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의 울음소리가 있는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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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의 울음소리가 있는 한 --
  • 보은신문
  • 승인 2005.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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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울음소리 나는 이 여름이 아무리 무덥고 힘들어도 여름이 좋다. 모름지기 여름은 여름답게 더워야 하고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제격이다. 지금 우리 지구는 환경오염으로 인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정확히 운행하던 계절도 근래에 이르러 운행의 싸이클마저 잊었는지 봄, 가을은 실종된 듯 오는 듯 가버리고, 대신 여름, 겨울이 훨씬 길어진 듯한 느낌이다. 몇 년 전인가 한 여름의 과장 저온으로 농작물에 큰 피해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올해의 이 무더위에 짜증을 내기보다는 오히려 감사를 해야만 하는 게 아닐까.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어디를 둘러보아도 짙푸른 녹음, 손대면 파란 물이라도 뚝뚝 떨어질 듯한 저 푸르름 ! 신록은 그냥 바라만 봐도 좋다.

어디 그 뿐이랴. 녹음 속에서 들려오는 매미의 울음소리는 또 얼마나 시원한가. 신록에 매미 울음소리는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매미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일상의 온갖 시름들이 이내 녹아 내린다. 그리고 매미 울음소리는 나를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 속으로 인도한다. 혹자는 매미 울음소리를 한낱 소음 정도로 치부하고 달갑지 않게 여기는 듯 하나 세상만사 생각하기 나름이다.

일터에서도 길을 걷다가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매미 울음소리에 취해 있노라면, 눈을 감지 않아도 나는 이미 내가 나고 자란 옛날 내 고향으로 와 있다.

너무나도 뚜렷한 내 고향의 정경 속으로-. 회색의 을씨년스런 아파트 건물들은 이미 온데 간데도 없다. 어디선가 누렁이 황소의 느릿하고도 정겨운 울음소리도 매미 울음소리 사이로 들리는 듯 하고, 시냇가엔 미역감는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리도 아련히 들려오는 듯 하다.

동네 앞 둥구나무 그늘 아래엔 한가로이 더위를 식히는 노인들의 모습도 보이고, 나뭇가지로 엮어 만든 나지막한 삽작 넘어 널찍한 마당엔 토종닭들이 모이를 쫀다. 마당 한 쪽에 쌓인 두엄더미에서 나는 두엄 섞는 냄새는 또 얼마나 정겨운 고향의 냄새인가.

오랜 옛날, 내 의지와는 달리 떠나온 정든 고향! 낯선 도회에서, 삭막한 도회에 살면서, 어느 하루 고향을 잊어본 적 있었던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 심정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욱 절실해지는 것 같다. 누가 이런 애틋하게 고향 그리워하는 심정을 달래줄까. 이런 간절한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는 게 바로 한여름의 매미 울음소리다. 아름다운 환경도 아니요. 정겨운 시골도 아닌 삭막한 이 도회를 마다 않고 찾아와 향수를 달래주니 이 매미 울음소리가 그토록 고마울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 이런 도회에 시원한 매미의 울음소리마저 없다면 그런 서울은 얼마나 더 삭막할 것인가.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다.

아마도 난 숨이라도 막힐 듯한 그런 심정이 될 것이다. 지금도 내 귓가엔 그 옛날 고향에서 듣던 그 매미 울음소리가 쉼 없이 들려온다. 이 매미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한 난 늘 정겨운 고향의 포근한 품속에 있는 것이다.

전 일 용 (탄부벽지/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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