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암 김정(金淨)선생(1486∼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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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암 김정(金淨)선생(1486∼1521)
  • 보은신문
  • 승인 2004.1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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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장 인물 탐방
출향인이 귀향할 수 있는 고향
5).도시인구의 대부분은 모두 농촌 출신이다. 보은의 출향인이 30만이 넘다고 한다. 이들 모두가 속으로는 자신이 태어나 자란 농촌이 풍요로운 곳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고 있지만 자신은 그곳으로 돌아가 정착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농촌의 여건이 풍요로운 곳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요원한 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옛 선인들은 조정의 부름을 받아 일하다가 그것이 끝나면 낙향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요즈음은 그런 현상을 거의 볼 수 없으니 그 만큼 적응하기가 더 어려워진 때문인가?

이럴수록 고향은 더 폭 넓은 아량으로 모든 것을 감싸주고 수용하는 너그러운 고향이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얼마 전 출향인사로부터 출향인이 작고하여 고향으로 장례를 치르러 왔는데 평소 망자가 그 마을에 도움을 주지 않았다하여 마을 사람들이 장례에도 참여치 않았고, 영문 모르고 올라간 사람마저 불러 내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오죽해서 그렇게 했을까 하고 한편으로는 이해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도 허전하고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고향에서 태어나 살다, 살길을 찾아 출타하였다가 죽어서 고향을 찾은 출향인을 좀 더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줄 수는 없었을까?

눈에 익은 산하에 돌아왔으되 옛 얼굴을 아는 이 없고, 산천을 헤매는 이 외로운 영혼을 위로해 줄 수는 없는 것인가?. 죽은 당사자는 물론이요, 영문 모르고 허탈해 할 자식들의 심중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고향 인심을 기대하였던 자식들의 눈에 아버지의 고향 인심은 어떻게 비쳤을까?

고향은 돌아온 탕자를 조건없이 받아주는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었으면 싶다.

외지인으로 하여금 보은에 대하여 좋은 이미지를 갖도록 군차원에서 폭넓은 배려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공덕을 쌓고 좋은 이미지를 얻기는 참으로 어렵지만, 그것을 잃기는 쉽다.

고향을 돕는다는 것도 말 뿐이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온 가족이 고향을 떠나 고향에 연고가 없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재경 출향인사 중에 김 홍목씨가 있다.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을 하시다 퇴임하신 분이데 현직에 있을 때의 얘기다. 졸업반 학생들을 데리고 졸업여행을 가는데 ,행선지를 보은 속리산으로 정하는 과정의 이야기다.

여행지를 보은으로 정하고, 2박 3일간 일정으로 서당골서 숙박을 하고 법주사와 문장대를 오가며 보냈다고 한다.

볼 것에 비해 입장료 등 비용도 만만치 않아 선생님들의 반발도 컷다고 한다. 보은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이것뿐이다 생각하고 졸업반 선생님들의 반대에도 이를 설득, 회유하고 우겨서 재직 3년간 3번 모두 보은으로 수학여행을 왔다는 후일담이다.

알게 모르게 자신도 보은 경제발전에 일조를 했노라고 털어놨다

6). 역사가 긴 민족일수록 유물. 유적 등 자료에 대해 둔감한 것 같다. 반대로 역사가 짧은 민족은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것에도 애착이 대단하다.

미국의 경우 역사가 300년도 안되기 때문에 우리가 보기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들은 소중히 관리하고 보관한다.

어떤 개인이 코카콜라병을 소장하고 있었는데 처음 코카콜라가 나오기 시작할 때의 드럼통만한 것부터, 물 양철통, 프라스틱통 등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백 종의 용기를 수집하여 보관하고 있어 그 변천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그 많은 분량을 모두 보관하다보니 큰 창고에 가득하다. 아무래도 땅이 넓은 나라에서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일 것 같다.

또 얼마 전 KBS 아침한마당 프로에 해외 입양자가 부모를 찾는 프로를 본적이 있다.. 28년 전 3살 때 미국으로 입양 간 아이인데 지금은 31세의 여인이 되어 자기 생모를 찾는 것이었다.

그 아이를 키워준 미국인 양모도 함께 동행하여 입양아의 모국에 왔다.

그런 데 놀라운 것은 28년 전 입양 올 때 그 아이가 입었던 옷을 그대로 펴 보이며 엄마를 찾는데 도움이 될까하여 가져왔다고 했다. 아이를 입양할 때부터 이러한 날이 올 것에 미리 대비하여 30년 동안 정성스레 보관해온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작은 것도 아끼고 사랑하는 깊은 배려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7)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어디를 가나 그 지역에서 특별히 존경하고 추앙하며, 정신적 푯대로 삼는 인물들이 있다.

외국에서는 주로 동상을 세워 그들의 공적을 기린다. 인근 제천에서는 제천 의병을 일으켰던 유인석 선생의 비각을 세우고 시장이나 각 단체장들이 새로 뽑혔을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이다.

제천에서는 의병축제를 열고 있는데 의병축제는 지역주민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줄 뿐 아니라 외부인 들에게도 널리 알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인접군인 영동군에 가면 난계 (蘭溪) 박연(朴堧)선생을 받들어 모시고 있으며, 진천에서는 김유신(金庾信)장군을 모시는 길상사(吉祥祠)가 성역화 되어 있어 온 군민이 기리고 추앙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 경춘선의 신암역은 역사이름을 김유정역으로 바꾸었다. 그 지역의 추앙하는 인물을 내세워 외지인들에게 친근감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우리 보은에도 민족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선인들이 있으나 군민들이 거의 모르고, 무관심한 가운데 역사속의 인물로 묻어버리고 있음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고장에서 나서 자란 성인들의 사상과 정신을 계승하고 숭앙하여, 생활의 지표로 삼아 군민이 대동 화합하는 구심점으로 삼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군의 상징이 될만한 표지나 길 이름 등도 이 고장 출신 성현들의 이름이나 호를 따서 이름 짓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제주 오현제에서는 매년 충암 등 오현의 행적을 추앙하는 축제를 열고 있으며, 전북 순창에서는 매년 8월, 충암, 박상, 류옥을 기념하는 삼인문화축제를 벌이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우리 고장 인사를 기리고, 추앙하고, 축제를 벌이고 있는데 우리고장에서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수수방관하고 있음은 결코 떳떳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 보은에서도 군민이 참여하는 축제로 승화시켜, 지역성인의 숭고한 정신을 후학들에게 심어주고 훌륭한 덕행을 본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끝)

/김 홍 영(마로 갈평)
·보덕중(5회)중동고, 고려대,
 고려대 경영대학원
·한국 증권거래소(26년), 현대증권
·미시간 주립대 학술연수(2년)
·경기대 사회복지대학원
·재경보덕중동문회 직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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