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마니 생활 20년 내북 하궁 강연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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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마니 생활 20년 내북 하궁 강연광씨
  • 송진선
  • 승인 2005.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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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삼 누구나 캐서 가치도 하락했죠”
산삼을 캐는 일이 그리 흔하지 않던 때 심봤다 한 번 이면 돈을 좀 모았다. 더욱이 산삼에 대한 정보가 일반적이지 않아 감정하는 사람들이 장난을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임자만 만났다 하면 많은 돈이 수중에 들어왔다.

산삼을 캐는 일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번 산삼을 캐면 완전히 봉을 잡은 셈이었다.
산삼을 캐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인 심마니는 그들의 은어에서 비롯된 말로, ‘심’은 산삼, ‘메’는 산, 따라서 ‘심메’는 산에서 산삼을 캐는 일을 말하고, ‘마니’는 사람을 뜻한다.

예로부터 한국에서 산삼이 나는 곳으로 손꼽히던 개마고원·평안북도·강원도·지리산·덕유산 일대의 산악지대 부근에는 심마니들이 모여 살며 집단활동을 했다.

영약(靈藥) 중의 영약이라는 산삼은 매우 귀할 뿐만 아니라 찾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그것을 찾아내는 일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산신령의 의지가 개입되는 문제라고 믿었던 심마니들은 산삼이라는 약초의 신비함 때문에 매우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은어를 사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부정이 있으면 삼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행동체계에 있어서도 금기시하는 것이 많았다.

산삼을 찾기 위해서는 길일을 택하여 산에 들어가는 날로 정하고, 수일 전부터 몸가짐을 정갈하게 해야 했다.

살생 등 부정한 행동은 특히 금했고, 술과 비린 음식을 삼갔으며, 심지어는 부인과의 잠자리도 피했다. 또한 산삼을 캐러 가기 전에 꾸는 꿈으로도 길흉을 점쳤다고 한다.

이를테면 상여 나가는 꿈이나, 털이 있는 짐승의 꿈, 무를 얻는 꿈, 송장을 짊어지고 하산하는 꿈, 산삼이 사람으로 변신하는 꿈, 조상 꿈, 까마귀 꿈은 아주 좋은 징조를 보이는 꿈이라 여겼고, 눈이 내리거나 얼음이 어는 꿈, 무를 남에게 주는 꿈, 지팡이가 부러지는 꿈은 나쁜 꿈이라고 믿었다.

이들은 보통 4∼8명이 한 조가 되어 산신제를 지낼 제수와 기타 준비물을 챙겨서 입산하고 산에서는 먼저 근거지를 마련한 후에 산신령을 청하여 산신제를 지낸다.

‘마대’라는 지팡이로 숲을 헤치며 산삼을 찾아다니다가 산삼을 발견하면 “심봤다!”라고 소리를 쳐서 동료들에게 알린다.

이때의 “심봤다!”라는 외침은 영약을 발견한 심마니의 감격의 극치라고 한다. 삼을 발견한 사람은 일행이 모인 가운데 산삼의 뿌리를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캐내고, 나머지 사람들은 산신에게 경의를 표하며 엎드린다.

다 캐내고 나면 감사의 의미로 다시 한 번 산신제를 올린 뒤 하산한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여도 강원도 인제 지역 일부에 70∼80여 명의 심마니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산삼과의 인연
내북면 하궁리 강연광(48)씨가 처음 산삼을 접한 것은 산더덕을 채취하는 자리에서 이뤄졌다. 한화에서 납품을 담당했던 강씨는 군부대 등을 주로 다녔다.
1984년 5월 최전방인 강원도 한 군부대에 제품을 납품하고 돌아오는데 산더덕이 많다는 소리를 들어 시간적인 여유도 있어 주변 산에서 더덕을 채취했다.

산더덕은 주변만 가도 더덕 교유의 향이 진하게 풍기기 때문에 산더덕을 채취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중 산삼 도 한 뿌리 캤는데 산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어 그냥 버렸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가지고 왔는데 60년근 산삼이었다.

산삼에 대해 잘 아는 작은 아버지와 강씨는 강원도의 그 곳을 다시 찾아가 47뿌리를 캤다. 산삼이 밭을 이뤄 크고 있있던 것.

그 이후 강씨는 산삼에 대한 책을 보고 기본적인 지식을 익혔고 시간이 나는 대로 산삼을 채취하러 다녔다.

그래서 음지식물의 특성상 남동쪽보다는 북서쪽에서 산삼이 잘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삼을 채취해도 어떻게 판매해야 할지 몰라 처음에는 산삼을 감정하던 한의원에 위탁 판매를 해왔는데 산삼이 아주 귀했던 시기여서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되었고 심마니로 이름을 얻었다.

그렇게 강씨는 충청권에서는 심마니로 이력이 붙자 그에게 산삼에 대해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이런 저런 지식을 가르쳐주고 또 산삼이 있을만한 곳을 데리고 다니며 직접 채취 시연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에게 배운 사람이 지금 60여명이 넘는다.

IMF로 심마니 급격히 증가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귀해 매우 고가를 유지했던 산삼이 IMF를 겪으면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생계수단으로 산나물을 채취하는 것에 눈을 돌려 산마다 이들로 북적거렸다.

고사리도 꺾고, 홑잎도 뜯고, 취나물도 뜯고 버섯도 따는 등 산채는 일자리를 잃은 이들에게 좋은 생계 수단이 되었고 산삼도 채취하는 천운도 누려 수입이 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심마니는 늘어났고 그만큼 시중에서 쉽게 산삼을 구할 수 있었다. 가격도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산삼을 밭에서 재배한 것이 인삼의 초기이고 인삼씨를 사람이 산에 뿌려 재배한 것이 장뇌삼이다.

인삼씨 열매를 따 먹은 새가 산에 배설한 곳에서 씨앗이 자란 것이 봉삼이다.

이것이 자연상태에서 자라 맺은 씨앗이 땅에 떨어져 1세대씩 번식시킨 것이 인종이다. 이 인종이 다시 씨앗을 맺어 그것이 자란 것이 지종이다. 충청도 등 중부권에서 발견되는 것은 대부분 인종이나 지종이라고 한다.

천종은 산삼씨가 산에 떨어져 몇 세대를 거쳐 자란 것으로 산삼 중 가장 귀해 값을 치기 어려울 정도다.

봉삼은 실뿌리가 많고, 지종은 뇌두가 길다고 한다. 품종이 좋은 것일 수록 잎이 작고 줄기가 가늘어지고 줄기 색깔도 희어지며 삼 뿌리는 더 작아진다고 한다.

강씨는 요즘은 중국 산삼을 들여와 우리나라에서 키워서 산삼이라고 해서 파는 경우도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이같이 산삼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강씨는 자신이 직접 산삼을 채취하기보다는 산삼을 채취한 사람들의 것을 산삼을 구하는 사람에게 연결해주는 위탁 판매를 더 많이 하고 있다.

그런가운데 자신도 1년이면 150일 가량 산삼 채취에 나서는데 충남·북 지역의 산을 주로 다니고 3박4일, 4박5일 일정으로 강원도 심신산골로 들어가기도 한다고 한다.

올해도 봉삼과 인종 120뿌리를 캤고 지금까지 캔 1만2000뿌리 중 120년생 인종이 가장 오래된 것이었다고 한다.

상품성 낮은 것 주위에 헌사
84년 처음으로 심봤다를 외친 강씨는 당시 병석에 있던 장인에게 그 산삼을 제공했다.
사포닌 성분과 게르마늄 성분이 있어 체질을 변화시키고 맛은 달고 약간 쓰며 성질은 약간 따뜻하고 비 ·폐경에 들어가면 원기를 많이 보해 주는 것으로 알려진 산삼을 먹은 장인의 병이 나아 처음 효도하는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가족들도 모두 산삼을 먹었고 매년 두 차례씩 부모님이 산삼을 복용한다.
생약 성분이 강한 산삼은 물을 끓여 90도 이하로 식힌 후 넣어서 우려먹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하는 강씨는 지금도 상품성은 떨어지지만 효과는 그대로인 산삼의 상당 부분을 주위 사람, 노약자 등에게 나눠줘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이원초등학교와 내북중학교, 대전고등학교를 나오고 보안대에서 군 생활을 한 강씨는 한화인천공장에 입사해했다가 보은공장으로 이동, 상당기간 근무를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96년 상궁 저수지 변 하궁리 고향마을에서 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강연광씨는 부인과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세상사는 사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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