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품질 쌀 직접 도정해 소비자에게 공급
쌀 관세화 유예가 타결됐을 때만 해도 수입쌀이 우리 식탁에 오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그런데 당장 올해 9월이면 수입쌀이 우리의 식탁에 오른다고 한다.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한숨이 터져나왔고, 겨울 농한기를 보냈지만 그저 맘 편히 농한기를 보내지 못했다.
또 한 해 농사를 시작할 시기가 다가와서 농민들은 못자리 설치용 하우스 설치할 논의 로터리를 치고, 볍씨를 뿌릴 상토를 체에 쳐서 육묘상자에 담아놓고 볍씨는 소독약을 풀어 물에 담가놓았지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렇다고 손놓고 수입쌀에 우리의 밥상을 물려줄 수는 없는 일이다.
위탁영농까지 10만평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보은읍 수정리 박상국(47)씨도 걱정이 크지만 친환경 농법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밥맛을 낼 수 있는 고품질 쌀을 생산하면 경쟁에서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차있다.
밥맛나 쌀 브랜드로 전자상거래 시작
현재 내 소유, 농업기반공사를 통한 임차, 그리고 위탁영농까지 10만평 가량을 짓고 있는 박상국씨는 수입쌀과 경쟁해서 이기기 위해 시작한 것이 바로 고품질 쌀을 생산하는 것이었다.
박씨가 이를 생각한 것은 지난 2003년. 처음 3000평에서 게르마늄 쌀을 생산해 게르마늄 성분이 들어있다는 인증까지 받았으나 어디에다, 누구에게 판매를 해야할 지 막막해 생산만 해놓고 그냥 자가 소비하고 말았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참숯 쌀을 생산했지만 이 역시 판로가 막막해 자가 소비와 밥맛이나 보라며 아는 사람들에게 선물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이 그저 모를 심어 물을 잘 대고 햇볕만 잘 받으면 가을철 별 무리없이 수확하는 그런 벼농사가 아니라 박상국씨는 기능성 쌀을 생산해 좀더 고가에 판매를 하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했다.
쌀이 수입되는 마당에 그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능성 쌀이 판매로는 연결되지 않았지만 박상국씨는 포기하지 않았고 브랜드를 개발하고 직거래를 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미쳤다.
그래서 11월부터 ’황토밥맛나’ 쌀 브랜드를 개발, 현재 특허 출원 중에 있으며 홈페이지(www.ssal2210.com)도 구축해 올해 1월15일 사이트를 오픈 했다.
현재 밥맛나 쌀은 택배비를 포함해 일반미와 현미 모두 20㎏ 5만5000원, 10㎏ 2만9000원, 찹쌀 20㎏ 6만2000원, 10㎏ 3만2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박상국씨는 고품질 쌀을 생산하는 것은 바로 땅심을 높여야만 가능하다는 생각에 비료에 의존하기보다는 퇴비를 뿌린다.
볏짚과 소 분뇨를 바꾸는 방법으로 퇴비를 확보해 전체 논에 뿌려 깊이 갈이를 한다.
땅이 살아나 비료를 적게 줘도 작물이 튼튼하게 자라기 때문이다.
올해는 추수 후 호밀도 재배해 퇴비로 사용하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땅심을 높여온 박상국씨는 올해 1만평에서 게르마늄 쌀을 생산할 계획이다.
게르마늄 쌀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추수 후 퇴비를 뿌려 논을 갈아 논 다음 올해 모내기 전 물 로터리를 하고 게르마늄 가루를 뿌린다. 그리고 모내기를 하고 난 다음 3회 정도 엽면시비를 해야 한다.
게르마늄 성분은 체내에서 각종 중금속과 결합하여 몸밖으로 배출되며, 음식물 속에 들어 있는 농약성분이나, 화학성 물질, 육류 속에 들어 있는 항생제 등 유해한 모든 물질을 분해하고 면역력을 높이고 체내에 부족한 산소를 공급해 항산화 작용을 함으로써 노화를 예방하는 것은 물론이고 몸의 자연 치유력을 높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미기도 갖춰 직접 도정해 공급
박상국씨는 소비자들이 밥맛이 좋다고 꼽는 품종을 선택해 재배하고 있다.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밥맛 테스트에서 가장 밥맛이 좋은 평가를 받은 일품벼를 40% 정도 재배하고 밥맛도 좋으면서 소비자들이 가장 잘 아는 추청벼는 33% 정도, 나머지 밥맛도 좋으면서 병에 강하고, 수확량도 많은 대안벼는 27% 정도를 재배한다.
기본적인 농기계인 콤바인, 이앙기, 트랙터, 비료 살포기, 논두렁 조성기 외에 건조기도 3대나 되고 여기에 소비자가 원할 때마다 도정해 판매하기 위해 지난해 가을 정미기도 구입했다.
소비자가 쌀을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즉시 도정해 공급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춘 것이다.
당장 올해 수입쌀이 가공용도 아닌 주식으로 일반인들의 밥상에 오른다고 하는데 겁도 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직접 도정해서 판매하는 체제로 전환을 꾀한 것은 그동안 직거래를 해본 결과 소비자들의 호응이 좋았기 때문이다.
또 호주도 견학하고 중국도 견학한 박상국씨는 중국의 경우 현재는 쌀을 수출하지만 앞으로 수입국으로 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고 특히 정부수매가 없어지고 모두를 시장에 출하해야 하는 경쟁 체제로 전환이 된 시점에서 자신이 판로를 찾지 않으면 제대로 팔지도 못하고 재고가 쌓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직거래를 한 것도 친인척 등에게 밥맛이나 보라고 보내준 것이 밥이 좋다고 주변으로 계속 소문이 나서 이들이 스스로 주문을 해온 것이다.
그래서 밥맛은 역시 자신이 생산한 쌀이 품질이 우수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완전미 생산체계를 갖춰 소비자가 주문하면 곧바로 쌀을 찧어 판매하는 체계를 갖춰 경영비를 그만큼 줄일 계획이다.
앞으로 보완해야 할 것은 365일 햅쌀밥맛을 느낄 수 있도록 냉각해서 저장할 수 있는 저장시설을 갖추는 것이다.
현재 밥맛나 사이트는 구축한지 얼마 안돼 아직 네티즌들의 접속이 생각만큼 많지는 않다. 그래도 조급해하지 않고 앞으로 2년간은 홍보기간으로 정했다.
그리고 전국의 수많은 쌀 브랜드 및 전통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여주·이천 쌀 등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혼합하지 않고 품종별로 쌀을 찧어 고유의 밥맛을 느낄 수 있도록 유지하자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우리 만큼 고생한 사람도 없을 것
강원도 횡성에서 79년 박상국씨 부모님은 논800평, 밭400평을 구입해서 보은읍 수정리 현재 박상국씨의 부인인 황은순씨 집 옆집으로 이사했다.
객지에서 땅이 많은 것도 아니고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객지에 나가서 공장에 취업이라도 했어야 했지만 딸만 다섯에 아들은 자신뿐이었던 부모님을 두고 객지로 나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고 얼마 안되는 땅을 일궜다.
당시 객지 생활을 하던 부인 은순씨는 주말마다 집에 오면서 새로 이사온 동갑내기 박상국 청년을 보게 되었고 나이도 같아서 자연스럽게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다.
그렇게 자주 얼굴을 보고 지낸 두 청춘 남녀는 정이 들었고 연인으로 발전,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다.
하지만 부인 은순씨의 어머니, 오빠 등 가족들은 그저 평범한 박상국씨에게 딸을, 동생을 주기가 싫어 반대가 심했다.
반대를 사랑으로 극복하고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으로 결국 22살때 결혼에 골인한 이들은 정말 열심히 살았다.
남들보다 작물을 일찍 수확하면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번다는 생각에 지금과 같은 하우스는 꿈도 못꾸고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대나무로 지붕을 만든 하우스에서 토마토, 시금치, 가지, 오이 등을 재배했다.
수확한 농산물은 대전 등 도시지역 도매시장에 넘기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보은 시장은 물론 경운기로 말티고개를 넘어 내속리면 상판리부터 시작해 사내리까지 동네마다 들어가 이동판매를 했다.
그렇게 몸은 고생이 되는 생활이었지만 나름대로 소득이 짭짤했다. 그리고 점차 요령도 생겨 시골 동네를 들어가 이동판매를 할 때는 채소 뿐만 아니라 복숭아, 참외 등도 함께 판매해 이득을 높였다.
그렇게 영농에 정착한 박상국씨는 86년 농어민 후계자로 선정되면서 600만원의 후계자 자금을 받아 시설 하우스를 설치해 본격적으로 시설채소 생산을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만큼 돈을 벌지 못한 채 2년 하다 접고 한우를 시작했다. 하지만 사과가 단보당 소득이 높다는 말에 축산을 정리하고 사과과수원을 임대했다.
집과 과수원이 멀어 과수원과 인접해 있는 축사관리사로 들어가 축사를 관리해주면서 과수원을 운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과나무가 고목이었기 때문에 사과가 형편없이 작았다. 대도시로 출하할 정도의 품질이 아니었기 때문에 생산한 사과는 일일이 소매로 팔아야 했다.
시장에서 좌판을 펴 판매를 하고 젖먹이 아이를 업고 배달을 하는 것도 다반사였지만 그때는 그게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부인 황은순씨는 남편이 귀가 얇아서 그렇다며 단보당 소득이 높아 돈을 벌 것이라는 남편의 기대와는 달리 사과농사 3년동안 오히려 1000만원 손해를 보고 손을 털었다.
그러다 농기계를 이용한 위탁영농을 해보라는 처남의 제안에 91년 위탁영농을 시작했다.
당시 못자리는 본인들이 하고 위탁은 논을 갈고 물 로터리 치고 벼를 베는 것이 고작이었다.
소형 농기계를 구입해서 시작한 박상국씨는 논갈이를 부탁해오면 한 번 돌 것 두 번 돌고 하는 식으로 내 땅처럼 꼼꼼하게 성의껏 논을 갈았는데 나중에 나이가 들어 농사를 짓기가 어려운 사람들도 박상국씨에게 아예 땅을 맡겼다.
그동안 그가 했던 채소재배, 한우사육, 과수원, 위탁영농을 겸한 논농사 중 그래도 재미를 본 것이 바로 논농사였고 위탁영농도 점차 늘어나 6만평에 달했다.
땅도 조금씩 살 정도로 논농사에 재미가 붙은 박상국씨는 농업기반공사를 통해 임차도 해가며 영농규모를 늘려 현재 경작하는 논은 10만평에 달한다.
수정리를 비롯해 죽전리, 금굴1·2리, 이평리, 교사리, 용암리까지 그가 경작하는 논이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다.
지금도 맡겨오는 농가가 있지만 여력이 안돼 더 이상은 양을 늘리지 않고 있다.
대전대 대학원생인 큰 딸과 역시 대전대 생물학과를 재학중인 아들, 그리고 내년에 대학에 진학하고 올해는 일본을 연수하겠다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작은 딸 이렇게 셋인 박상국씨는 품질관리만 잘되고 홍보만 잘되면 보은쌀은 분명히 그 어느 지역에서 생산된 쌀보다도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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