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승 우진 이동진·황순종 부부의 귀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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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승 우진 이동진·황순종 부부의 귀농 이야기
  • 송진선
  • 승인 2005.07.08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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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농 문외한이 농촌행 감행, 고생끝에 울외장아찌로 고소득 예약
저가의 농산물 수입이 개방되면서 상대적으로 생산비가 많이 드는 우리나라 농산물은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점차 그 자리를 외국 농산물에게 내 주고 있다.

농산물을 팔아서 수익을 발생시켜 자식 공부도 시키고 장가갈 아들 전세방이라도 얻어주고 시집갈 딸 혼수장만도 해주고 또 일상생활에 필요한 용품을 사고 각종 공과금도 납부하고 병원비도 내야 하는 농민들은 한숨짓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할 줄 아는 게 없는 농민들은 쇠 힘줄보다 질긴 빈 껍데기 농사를 놓지 못하고 있다.
요즘 농촌의 상황이다.

그런데 도시생활에 익숙하고 농사에는 문외한인 환갑을 앞둔 이들이 반란을 꾀했다.
그것도 들어본 적도 없고 본적도 없는 일본작물로 백오이(白瓜)라는 이름을 쓰는 울외라는 작목을 들고 성공 도전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군산이 고향인 이동진(59)씨와 수한면 묘서리가 고향인 그의 부인 황순종(57)씨의 농촌생활 적응기, 아니 농민에서 시작해 중소기업 사장에 도전하는 정복기를 지금부터 풀어본다.

대기업 샐러리맨에서 귀농하기까지
현대자동차 서비스에 다니던 이동진씨가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으로 명퇴를 한 98년 수한면 묘서리가 고향인 황순종씨는 결혼해서 30여년간 남편의 고향에서 살았으니 나머지 기간은 자신의 고향에서 살자며 모든 연고가 군산인 남편, 아들, 딸을 설득해 99년 11월 고향 땅을 밟았다.

친정동네에 살 곳을 찾았으나 마땅한 곳이 없었던 이들은 삼승면 탄금리에 자리를 잡았다.

남편은 물론 시골에서 자랐지만 농사는 지어보지도 않았던 황순종씨는 막상 자신이 우겨서 가족들을 시골로 데리고 왔지만 막상 무엇을 해먹고 살아야 하나 걱정이 태산이었다.

황순종씨 말을 그대로 옮기면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황소를 데리고 왔는데 먹일 여물이 없더라”고 했다.

손가락만 빨고 살수는 없는 일, 황순종씨는 군산의 특산품으로 고급반찬인 울외 장아찌를 만들어 파는 생각을 했다.

군산에서 일본 백오이 종자를 구해 처음 500평에 울외를 심었다. 농사를 지을 줄을 몰랐던 이들은 영농 첫해부터 남들 1, 2시간만 하면 될 일을 6, 7시간을 하기도 했고 남들 10㎏ 딸 규모였다면 이들은 3, 4㎏ 따기도 바빴다.

그래서 고생은 고생대로 했고 원없이 티격태격하며 점차 농부에 익숙해져 갔다.
울외를 수확해 장아찌를 만들었으나 판로를 확보하지 못해 알음알음으로 직거래를 해서 첫해에는 100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과연 500평에서 1000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농작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요즘 쌀 외에 대부분의 농가의 주소득 작물인 고추도 500평에서 1000만원을 건지기가 어렵고 적어도 1000평 규모에 고추농사도 잘 지어야 1000만원 소득을 올릴 것이다.

황순종씨는 아예 울외장아찌 제조공장 건립을 위한 방법을 찾았다. 군청에 가서 공무원들에게 설명하고 지원을 요청했지만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어 공장건립은 무산됐다.

울외 장아찌를 아시나요
울외는 하늘도 울었을 정도로 맛있는 오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울외 장아찌는 일본의 奈良(나라)지방에서 만들어져 나라즈께(なら-づけ)라 붙여진 장아찌 이름이다.

옛날 명술의 산지였던 奈良(나라)지방에서 정종을 담는 주박 즉, 술재강(일명 술지게미)에 울외를 절여서 1년간 숙성시켜 만든 장아찌로 일본에서는 아주 고급반찬이고 밥도둑이라고 할 정도로 인기있는 식품이다.

황순종씨가 만든 울외장아찌는 맛이 좋다고 소문, 매년 울외를 식재해 장아찌를 담는 양이 많아졌다.

그래서 공장 신축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고 이들 부부는 2003년 중소기업창업지원금 2억3000만원을 신청해 최종 1억7000만원의 지원을 확정받았다.

하지만 이마저도 담보능력 부족으로 7000만원만 받은 상태다.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크게 적은 지원금이지만 이렇게 돈줄이 생긴 이들 부부는 우진리 삼승 농공단지 옆에 공장을 신축하는 등 울외 장아찌 생산 계획을 실현할 수 있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호사다마인지 8월에 100평 규모로 짓고 있던 조립식 공장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이들의 꿈을 한 순간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모처럼 의기양양해졌다가 사기가 꺾이는 순간이었지만 마음을 추슬러 재기, 작년 12월 공장을 완공했다.

이제는 울외 장아찌는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이다.
그리고 황순종씨는 그동안 직거래로 울외장아찌를 팔아오던 것을 중단했다. 이유는 그동안은 공장을 운영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1만원을 받고 팔더라도 적정량보다 덤으로 더 많은 양이 나가 앞으로 소포장해 규격제품을 생산할 경우 혼선을 빚을 소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황순종씨가 이렇게 공장을 건립 울외장아찌를 본격적으로 대량 생산할 계획이 알려지자 국내 굴지의 식품 제조회사에서 OEM방식(주문자 상표 부착)으로 울외장아찌를 생산해달라는 협상안이 들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황순종씨는 전국적인 판매망 확보는 어렵겠지만 이미 자신이 만든 장아찌 맛이 소문나 매년 주문량이 늘어났었기 때문에 어려움을 감수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만들어 판매한다는 모험도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10월경 지난해 만들어 제대로 맛을 내고 있는 울외장아찌와 무 장아찌를 들고 대형 마트 등에서 시식회를 개최해 소비자들의 평가를 받겠다는 생각이다.

고추보다도 단위면적당 소득 높아
처음 500평에서 울외를 식재해 이를 가공해서 판매해 연간 1000만원의 소득을 올렸던 이동진·황순종 부부는 올해는 5000평으로 재배면적을 늘렸다.

3월 파종한 묘를 포트에 이식하고 5월10일 경이면 본 답에 심어 7월부터 수확에 들어가 8월까지 수확을 할 수 있다.

울외 수확 후 울외줄기를 걷어내고는 후작으로 무를 심는다. 2모작 영농을 하는 것이다.

평당 5포기 정도 식재하고 포기당 5개의 울외가 달려 25개 수확을 할 수 있고 가공하지 않은 생 울외 한 개당 500원에 판매되는 것을 감안하면 평당 1만2500원을 얻는다는 결과가 나온다. 이는 고추보다도 높은 소득이며 다른 작목보다도 소득 면에서 월등히 높다.

더욱이 농사짓기도 수월해 고추는 지줏대 세우고 줄을 3번 정도 매고 또 농약도 수확이 끝날 때까지 상당히 여러번 친다.

하지만 울외는 배수만 잘되는 곳에 식재하고 흰가루병과 노균병에 약하지만 수확하는 동안 3, 4회만 농약을 사용하면 끝이다. 그만큼 농사짓기도 수월하고 수익도 높기 때문에 농가에서는 욕심을 낼만 하다.

황순종씨는 연중 장아찌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만5000평은 돼야 하기 때문에 현재 자신들이 짓고 있는 5000평외에 나머지 1만평은 일반 농가가 지은 것을 구입해서 쓸 생각이다.

고추를 재배하는 것보다 훨씬 소득이 높고 영농도 수월하며 종자구입에서 부터 영농지도 등은 황순종씨가 할 것이기 때문에 관심이 있는 농가에서 내년에 직접 생산에 참여해도 좋을 것 같다.

그동안은 남편의 고향에서 살았으니까 나머지 기간은 내고향에서 살자고 설득해 보은으로 이사한 후 막막했었던 이동진·황순종 부부는 이제는 새로운 삶에 안착, 중소기업 사장으로 변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농사짓기가 힘이 들기는 하지만 손에도 익숙해졌고 몸도 적응해 이제는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성공한 귀농인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세상사는 사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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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순 2009-07-19 23:29:19
올려주신 귀농부부 이야기 관심있게 잘 읽었습니다
울외를 사려고 검색하던 중에 가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이동진 황순종 부부님께서 농사지은 울외를 살수있게 도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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