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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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의 봄
  • 보은신문
  • 승인 2005.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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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일 용 (탄부 벽지, 서울 면목)
우리집 베란다엔 지금 봄이 한창이다. 피워주리라 기대하지도 않았던 연산홍이 뾰족뾰족 꽃망울을 내밀었을 땐 뛸듯이 기뻤다. 그런 연산홍이 그 화사한 꽃망울을 활짝 터뜨리며 배시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한해도 거르지 않고 예쁘게 피어 나를 기쁘게 해주는 군자란! 화분 2개에서 5개의 꽃대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젠 제법 화려한 모습을 여보란듯 뽐내고 있다. 군자란! 역시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해내는 꽃이다.

그리고 그 옆에 양란의 일종인 깅기아나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깅기아나는 꽃모양은 볼품없으나 그 향이 아주 환상적이다. 한달여는 온 집안에 그 좋은 향을 가득 채워주어 가족뿐아니라 오는 손님에게도 행복을 선사해준다. 1월 중순쯤엔가부터 꽃대를 내밀던 동양란은 홀로 오래오래 날 기쁘게 해주더니 군자란이며 연산홍이 피기 시작하자 기가 죽었는지 조금씩 시들더니 이젠 그 일생을 다한 듯 추레한 모습이다. 허나, 이 얼마나 장엄한 모습인가. 나는 이런 화초에서 어떤 경건함 같은걸 느낀다.  대자연의 이치에 한치의 거슬리는 법없이 순응한다. 때가되면 피고 때가 되면 또 진다. 오고 또 가는 때를 안다는 것,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오고 가는 때를 모르고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추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우리는 겸허한 마음으로 작은 화초에서 대자연의 이치를 배워볼 일이다. 나는 행복이란 늘 느끼는 사람의 것이란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지만, 우리집 베란다에서 화초들과 함께 할때 더없이 행복하다. 그냥 바라만봐도 좋다. 마치 내가 키운 자식처럼 애정이 간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흐뭇하다. 어쩌면 이리도 오묘할 수가 있을까. 무슨 힘으로 이토록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꽃과 향을 만들어 우리 인간들을 이리도 행복하게 해줄수 있단 말인가. 깊은밤 휘영청 밝은 달빛이라도 스며들땐 감동 그 자체다.  이태백이 아니더라도 시한수 절로 나올듯 깊은 감흥에 젖는다. 꽃과 나, 그리고 달빛! 난 그들과 더불어 술잔을 기울인다. 이들과 함께 마시다가 달 기울어 밤 깊어지면 이들과 헤어진다. 난 이봄이 다가도록 이들과 더불어 이런 행복감을 만끽한다. 아! 이제 며칠 후면 우리집 베란다는 여느 꽃동산을 방불케 하리라, 연산홍은 만개하면 마치 불타는 듯 화려하다. 군자란의 그 화사한 모습은 또 얼마나 근사한가. 그 옆에 모습은 소박하나 멋진 향을 뿜어주는 깅기아나는 또 얼마나 예쁜가, 아! 우리집 베란다에서 느끼는 이 행복! 이런 행복을 누가 짐작이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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