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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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아내
  • 보은신문
  • 승인 2004.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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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는/아홉 켤레의 신발/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알전등이 켜질 무렵을/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생략-)

아랫목에 모인/아홉 마리의 강아지야/강아지 같은 것들아/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내가 왔다/아버지가 왔다/아니 십 구문 반의 신발이 왔다/아니 지상에는/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존재한다/미소하는/내 얼굴을 보아라.
(박목월 시, <가정>중에서)

이렇게 가족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시인 박목월은 밤에 서재에 홀로 앉아 시를 썼다. 그가 시를 쓸 때면 아내는 마당에 나와 조용히 거닐거나 안방에 앉아 성경을 읽곤 했다.

그러면 다섯 아이들 역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아! 아버지가 시를 쓰시는구나'하며 방에서 숨을 죽이고 꼼짝하지 않았다.

어느 날, 대학에 다니던 큰아들이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대문 앞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 살며시 그의 팔을 잡았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잡아끌고 골목길로 내려가면서 말씀하셨다.

"조금만 있다가 들어가자. 아버지가 우리를 보면, 저것들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것인데 하는 마음이 들어서 시가 써지겠니? 잠시나마 아버지 눈에서 비켜서 있자." 아내는 처자식을 지고 있느라 한없이 무거운 남편의 어깨에서 짐을 덜어 주지는 못하지만 시를 쓰는 순간만이라도 보이지 않게 하려는 마음이었다. 박목월 시인은 그런 아내의 마음을 알았던 것일까?

어느 해, 아내가 열 시간이나 걸리는 갑상선 수술을 받았을 때 그는 빨간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수술실 밖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010 -×××× - ××××
 여보! 당신 오늘 뭐 드시고 싶은 거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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