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에 사는 아픔, 답답함 그리고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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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에 사는 아픔, 답답함 그리고 희망
  • 보은신문
  • 승인 2005.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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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에 보답하는 곳; 報恩. 전국에서 어쩌면 세계에서도 가장 뜻 깊고 아름다운 지명을 갖고 있는 보은 땅에 살면서 아픔이 있다면 정신이 조금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때 묻지 않은 산과 들을 품고 있는 청정한 터전에서 생활하면서 답답함을 느낀다면 뭔가 가슴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점에서 나는 문득 스스로에게 이런 실없는 질문을 던져본다. 그리곤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삼산초등학교를 졸업하던 1965년에 보은군의 인구가 12만 명에 가까웠다. 그로부터 꼭 40년이 지난 지금의 인구는 3만5천 명에 불과하다.

장이 서는 날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 가면 물건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그 땐 물건 특히 공산품은 부족했고 농산물은 풍성했다. 곡물을 흥정하는 싸전(미곡시장), 채소를 사고파는 채소전, 땔감이 거래되던 나무전, 옹기를 취급하던 옹기 골목, 큰 돈이 오고가는 소전(우시장)등 생활에 필요한 필수품들이 요즘 말로 표현하면 전문 코너에서 신나게 거래가 이루어 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물건은 흔해도 사람이 없다. 그렇게 많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도시로 떠나고 그렇게 귀한 대접을 받던 쌀은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우리 사회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다시 정보사회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이 있다.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제가 태어난 언덕 쪽으로 두고 죽는다는 뜻이다.

한갓 미물인 여우도 제 고향을 이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데 사람인 경우야 어떠하겠는가. 읍내 상가와 시골 마을에 빈 가게와 빈 집이 늘어가고, 병원과 약국은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이 주된 고객이 되고, 밤 아홉시만 되면 가장 번화한 도로에도 인적이 끊기는 곳이 보은이다.

나날이 위축되어가는 고향을 지켜보는 것은 그래서 아픔이 된다. 독일의 경제학자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에서 거대주의의 폐해를 예리하게 지적하면서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부추기는 현대 사회의 병폐를 경고했다.

그가 이 책에서 사용한 ‘작은’이라는 어휘는 규모 못지않게 방식에도 그 의미가 적용된다. 즉 어떤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자발성, 창의성, 협동성이 존중되지 않고 오로지 일방적, 획일적 분위기만 강조되는 상황에서는 결코 진정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흔히 보은의 발전을 논의할 때 논의되는 내용의 99%는 외부에 의존하는 것들이다. 거대한 기관이나 시설물, 공장의 유치, 고속도로의 조기 개통 등 보은인의 의지가 작용될 소지가 거의 없는 것들에 올인 한다. 그리고 그 것들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으면 보은이 푸대접 받았다는 식으로 군민들의 자존심을 자극하면서 그 일을 접어버린다.

세계태권도공원을 시작으로 최근의 혁신도시 입지 선정에 이르기까지 이와 유사한 사례가 거듭되면서 보은군민들은 지역발전의 가장 기본적 동력인 보은군정의 효율성과 민주성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되었다.

지역 발전이라는 대내적 명제에서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내재적 가치와 가능성을 외면한 채 오직 외적 요인에만 눈길을 돌리는 보은군의 풍토는 아무리 맑은 바람이 불고 밝은 달이 비추어도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하지만 골이 깊으면 산이 높다고 하지 않았던가.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니 보은이 이제 오랜 침체의 늪에서 헤쳐 나오는 시기가 온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발전의 새싹을 한 포기 한 포기 심어가면서 우리 보은군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가치를 키워나가자.  가난이 죄는 아니지만 자랑도 아니듯이 낙후도 결코 자랑은 아니다.

낙후 지역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는 것 못지않게 우리 스스로 보은군을 알차게 운영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보은군 블루오션 전략을 세워 다 함께 추진해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최규인(삼년산향토사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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