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 인물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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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장 인물 탐방
  • 보은신문
  • 승인 2004.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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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암 김정(金淨)선생(1486∼1521)
▶ 제주풍토록
내가 사는 곳은 제주 목의 성 동문 밖 반 리 되는 곳으로 금강사인데 옛 절터이며, 이웃은 없고 땅은 상당히 외진 곳이다. 초가 몇 칸을 세웠는데, 제도는 북쪽 지역을 따랐기에, 상당히 밝고 트여있다.

안에는 작은 온돌방이 하나 있고, 방 밖에는 누대와 정자가 한 칸 반인데, 역시 해가 들고 달이 든다. 정자의 처마 아래에는 늙은 감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두터운 잎사귀가 그늘을 이루고, 늘 이 정자에 앉아 있는데, 이 나무는 가까워서 만질 수도 있다.

집을 둘러서 큰 돌로 만든 돌담이 있는데, 쌓아서 그 높이가 한 장 남짓인데, 그 위에 사슴 뿔처럼 나무가시의 담장을 올렸는데, 처마에서 겨우 반 필의 높이이며, 담 둘레는 좁은데 국법을 따른 것이다.

그러나 돌담이 높고 좁은 것은 이 지역의 풍속이 모두 그러한데, 예측할 수 없는 바람과 그칠 줄 모르는 눈발을 방비하기 위해서이다.

하물며 나의 거처는 외져서 도적들도 염려가 되고 하여, 내 스스로 계산하여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지 약간 넓은 점이 있다. 단장이 막다보니 눈에는 좋은 것이 들지 않고, 비록 나무를 심는다고 하지만, 또한 재미도 없다. 또한 나는 시간을 보증할 수도 없고, 죽을 날이 멀지 않았으니, 나무를 심는 것으로 뜻을 삼을 겨를도 없다.

지금 전나무를 심어서 늙고 푸르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는 나의 취미를 일깨울 만 하더라. 명년 봄부터는 감자, 귤, 비자 등을 죽 심고 싶다.

집 담장 밖으로 정 북쪽으로 오래된 배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한 장 남짓이다. 가지는 성기고 잎은 얇으니 좋은 나무가 아니라, 잠시 가꾸어 정자로 삼고, 들러서 고죽을 심었다.

그러나 지세가 높아서, 북쪽으로 창해를 바라보니, 추자도의 여러 섬들이 뚜렷하게 눈 안에 들어온다.

조금 멀리 서쪽을 바라보니, 성안의 촌락에 안개가 자욱하고 관청에 버드나무가 있으며, 성남의 과수원에는 귤숲이 상당히 경치가 있다.

가장 가까이는 금강사의 과수원이 내려다보이는데, 귤과 유자가 가득 심어져 있고, 과수원은 정자에서 오륙십 여 걸음인데, 돌담장으로 막아져 있다.

그러나 작은 대나무 숲의 길이 통하여, 때때로 그 밑을 산보하기도 하는데, 옥 같은 잎사귀와 금 같은 열매가 푸르누르 한데 , 잘 익은 귤을 쪼개어 향기를 맡아보면, 그대가 말한 바 귤과 유자의 수풀에서 길게 노래한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때이니, 슬프게 고개를 늘이고 회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열악한 곳이나 이 정자가 의지되는 바가 있다. 또한 나는 다행이도 샘이 발원하는 곳에 사는데, 성남 과수원의 동쪽 모퉁이로 샘의 근원은 시작하자마자 곧 커져, 동쪽 성 밑으로 흘러나가는데, 내가 물을 길어 쓰는 데 보탬이 된다.

얼음처럼 차다. 단지 하류는 더러워져서 물놀이를 할 수가 없다. 바다 입구에 이르면 못을 이루는데, 은어가 생산되어, 혹은 그물로 잡고 혹은 낚시로 잡는다.

바다에는 작은 물고기 몇 종류가 있는데, 이렇게 하면 괜찮을 것 같지만 흥미는 무척 적다. 차라리 맑은 강의 산계곡이나 냇가의 즐거움이 더 낫다. 아마도 앉는 곳이 조금도 적당한 곳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바다낚시는 더욱이 풍랑이 넘실거려 절대 편안한 날이 적으니, 더욱 담백하고 고아한 맛이 없다. 또한 내가 어울리는 사람이 모두 이 고장 사람은 아니니, 곧 방군이라 해도, 어찌 흥취를 자아낼 수 있겠는가?

출타하는 것도 극히 드무니, 한 달에 한번 혹은 두 번에 불과하고, 혹은 한 달이 넘도록 배나무 정자를 나서지 않는다.

귤밭은 더욱 가는 일이 드문데, 가더라도 어정어정 혼자 걷다 보면, 단지 적막감만 더할 뿐이다. 골육이 멀리 떨어져 있고, 친지들은 아득하니, 옛날에 노닐며 어울렸던 사람들도 죽은 이가 많고, 하늘 끝에 외로운 몸으로 얼마나 세상의 일들을 맛봤는가?

보통 때 마음을 먹음에 본디 즐겁게 순리를 따르지 않은 적이 없으나, 문득 생각해보니 또한 슬프게 느껴지지 않은 적이 없구료.

9. 제언
1) 선비란 고품격의 인성과 지성을 겸비한 지식인을 말한다.
선비는 그 시대 건강성의 지표이다. 그런데 요즈음처럼 선비정신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최근 우리사회는 급속한 변화를 보여 왔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물질적으로는 풍요해졌으나 사람들은 자신의 출세와 안락만을 추구하며, 소비와 향락문화에 젖어 사치와 방탕, 거짓과 부도덕, 부정부패행위가 곳곳에서 성행하고 있다.

서로 존중되어야 할 사람을 짓밟고 올라가야하는 경쟁자로 인식하고 경제적 실리에만 급급한 결과 인간성의 파괴 및 상실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옛날 형제가 많았던 집안의 아이들은 사람이 달랐다. 모나지도 않고, 성내지도 않고, 둥글둥글 원만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가정은 가장 좋은 사회교육장이다. 요즈음에는 사람이 행하여야할 도리나 행위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윤리. 도덕의 가치조차 모호해졌다.

출산율이 1.17%로 세계최저수준이나 외국으로 향하는 입양아는 세계최고수준이다. 또한, 이혼하는 사람이 결혼하는 사람의 절반에 이른다고 한다.

PC나 핸드폰을 갖지 않은 아이들이 없다. 극히 편리한 기구이기는 하나 잘못 사용하면 큰 해악이 될 수 있다.

학교 올 때 학생들에게 휴대폰을 휴대하지 못하게 하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PC앞에 앉아있으면 컴맹인 부모로서는 공부 잘하고 있는 것으로 알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얼마 전까지 만해도 맞선을 보는 자리에는 부모가 참석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언제부터인가 핸드폰번호를 주고받아 저희들끼리 만나고 헤어진다.

돈대주고 멀리서 자식 걱정하는 것 이외에는 부모의 할일이 없어진 세상이다.  한집에 아이들 한 둘 밖에 없으니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을 리 없다.

자식을 둔 부모들 역시 자기자식 제일인줄 알고 갖은 응석 다 받아주니 그 자식들이 버르장머리가 있을 리 없다.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공중 의식이 있을 것이며, 부모형제 친척 간에 화목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상대방을 아끼고 존중하고 무던히 참고,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면 결혼생활인들 오래갈 수 있겠는가?

미국에서 들은 이야기다. 영특한 아이를 학교에 보낸 한국의 어머니가 미국 선생님이 총명한 자기아들을 칭찬해주기를 은근히 바랐으나 오히려 문제아로 지적받았다는 이야기다.

영특하고 총명한 (Clever) 아이는 자기만 알고 남은 이해하지 못하며, 비협조적이고 문제를 야기하므로 그야말로 문제아라는 것이다.

저만 아는 영특한 사람보다는 남을 돕고 배려할 줄 아는 협동적(Co-operative) 인간을 만드는 것이 미국교육이 나아가는 방향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각종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눈앞의 이익만을 중시하고 적응하는 교육에만 치중한 나머지 예절 및 인간교육은 소흘히 한데서 온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부작용은 한 단계 더 심각한 상태로 당분간 이어지고 난후 그때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마련에 부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부작용의 치유는 단지 지식의 전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서 시작하여 천륜과 인륜을 중시하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알며, 도덕과 예절을 숭상하는 인성교육에 중점을 두는 방법 이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된다. (다음호에 계속)
/김 홍 영(마로 갈평)
·보덕중(5회)중동고, 고려대,
 고려대 경영대학원
·한국 증권거래소(26년), 현대증권
·미시간 주립대 학술연수(2년)
·경기대 사회복지대학원
·재경보덕중동문회 직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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