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만에 받은 눈물의 한글 졸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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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만에 받은 눈물의 한글 졸업장
  • 곽주희
  • 승인 2005.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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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외초 17회 졸업생 77회 졸업식서 감회의 눈물 흘려
“오랜 숙원이었던 희망이 오늘에서야 바로 잡아지는 것 같습니다. 너무 기쁘고 감격스럽습니다.  학적부에 있는 이름만 한글로 바로 잡힌다면 눈감기 전에 다른 소원은 아무것도 없겠습니다.”

지난 17일 열린 산외초 졸업식은 다른 초등학교 졸업식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졸업식이 거행되기도 전인 9시부터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학교 현관문 앞에 삼삼오오 서성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들 목에는 한글로 똑똑히 17회 졸업생 아무개라는 이름이 적힌 명찰이 걸려있다.
모교 졸업식에 참석한 원로동문인 이들은 지난 45년 2월 25일 졸업한 산외초 17회 졸업생들이다.

한글로 된 이름이 아닌 창씨개명(創氏改名)된 뒤 일본 이름으로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은 70대 노인들이다.

오늘은 이들이 한글로 된 본명이 실린 감격스런 명예졸업장을 받는 뜻깊은 날이다.

산외초등학교(교장 서병욱, 56)는 지난 17일 열리는 77회 졸업식에서 1945년 2월 졸업한 17회 졸업생 27명에게 한글 이름이 적힌 명예졸업장을 전달하는 수여식도 병행해 열렸다.

손자뻘 되는 후배들과 함께 영광스런 졸업장을 받아든 원로 졸업생들은 벅차오르는 감격을 억제하지 못하는 듯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이 뒤늦게나마 한글 이름으로 된 졸업장을 받게 된 것은 지난해 3월 60년 만에 열린 동창회에서 일본에 빼앗긴 졸업명을 되찾자는 데 뜻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전국에 흩어진 동창생 27명을 수소문한 뒤 지난해 3월 21일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동창회를 연 원로 졸업생들은 일본에 빼앗긴 졸업장 이름을 되찾기로 결의한 뒤 학교 측에 ‘1940년 강제로 창씨개명을 단행해 졸업증서에 일본인식 성명으로 되어 있어 졸업증서 성명을 입학성명(호적부 성명과 일치)으로 수정하여 수여해달라’고 모교에 청원서를 냈다.

이에 학교 측은 총동문회, 자모회, 운영위원회에서는 지난해 12월말 졸업장 수여 대상자 27명(남자 21명, 여자 6명)을 확정하고 졸업대장 비교 확인 작업 및 청원인들과 명예졸업식에 관한 협의를 마치고 60년 전 촬영된 졸업사진과 함께 정성스레 만든 명예졸업장을 준비했다.

이날 졸업식에는 20명의 17회 원로 동문들이 참석해 감격스런 명예졸업장을 받았으며, 손자뻘 되는 후배 14명에게 정성이 담긴 한자자전을 선물로 전달해 6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동문 선후배간 돈독한 정을 쌓아 참석한 가족과 기관단체장들로부터 박수를 받는 등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졸업 당시 반장을 맡았다는 박영식(74, 산외면 오대리)옹은 “45년 졸업할 때 ‘다케야마 에이쇼쿠(竹山榮植)’라는 일본 이름의 졸업장을 받았다. 졸업장을 볼 때마다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낯설었는 데 60년만에 내 이름으로 된 졸업장을 받아 가슴이 벅차다” 며 “얼마 남지않은 인생 소원이 또 하나 있다면 명예 졸업장 수여를 계기로 학적부 이름도 한글 이름으로 바로 잡아 한(恨)을 풀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병욱 교장은 “암울한 역사 속에 응어리진 한을 풀어주기 위해 학교운영위원회와 협의해 명예 졸업장을 만들었다” 며 “70대 중반을 넘긴 졸업생 중 상당수가 타개한 뒤지만 일부에게나마 당당히 본명이 적힌 졸업장을 주게 돼 마음 뿌듯하다”고 말했다.

한편 산외초 77회 졸업생 14명(남 8명, 여 6명)은 모두 보은중학교와 보은여중으로 진학했으며, 전원이 학력상 등 각종 상을 받았고, 전원이 기관 및 단체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아 더욱 뜻깊은 졸업식이 됐다.

특히 졸업생 전원에게 학교생활을 하면서 활동한 사진과 학생 개개인들의 사진을 담은 CD타이틀을 졸업앨범으로 대신해 전달, 컴퓨터 세대인 14명의 졸업생들에게 큰 선물이 됐다.

또한 어머니회에서는 이날 뜻깊은 졸업식을 위해 3일전부터 200명분의 맛있는 음식을 장만해 점심을 대접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명예졸업장을 받은 17회 동문은 이용근(75), 장준필(76), 김봉기(76), 최성환(75), 이주희(75), 이양하(75), 유종찬(75), 박영식(74), 류광현(74), 김연중(74), 이기대(74), 류종현(74), 송석준(75), 김상규(74), 송찬용(73), 구성서(73), 이종면(73), 노재구(73), 김해준(73), 조석원(72), 정양임(78), 이성우(71), 박옥현(75), 송재의(74), 구능회(74), 김순애(73), 김영자(73)씨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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