 일군 밭이라도 있지 않나. 여긴 강원도 산골도 아니고 명색이 보은인데 보은에 이런 산골이 있나.

얼마를 더 가야 마을이 나오나. 등골이 오싹하기까지 했다. 차를 돌릴 곳이라도 있을까. 전화라도 되면 이장님한테 지금 가는 길이 맞는 것인지 물어보기라도 할텐데.  전화도 불통이다. 진퇴양난, 첩첩산중. 머리 속이 하얘져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끝까지 갈 수밖에. 차츰 마을이 있을 것 같은 징조가 보인다.  휴경지도 보이고 겨우 길 옆에 까만 비닐을 씌워 콩을 심은 밭도 보인다. 그리고 폐광지도 보인다.

휴. 이젠 됐다. 고진감래다. 이럴 때 쓰는 말은 분명 아니지만 어쨌든 고개를 넘고 넘어 찾은 마을이 반갑게 느껴졌다.

# 12가구 모두 한 식구
마을도 아늑하게 생겼다. 볏가리를 쌓아놓은 듯해 붙여진 노적봉이라는 큰산을 뒤로하고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마을 전체가 겨우 12가구. 주민이라고 해봐야 30명이 안된다. 그나마 몸이 아파 몇몇 주민은 아들네 집으로 갔다.

아마 군내에서 행정구역으로 볼 때 한 마을을 이루고 있는 단위 마을로는 가장 적지 싶다.
마을을 찾아오는 과정을 생각하면 정말 다 찌그러지는 집에 겨우 초가지붕만 면한 곳이 아닐까, 부엌개량 하나 못하고 아궁이에 나무 지피는 부엌에 겨우 씽크대 하나 놓고 생활하는 곳이 아닐까 했지만 ‘천만의 말씀’이었다.

마을 앞에는 지난해 지었다는 경로당이었고 새로 지은 집들이 있다.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슬래브 지붕도 있었지만 슬래브가 아닌 뾰족한 지붕도 있다.

동네는 이렇게 작아도 좋은 곳이라고 자랑하는 주민들은 “우리동네 뒤 노적봉을 경계로 하고 있는 고석리에서는 80년 수해 때 사람이 죽었고 6·25 전쟁 때도 애곡리에서는 주민이 죽었지만 갈티리에서는 80년 수해 때 산사태도 나고 농경지 피해도 입었지만 사람 한 명 죽지 않았고 6·25 전쟁 때도 인민군이 까맣게 들어와 진을 치고 있어도 동네사람 누구 하나 죽지 않았다”며 복받은 땅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인지 30명도 안되는 주민들은 모두가 한 식구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돕는다. 마침 마을을 찾아간 지난 18일 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농기계 순회수리반이 마을에 있는 온갖 농기계를 수리하고 있다. 몸이 불편한 주민이 경운기 브레이크가 고장이 났다고 하자 최 반장님이 끌고와 브레이크를 고쳐 다시 가져다 놓는다.

새마을지도자 설인기씨는 일을 나가 집에 없자 서현석 이장님이 전화를 걸어 농기계 고장난게 없느냐고 묻고 고치게 한다.

가족같이 생활하고 있는 갈티리는 서현석(70) 이장, 최해천(76) 노인회장, 이순임(67) 부녀회장, 설인기(34) 새마을지도자, 최형모(53)반장이 마을의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93세 임복순 할머니가 동네 최고령자이고 34살인 설인기씨가 가장 젊다. 그 다음이 53세인 최형모씨이다. 그래도 이들 젊은 사람이 있어 동네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린다. 동네에서 아이들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요즘 농촌에서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 행정권은 회북 생활권은 보은
동네 사람들을 만나 마을로 들어온 과정을 설명했더니 내북면 하궁리로 들어오면 고개도 넘지 않고 쉽게 들어오는데 하며 안타까워했다.

애곡리에서는 2㎞를 들어와야 하지만 하궁리에서는 1㎞밖에 안되고 고개도 넘지 않아 쉽다는 것이다.

하궁리 쪽으로는 가깝기도 하지만 고개를 넘지 않아 애곡리 쪽으로는 갈 일이 없다. 행정구역은 회북면이지만 면사무소에 볼 일이 있거나 농협에 볼일이 있지 않으면 회인은 거의 가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주민들은 하궁리까지 걸어나가 보은 장에서 필요한 것을 모두 구입한다. 보은읍이 편하다고 했다.

그럼 왜 내북면으로 행정구역을 변경해달라고 요구하지 아주 불편한 회북면에 남아있느냐고 묻자 주민들은 1983년 내북면으로 행정구역을 조정하는 계획이 추진됐으나 주민들이 원하지 않아 그대로 회북면에 남아있다고 한다..

주민들은 오전 10시와 오후 3시20분 하루 2차례 내북면 하궁리로 들어오는 시내버스를 타고 보은을 나가야 한다. 보은장날 이것저것 물건을 사면 머리에 이고 1㎞가 넘는 길을 걸어들어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은에서 택시를 타고 들어와야 한다. 그래서 겨울이면 거의 바깥세상 구경을 하지 않는다. 차비도 많이 들어 주민들은 마을까지 시내버스가 닿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또 마을 주민 중 7명이 핸드폰을 갖고 있는데 동네에서는 터지지 않아 무용지물이고 명절 때 자식들이 오면 핸드폰이 터지지 않아 불편해 한다며 핸드폰 안테나 개설을 바라고 있다.

# 언제나 범죄없는 마을
범죄없는 마을 제도가 생긴 이후 갈티리는 매년 범죄없는 마을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옛날 마을회관 벽에 현판이 있는데 83년부터 시작해 96년까지 계속 이어갔는데 한 번은 주민들이 받기 싫어서 우리 이제 그만 받겠다고 거부를 했다고 한다.

이유는 현판을 달면 높으신(?) 양반들이 마을에 오는데 손님 대접하기가 힘들어서 라는 것.

아마 다른 동네에서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하겠지만 주민 수도 적고 있다고 해도 고령이어서 손님 상 차려내기도 벅차 범죄없는 마을 현판이 없어도 우리 마을은 범죄없는 마을이니 그 자부심만 갖고 살자고 주민들이 마음 먹었다고 한다. 현판이 없다고 해서 범죄없는 마을이 아닌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범죄없는 마을 선정은 그 동네에 살고 있는 주민 뿐만 아니라 갈티리를 고향으로 두고 외지에 살고 있는 출향인까지 포함해 범죄를 일으키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 대단한 것이다.

# 12가구 중 9가구 수질 나빠
옛날 갈티리는 노적봉 아래 있는 산지당골 물을 길어다 먹었다. 물이 좋아 물 양도 많아 동네 주민들이 모두 퍼다 먹어도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런데 80년 수해로 마을은 엄청난 수해를 입었는데 그 산지당골 물이 메워져 더 이상 길러다 먹을 수가 없었다.

집집마다 지하수를 파서 자가수도를 박아 식수를 이용했는데 3년전 수질검사 결과 12가구 중 3가구만 괜찮고 나머지 가구는 좋지 않은 것으로 나왔다. 주민들은 아직 그 물을 그대로 먹고 있지만 항상 식수 때문에 걱정이다.

먹는 물이 좋아야 하는데 오염이 됐다고 하니 걱정이라며 군에서 식수로 사용할 수 있도록 관정을 파줄 것을 바라고 있다.

서현석이장은 아직 군청에 관정을 파줄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다른 동네 같으면 수질 검사 결과가 나쁘게 나온 즉시 군에 관정을 파줄 것을 요구하고 군수도 만나고 해당부서의 장도 만나 끈질기게 요구했을 것이다.

먹는 물이 나쁜데 그대로 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3년 전의 결과이니까 주민들이 떼를 썼으면 아마 지금쯤은 좋은 물이 콸콸 나오는 관정이 파져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갈티리 주민들은 좋지 않다는 검사결과를 들었으면서도 아직 그 나쁜 물을 먹는다. 갈티리 주민들의 순박함이 읽혀진다.

주민들이 요구하지 않았다고 해서 지금까지 나몰라라 하고 있는 행정기관도 너무 하다는 생각이다. 주민들을 위해, 민원인을 위해 최상의 서비스 행정을 펴겠다고 한 것이 구호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순박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회북면 갈티리. 경지정리가 하나도 안된 다락논을 그대로 갖고 있다. 마을 경관이 너무 예쁘다.

전체 경지면적으로 다지면 가구당 평균 경지면적은 2천500평, 3천평은 되지만 벼농사 외에 고추, 감자, 옥수수 등의 밭작물이 대부분이다. 특별히 소득을 얻을 만한 작물이 없다.

친환경 농업을 해서 주말이면 도시의 찌든 공해에 젖어있는 사람들을 불러들여 바깥세상과 단절된 오염원 하나 없는 산골 그대로를 체험하게 하는 체험마을로 마을 발전 계획을 세워도 좋을 듯 싶었다.

농촌도 변하고 있다. 급격히 도시화 되고 있다. 편리하다는 이유 하나로 자연도 파헤치고 마구잡이로 개발되고 있는데 역으로 갈티리는 개발하지 않고 불편함 그대로를 상품으로 파는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 갈티리는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살찌우게 하는 없어서는 안될 보배로운 땅이 될 것이다.

도시 사람들에게 잠시 내준다고 해서 마을이 변하는 것이 아니고 갈티리는 지금 그대로 오지의 모습을 간직한 세상에서 만나기 어려운 별천지가 됐으면 싶다.

<새로쓰는 마을이야기 (103)>

<사진 : 12가구 30여명의 주민들은 모두가 한 식구이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서로 돕고 좋은 일은 같이 기뻐하는 이웃사촌의 모습이다.

경지정리가 안돼 옛날 농촌이 모습을 간직하고있는 다락논이다. 반듯하게 경지정리된 지금의 논에 비하면 그 자연스러움이 너무 예쁘다.

가족같이 생활하고 있는 갈티리 마을의 봉사자로는 서현석이장, 최해천 노인회장, 최형모 반장, 이순임 부녀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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