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지역에 농민단체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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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지역에 농민단체가 있는가
  • 송진선
  • 승인 2005.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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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국 방송에서 내보내고 있는 각 지역의 쌀과 관련한 농민들의 분노에 찬 행동을 보기가 처연하다.

생존권을 부르짖으며 천막농성을 하면서 나락을 시·군청에 내다 쌓고 일부를 불태우고, 트랙터를 태우기도 하고 WTO 허수아비 화형식을 하고….

연일 국회 통외통위의 쌀협상비준안 의결을 비난하고 본회의 통과 저지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정권퇴진 운동 불사도 거론하는 등 농민단체들의 불만표출과 항의 시위가 절정에 달하고 있다.

절박함이 느껴진다. 몇 개 지역에서만 농민들의 성난 시위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이다. 충북에서도 쌀을 지키려는 농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그들에게 쌀은 생존권이고 농업의 근간이며 벼가 자라야 할 논에서 벼가 사라지고 사과나무, 대추나무, 인삼 등 다른 작물이 자랄 때 재배면적의 급격한 증가로 이들 농산물까지 동반 폭락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결국 농민들의 사망을 불러오는 것이다. 이를 아는 농민들이 몸으로라도 이른 불상사를 막기 위해 서투르지만 몸으로 막을 수밖에 없는 것이 농민들의 현실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지역 농민들은 어떤가. 과연 우리 지역에 농민단체가 있는가 묻고 싶다. 그 흔하디 흔한 플래카드 하나 나붙지 않았다. 무슨무슨 축제하는 플래카드는 즐비하다. 먹고 놀자는 판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우리 지역에 있다고 하는 농민단체는 농민의 권익과 농업 보호를 위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개념적 단체라기 보다는 각자의 주머니가 어느 정도 더 두둑해질 것인가를 발빠르게 계산하는 이익단체에 불과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른 지역 농민들이 눈물 흘리며 쌀을 지키기 위해 항거하는 동안 우리 지역 농민들은 등 따스운 방안에서 텔레비전의 화면으로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전해들을 뿐이다.

폭정에 항거하며 목숨을 죽음으로 맞바꿨던 동학농민군이 우리지역에서 최후를 맞았다고 우리 지역을 동학의 고장이라고, 우리 군민을 동학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지.

의로움 대신 비겁함으로, 참여보다는 방관으로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의 모습으로는 동학농민군의 후예라고 자청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욕이다.

쌀 협상 비준안은 미국과 중국의 이익을 반영한 것이란 얘기는 이미 나왔던 얘기이다. 미국으로서는 농업분야가 무역적자를 축소하는데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중요한 분야이다.

이런 미국이 왜 한국정부가 쌀 수입 자유화(관세화) 대신 관세화 유예를 선택하는 것을 수용했을까.

미국은 1995년에 WTO가 출범한 뒤 6년동안 중국과 태국에 밀려 한국에 쌀 한톨을 수출하지 못했다. 한국이 입찰규격을 바꿔준 후에야 비로서 미국은 한국 쌀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쌀 협상에서는 앞으로 10년간 쌀 50만톤을 한국에 수출할 수 있도록 아예 미국 몫의 쿼터로 배정받았다. 비준안 3조의 내용이다.

덧붙여 미국은 한국에 대해 수입쌀 공개입찰 제도를 관철시켰다. 미국과 합의한 수입쌀 ‘공매’제도가 원문에는 ‘auction(경매)’으로 돼 있다고 한다. 수입쌀 수의계약 형식으로 가공업체에서 가공용으로 배정하던 지난 10년간의 관리제도는 무너지고 공개입찰 제도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또 중국이 한국의 쌀 관세화가 아닌 관세화유예를 인정한 것도 자국에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2001년 WTO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가트 제 1조의 최혜국 대우 원칙을 일부 포기하는 양보를 해야 했고 중국산 상품의 수입 증가로 피해를 입거나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나라가 중국과 일정한 협의절차만 거쳐 긴급 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하더라도 중국은 2013년까지 이를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산 상품의 저가 수입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나라가 가트의 원칙보다 더 높은 수준의 반덤핑 관세를 매기더라도 중국은 이를 2016년까지는 용인해야 한다.

이런 태생적 약점을 지닌 중국으로서는 한국이 쌀 수입을 관세화 하기보다 중국에 앞으로 10년간 116만톤의 쌀 쿼터를 보장해주는 쌀 관세화 유예가 더 유리하다.

게다가 중국은 중국산 사과와 배에 대한 신속한 검역 의무까지 한국에 부과하는데 성공했다. 중국산 과일의 한국시장 장악은 시간 문제가 되는 셈이다.

정부는 우선 쌀 협상안을 비준한 뒤에 관세화 하자는 방침이지만 이에 농업계가 이에 동의하지 않는데는 지금 비준하면 올해부터 당장 의무수입량이 늘어나고 WTO체제가 존속하는 한 100년이든, 1000년이든 그것을 떠 안고 가야한다.

그리고 일단 비준을 해주면 중국과의 사과와 배 관련 합의, 미국과의 수입쌀 공개입찰 합의, 아르헨티나와의 쇠고기 합의를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국 농업의 위기를 예견할 수 있기 때문에 농민들이 농지가 아닌 거리로 나선 것이다. 일반 가게라도 됐다면 수십 번은 문을 닫았을 농업에 종사하는 보은의 농민들이 지금이라도 위기를 깨닫고 깨어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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