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로 보은군 농지개량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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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로 보은군 농지개량조합장
  • 보은신문
  • 승인 1990.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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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질줄 모르는 세상
착한 사람이 모여 하늘나라의 문앞에 앉아서 천국 들어가기를 고대하며 자기네들의 자리가 이미 예약되어 있다고 확신하며 큰소리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이상한 소문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내용인즉 '하나님께서는 다른 죄인들도 용서해 주실 것 같더라'는 것입니다.

이 소문을 듣자 거기에 모였던 자칭 선인들은 말문이 막힌 듯 의아한 얼굴로 서로 쳐다보기만하며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이 조용했다는 것입니다. 누구인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노기띤 음성으로 착한 사람들의 심중에 있는 말을 대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린 결국 헛수고만 했습니다. 우리가 이런사실을 미리 알기만했더라도 그렇게 힘들게 살지는 않았을텐데”라며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오”하고 일종의 궐기를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선인들은 마침내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하기 시작했고 그순간 그들은 하나님의 벌을 받아 지옥행 열차를 타게 되었답니다.

이상의 이야기는 프랑스의 희곡작가 장 아누일이 최후심판의 광경을 묘사한 것입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늙어가게 마련이지만 역사는 연륜이 거듭되어 갈수록 더욱 싱싱해지는 법입니다. 튼튼하고 힘차게 성장해야할 우리 모두가 왠일인지 무책임하고 나밖에 모르는 세상으로 무섭게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달팽이를 볼때면 자기 혼자만의 아늑한 밀실을 갖고있는 요령있는 놈같이 보입니다. 머리를 툭 건드리면 순발력있게 쑥하고 밀실로 움츠러드는 것을 봅니다. 무척 편리하고 안전한 자기 보호체제를 갖춘 놈입니다.

우리사회 안에도 이해와 용서와 협조라는 공동체의 생활 윤리를 무시한 채 자기만의 안전과 편리를 위해서 제법 까다롭게 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의 잘못은 용납지 못하고 자기의 잘못에 대해서는 무척 관대하며 구구한 변명이 많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잘난체하며 아무에게나 신세를 지거나 손해를 주지도 않는다고 장담합니다.

자기에게 이익이 생기면 생색을 내지만 다소라도 손해가 올양이면 재빨리 은폐를 잘하는 달팽이 같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남의 의견을 존중하고, 잘못을 용서하고, 남의 인격을 존중하며 협동했느냐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요즘은 모두 내 책임이 아니라고 합니다.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니 이정표 없는 나그네처럼 역사는 흐릅니다.

조용했던 집단과 계층들의 갈등과 이익관계로 무서운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데 책임지는 사람 없이 표류하고 있습니다. 오늘을 사는 모든 이들이 한 시대에 주어진 책임을 외면할 때 죽음의 그림자는 더욱 진하게 깔릴 것입니다. 흐르는 물은 언제나 썩지 않듯이 깊은 관심과 사랑스런 마음으로 책임을 다해줄 때 솟아오르는 태양처럼 역사는 힘있게 창출되어 갈 것입니다.


<생각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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