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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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의 자존심
  • 보은신문
  • 승인 2004.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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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초월해서 습격한 봄 눈은 온 나라를 놀라게했고 떠들썩하게 했다.
나 또한 고립되어 내의지와는 상관없이 할 수 없다의 차이가 크다는 것 실감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늘 특별한 일이 없으면 대문턱을 넘지 않지만 갑갑하거나 외롭다는 느낌은 조금도 없었다.

그런데 차를 움직일 수 없게 되고 보니 왜 이리도 심심한지 컴 친구도 ,책친구도 구땡이가(내 자동차 닉네임) 묶여 있으니 시들하다. 역시 우리 넷은 일맥상통하는 끊을 수 없는 벗들이다. TV를 켜 뉴스라도 볼라치면 혈압부터 오른다. 피난민 수용소 같은 고속도로에 헬기가 뿌려주는 먹을 것 주으러 뛰어가다가 넘어지고 또 뛰는 모습이, 먹고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우리 서민들의 모습과 너무 흡사해 눈시울이 젖어드는데 여의도에선 서로 물고 뜯고 혈안이다.

뭐 묻은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더니 국민 앞에 지은 죄는 도나 개나 그게 그건데 죄인이 탄핵하겠단다. 아예 TV를 꺼버렸다. 책장 위 낡은 상자를 내려 뒤적이다가 중학교 때 긁적거린 낙서장 같은 일기에서 유난히 시선이 머무는 글귀를 보았다.

‘동백꽃은 왜 홀로 지지않고 꽃잎들이 뭉쳐 함께 떨어질까. 동백꽃은 왜 오늘따라 시들지도 않고 쌩쌩한데 갑자기 떨어질까. 너무 아깝다’ 오늘따라 가슴 일렁이는 구절이다. 너무 아깝다는 그 말에 더 여운이 남는건 무슨 연유일까.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 다가온다. 아깝다고 할 때 가야제, 그거이 맘대로 안되거든… 아깝다고 할 때.

생각해보니 그것이 바로 동백꽃의 자존심인가 싶다. 시들어 흉한 꼴을 보이기 전에 너무 아깝다고 할 때 혼자가 ㅇ나니라 함께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유지한 채 손잡고 뛰어내린다. 얼마나 대단한 용기이며 자존심인가.

우아함을 으뜸으로 여기는 목련꽃을 보라, 시들어 떨어지면 우아했던 짧은 생은 금방 잊어버리고 어지럽힌 마당을 쓸며 투덜거린다. -시들기 전에 처량하지 않게. 자꾸만 되뇌이며 한숨이 나온다. 이미 시들고 이미 처량이 주위를 맴돌고 있는데 어찌해야할꼬.
동백꽃처럼 지금 뛰어내릴 순 없고 시드는거야 어쩔 수 없다해도, 흉하지 않게 처량하지 않게란 어찌해야 할꼬. 오늘 종일 끌어안고 씨름하는 화두가 되었다.
오 계 자 (보은 어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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