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간 교육의 모습이 …회인초등학교 교육사료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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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간 교육의 모습이 …회인초등학교 교육사료관 개관
  • 송진선
  • 승인 2006.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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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100년인 회인 교육의 100년 역사와 함께 교육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는 회인초등학교(교장 이규희) 교육사료관이 완공돼 16일 개관됐다.

학습발표회도 겸한 이날 개관식에는 박진규 교육장과 군내 각 학교 교장 및 회인초등학교 총동문회 김홍업 회장과 임원, 학부모 및 지역인사 등이 참석해 사료관 개관을 축하했다.

이규희 교장은 “어진 것을 품고 사는 회인골 모든 사람들의 땀방울로 교육사료관을 개관하는 결실을 맺었다”며 “100년의 장구한 세월을 디딤돌로 길이 후세에 교육의 산실로 자리매김 될 교육 사료관을 앞으로도 알차고 내실있게 운영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인사했다.

김홍업 총동문회장도 “사료관을 짓고 꾸미고 정리하는데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교직원들의 열정으로 주변에서 볼 수 없는 훌륭한 사료관으로 태어났다”며 “100년을 되돌아보는 곳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장으로 활용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 교육사료관
회북면 중앙리 회인초등학교 교내에 마련된 회인초등학교 교육 사료관은 지상 1층의 20평 규모로 일반인들이 옛날 코흘리개 였던 초등학교 시절을 추억해 볼 수 있고 어린 학생들은 조부모나 부모님들이 다녔던 학교의 모습을 체험해 볼 수도 있도록 꾸며져 있다.

회인초등학교 총동문회에서는 사료 확보를 위해 500만원을 기증했고 기타 졸업장, 상장 또는 통신표, 앨범, 수학여행 사진 등은 동문들이 기꺼이 학교에 기증해 다양한 사료를 전시할 수 있게 도움을 줬다.

이곳에 전시된 것은 교과서 9종에 83점, 교육용 도서 4종 21점, 학용품 15 종에 43점, 학습자료 10종에 24점, 학습기자재는 11종 26점, 어린이용품 7종 16점, 학교용품 11종 13점, 생활용품 42종 51점으로 총 109종 277점이나 된다.

자료수로는 적다고 할 수 있으나 전시된 자료의 내용으로 보면 웬만한 박물관급이고 수집하기도 어려운 국보급이라고도 할 수 있다.

◆ 국보급 사료들
회인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 교육사료관에서 가장 귀중한 사료가 있다면 무엇일까?
학교에서는 1938년 회인초등학교 교문 기둥에 달았던 회인공립심상소학교 명패를 꼽았다. 이 명패는 1938년부터 1941년까지 쓴 학교명이다.

이 현판을 소장하고 있었던 사람은 충북도교육청 초등교육과 김주환 과장이 15년전 유성의 한 민속 사료관에서 30만원에 구입했었다는 것.

학교에서 이같은 사실을 알고 현판을 소장하고 있는 김주환 과장에게 연락을 취해 처음 구입당시 가격인 30만원을 주고 현판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

또한 9종이나 되는 교과서는 교육 전 과정에서 발간된 것들을 확보하고 있다.

확보한 교과서를 보면 일제강점기인 1945년 이전에 발간된 것을 비롯해 교수요목기 이후 7차 교육과정까지 전 과정의 교과서가 시기별로 전시돼 있다.

여기서 말하는 교수요목기(敎授要目期)는 1945년∼1954까지, 1차 교육과정은 1954년∼1963년까지, 2차 교육과정은 1963년∼1973년, 3차 교육과정은 1973년∼1981년까지, 4차 교육과정은 1981년∼1987년, 5차는 1987년∼1992년, 6차는 1992년∼1997년, 7차 1997년∼현재까지 교과서가 전시돼 식별로 비교할 수 있다.

이중 가장 구하기 힘들었던 교과서는 일제 강점기나 일제 치하 이후 해방전후 때의 것이 아니라 6차 교육과정이 이뤄졌던 1992년∼1997년까지의 교과서였다고 한다.

당시 교과서는 모두 반납했던 시기여서 골동품 상회에서도 쉽게 구할 수가 없어 겨우 수소문 끝에 제천에 있는 고서점 가게에서 3권을 확보한 후 청주 교대에 있는 동문의 도움으로 20권을 기증받았다.

참고서와 학생들이 보았던 잡지도 구했다. 70년대 시골 초등학교 학생들에게는 이런 것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구경하기 힘든 것들이었고 사치였지만 동시대 서울 등 도시지역에서는 초등학교에 재학하는 학생들이 이용했던 것들이다. 학교에서는 이것도 청계천 서점과 인사동 등에서 구입했다.

그런가하면 학용품을 보면 바로 옛날을 떠오를 정도로 반가운 것들이다. 어깨에 메고 다니던 책가방, 고무신, 꼬까신, 왕자표 크레파스, 책받침, 색종이 등 다양하다.

특히 책가방과 고무신은 1만원, 꼬까신도 2만원을 주고 청계천에서 구입했다.

그런데 처음 보는 것이 눈에 띈다. 바로 계수기이다. 과거에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학생들에게 지급했던 학습 기자재라고 하는데 주판알 50개를 줄에 꿰어 놓은 것으로 숫자 판으로 1부터 50까지의 셈과 덧셈과 뺄셈을 하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이외에 책·걸상과 풍금, 난로, 등사기, 종, 영사기, 영사필름, 아코디언 등 다양한 사료들도 전시돼 있다.

◆ 학교의 얼굴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시절 그래도 배워야 한다는 우리나라 부모님들의 교육열에 의해 회인초등학교도 개인 독지가가 나서서 학교를 세웠다.

회인초등학교의 100년 역사를 보면 처음에는 회인초등학교라는 교명 대신 진명학교로 시작됐다.

1906년 4월1일 김두석 등 지역 유지 몇 명이 발기해 회인군 읍내면 마근동 현재의 중앙1리에 사립진명학교를 설립해 개교했으나 유지비가 없어 그 해 11월2일 폐교됐다.

한동안 학교를 운영하지 못하다 1909년 5월31일 현재의 부수리에 있는 회인향교 명륜당에 진명학교를 재 개교했는데 그 유공자가 바로 애곡리 출신 우정순씨이고 회남면 신추리 출신으로 천석꾼이었던 양주록씨가 적극 협력해 가능했다. 진명학교 초대교장을 지낸 정태로씨도 자신의 산에서 벌채한 나무로 진명학교 건물을 지었고 해방 후인 1947년 12월 교실 증축시에는 7만환을 기부하기도 했다.

명륜당에서 재 개교했던 진명학교는 1909년 11월 현 중앙리에 있는 인산객사로 이전했으며 1911년 4월1일 사립 회인보통학교로 개칭됐고 1923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처음 진명학교에서 교육받은 학생은 설립자인 우정순씨가 향교의 전교로 있었기 때문에 유생 7명이고 초대 졸업자인 우종준씨 부부가 졸업대장 1호라는 제목으로 교육사료관에 사진이 전시돼 있다.

1회 학적부에서 그가 졸업대장 1호임을 알 수 있는데 당시 학생은 우종준씨를 비롯해 이종호, 양지환, 송병호, 정완용, 최영상씨이다.

그런가하면 당당히 사료관 한 쪽에 전시돼 있는 회인공립국민학교의 교가는 1949년 문교부 편수국에 제출한 것으로 당시 이 학교 교장이었던 박종원씨가 작사하고 교사인 유한명씨가 작곡한 것으로 총 3절로 돼 있다. 현재 회인초등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학생들도 바로 이 교가를 부르니까 교가 역사만 57년이나 됐다. 아마도 제작된 것을 따져보면 이보다 훨씬 깊은 교가 역사를 갖고 있을 것이다.

이같이 회인 교육 사료관은 우리나라 교육의 역사와 함께 회인 교육 100년사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니고 엄마, 아빠가 다녔던 옛날 학교의 모습, 옛날 학생들과 선생님이 사용한 물건들을 보며 교육의 발전사 및 경제발전사도 짚어볼 수 있는 등 교육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규희 교장은 회인 교육 사료관을 개관하면서 면적이 좁아 시대별로 공책이나 학습장 등 학용품을 전시해 변화를 한 눈에 비교할 수 없어 아쉽지만 현재의 사료관도 만족한다며 군내 각 학교의 학생들에게도 개방해 견학을 할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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