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를 넘어 세상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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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를 넘어 세상엔...
  • 보은신문
  • 승인 2005.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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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해 자 아사달 한글배움터 교사
양팔을 앞으로 나란히 해서 두 손끝을 잡아보세요.
자, 다 되셨죠.
그럼 이제부터 우리는 그 안에 소를 세 마리 키우는 겁니다.
"옳소, 맞소, 미소"
가을 햇살이 가닥가닥 흩어져서 머리카락 밑까지 닿을 정도인 그런 날에 우리는 떠났다.
559돌을 맞은 한글날 기념 전국 비문해·저학력 여성들을 위한 열린 백일장에 참가하기 위하여 경기도 여주 세종대왕릉으로 글자를 넘어 세상의 주인공이 되고자.
현미와 보리쌀을 넣은 시루떡에, 콩고물 인절미에 도라지 튀김, 당근 잎 튀김,
일이 있어 참가 못하는 어머니는 그게 미안해서 올갱이 국에 김치까지 해 넣어주고,
70넘은 엄마의 먼길에 포도 상자 실어 주고 돌아서는 막네 아들까지 넘치도록 푸지게 하고.
60∼70대의 어머니들이 가슴에 한이 맺힌 글자를 배우겠다고 모인 "아사달 한글 배움터 글꼬"
시장에서 나물 파는 할머니도, 새벽이슬 맞아가며 면에서 첫차 타고 나오는 골다공증 걸린 어머님도, 손목뼈가 다 녹아 글자를 삐딱하게 쓰시는 어머님도.
"난 등신여, 아무것도 몰라.""선생님들 엄청 애 먹일 껴"
그런 어머니들이 글자를 배우고, 산수를 배우고 컴퓨터에 찰흙으로 만들기, 관광차에서, 콩밭 매며 신곡발표 할 노래까지 배우고 있다.
지금까지 50여명 가까이 들락날락하며 이름자라도 깨우치고 여덟 분의 선생님들의 노고로 한글배움터의 글꼬를 트고 있는 이 곳은, 외국인 주부들까지도 따뜻하게 맞이하여 시어머니에 언니까지 촌수도 엮어가며 동병상련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배움의 목마름을 함께 나누고 있는 곳이다.
세종대왕께서 일반 서민들이 글자를 깨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그 뜻을 펴지 못하고, 아랫사람의 뜻이 위에 사무치지 못하기 때문에 백성에게 억울한 일이 많아 정치가 명랑하지 못하니, 어진 정치의 이상에 위반함이라고 생각하셔서 만드신 훈민정음이 절절히 와 닿는 이번 대회에서는, 다들 같은 상처를 갖고들 있어서인지 서로들 장하다며 격려도 해 주고, 그 동안의 공부한 것을 지도자 과정을 밟아서는 또 다른 글자 모르는 이의 안내자가 되어 봉사하는 이도 있고, 글자를 깨우쳐가면서 세상의 또 다른 모습을 찾아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학생들의 모습도 있어 나름의 벅찬 여생이 가슴을 뜨겁게 하였다.
낫 놓고 ㄱ도 알고 이제는 ㄴ까지도 가락지 놓고는 ㅇ도 염려 없는 우리 학생들의 모습은 어쩜 배우는 이들의 모습에서 가르치는 이들은 더 많은 것을 깨우치고 있다는 것을 그 분들은 알까 싶다. 선생님 앉을 자리는 빈손으로라도 훔쳐서 앉으시라는 그 분들이야말로 존경해야 할 제자들이기에 우리는 까막눈을 뜨게 해준 세상에 더 없는 스승일 수밖에 없다.
이번 대회는 "우리말 우리 얼"이라는 이오덕 선생님의 시를 그대로 따라 쓰는 예쁜 글씨 쓰기 부문, 삼행시, 편지글, 산문부문 이렇게 나누어 치러졌는데, 청심환 챙겨먹고 오신 어머님도 계시고, 손이 발발 떨려서 내려긋는 획이 부들부들 거리고, 엉덩이는 하늘로 들고 잔디밭 세종대왕릉을 바라보며 엎드려 쓰느라 욕을 보셨다.
그렇게 본 행사가 끝나고 보은 아사달 한글배움터의 "글꼬 아리랑"의 받는 소리와 메김소리가 세종대왕의 눈과 귀를 뜨게 하였으니
문명 세상은 웬 말인가
가나다 가나다라가 눈물이로구나
청천하늘엔 글 모른 이 많고
우리들 가슴속엔 수심도 많다.
한 맺힌 가슴속에 글 숨겨놓고
한글배움터 갈 날만 기다리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가나다 가나다라 아라리가 났네.
우리 어머니들의 가슴앓이다.
며느님, 아드님, 혹시 살펴드리세요.
글자 모른다고 밥그럭에 밥 줄어드는 거 아니고 죽을 때 눈 못 감을 것도 아닌데 그런데 그게 글씨 맛이라도 보니까 병원 물리치료실 가서 절대 남한테 안 묻고, 주차장가서 글씨 읽어보고 차 타고, 노래방가서 가사보고 노래하는 고 맛이 참.........
세종대왕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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