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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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 보은신문
  • 승인 2005.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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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필(영진사 대표, BBS 회원)씨가 쓴 독자칼럼
‘노가다’. 분명 일본 말인 것은 금방 느껴진다.
일본이 우리 땅에 들어오면서 생기기 시작한 말인 듯하다. 그전의 농경 사회에서는 산업일꾼 들이 필요치 않았을 테니까. 거친 일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통칭적인 말, 노가다.

특히 건축 일을 생업으로 하고 사는 사람들을 그렇게 부른다. 조적, 목수, 토수, 미장, 철근, 잡부 그들은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그렇게 부른다.

힘없고, 배경 없고, 배운 것 없고, 투박하고, 비 오면 쉬고, 햇볕나면 일하고, 마치 다락 위에 있는 천수답처럼 하늘 만 쳐다보고 살고 있는 인생, 그런 막일을 하면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노가다라 한다. 내가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했으니 노가다 학력은 적당히 갖춘 셈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건축자재 장사를 하게 됐고, 그 일이 30년이 되었으니 평생을 노가다와 같이 한 인생을 살았다.

한때는 이 생활을 빨리 청산하고 다른 깨끗한 일을 찾아서, 사람들이 대접해 주는 일을 해야겠다고 계획도 세워 보고 실행도 해 보았지만 지금 나는 조그만 시골에서 여전히 작은 장사에 머물러 있다.

30년 동안 그들과 같이 살아오면서 항상 이방인처럼 서 있었으니 같이 흡수되어 살아주지 못한 내가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들이 고객이었음에도 그들을 위한 삶을 살지 못하고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갖고 살기를 원했었으니 이런 것도 배신행위는 아닐지 모르겠다.

척박한 삶을 사는 노가다와 풍요와 세련이 돋보이는 유지들과의 관계를 번갈아 가면서 살아온 내가 양쪽 세계를 비교해 보면 그래도 인간적인 모습은 그 투박한 인생 쪽에서 더 사람 향기가 나는 것은 역시 가난하고 부족하게 사는 것이 많은 겸손을 갖고 세상을 살게 하는가 보다.

노가다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아침부터 저녁까지 같이하는 삶을 살면서 그들의 긍정적인 면을 많이 보아 왔다.

우선 그들은 말의 중요성에 대해서 알고 있다. 한다는 말 한마디면 바로 실행에 옮긴다. 행동이 빠르다는 것이다.

말은 곧 계약서이고 보증서 이다. 배움이 많지 않으니 말에 대한 중요성을 어떤 집단보다도 우선해야 만하는 편리를 터득한 삶의 한 방법 이라 하겠다.

말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하고, 말에 대한 신임을 얻지 못한 사람은 여지없이 그 사회에서 도태되고는 한다.

감정적 표현이 솔직하고, 숨김이 없으며, 말이 잘 안될 때는 상소리도 거침이 없이 한다.

언제나 저 자세로 사람들을 대하고, 언제나 자신이 힘이 없음을 자각하고 산다. 그것이 자기의 본분을 잃지 않고, 겸손하게 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설음이 많으니, 풀어놓을 한도 많으니 술을 먹어도 말술이고, 취해서 하는 말은 그 해결해야 할 감정의 나머지도 많으니 독설도 서슴없이 나온다.

말할 때 말하고, 하고 안하고를 분명히 하고, 감정을 속이지 못하고, 흐르는 바람처럼 세파에 맡긴 채 유영하는 자유인. 그들과 같이 살아온 내 인생, 아니라도 해도 벌써 노가다가 되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니 너는 이미 노가다가 아니었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자주 너는 장사꾼 같지 않다고 손님들은 말한다.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나는 노가다 다. 손마디가 굵으니 노가다 고, 상소리를 잘하니 노가다 고, 싸움을 잘하니 노가다 다. 굳은 살이 베겼으니 노가다 고, 감출 것 없이 벗고 섰으니 노가다 다.

인수증 받지 않고, 영수증도 주지 않고, 한 번의 송사도 없이 30년을 말 한마디면 끝나는 인정을 바탕으로 장사를 한 나는 누가 뭐라 해도 노가다 다. 인감도장으로 계약서 쓰고, 못 믿어워 다시 공증을 하고, 끝내 법정에 서는.

기안하고, 설계하고, 공고하고, 업자 선정하고, 또 법전을 들여다보고 하는 노가다 아닌 대개의 공직 사회의 책상 앞에서의 허송세월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싶다.

그것은 인생 낭비라고, 노가다 식으로 살자고.... 나는 글 쓰는 ‘노가다’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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