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총연맹 보은군지부 청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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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총연맹 보은군지부 청년회
  • 송진선
  • 승인 1990.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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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사랑하는 청년들의 모임
한국 자유총연맹 보은군지부 청년회(회장 정환기)는 1977년 8월22일 반공연맹 청년회로 출발하여 지난 '89년 4월14일 한국 자유총연맹 보은군지부 산하 청년회로 발족한 다음 13년이란 세월을 이땅에 정의와 사랑을 심기위해 노력해 왔다. 과거 반공연맹의 산하에 있을 때, 이들을 대하는 외부의 눈들은 거대단체로서 ‘정부의 입금이 작용하는 이념 단체일지도 모른다’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자유총연맹 청년회는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고 각 지역 사회에 봉사하는 단체로서, 보은을 사랑하고 보은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순수한 마음을 지닌 회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자유총연맹 보은군 청년회는 이제 봉사단체로서의 자리를 든든히 굳혔고, 그들의 봉사의 손길이 하나 둘 보은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1977년 8월22일,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당시, 40명의 회원이 상호간의 친목을 기여한다는 취지아래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청년회를 설립하면서 기존 단체와 균형을 맞추면서 일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며 “그러나 지금 청년회는 전국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단체로 성장하여 타 지부의 청년회에서 견학을 왔고, 무엇보다 회원들간의 단합이 남달리 잘 되는 것이 자랑이다”라고 청년회 1·2 대회장인 이지훈시는 설명했다.

자유총연맹의 전신인 반공연맹은 창립 당시만 해도 반공이념이 팽배했던 시기여서 그들의 활동도 대부분 반공영화 상영, 반공강연회등의 행사가 위주였다. 그러나 청년회에서 하는 일은 반공에 대한 것보다 사실은 지역 사회의 발전을 모색하는 봉사활동이 많다.

창립 당초부터 보은 경로당을 방문, 노인들을 위로하였고, 재해의연금을 모아 군내 11개 읍면에 밀가루 40포씩을 전달하는 등 청년회는 초기부터 이 지역사회에 그들의 이름을 새기고 있었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중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선정하여 장학금을 지금하고 교통사고로 입원중인 환자를 방문하여 위로하는 등 따뜻한 마음을 나눠주었다. 이중 그들의 기억속에 깊게 자리잡은 활동은 바로 78년 7월26일, 지금은 없어졌지만 죽전리에 있는 보은읍 예비군 훈련장의 샤워장을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뙤약볕이 불을 뿜고 있을 때 회원들은 모래를 나르고,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바르는 등 땀으로 목욕을 할 정도로 힘이 들었지만 그들의 손에 의해 샤워장이 완공되었을 때에는 해냈다는 뿌듯함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예비군 훈련장은 장안 군부대로 옮겨갔고 그 흔적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한 '82년 9월1일 보은읍 학림리에 소재(대바우)한 6.25때의 전적지 도로변에 민간인 반공 희생자를 추모하는 반공 충혼비를, 회원들의 쌈지돈을 모아 마련한 1백50만원과 회원들의 순전한 노력봉사로 건립하였다. 희생자들이 세월의 망각속으로 지워져갈 때 청년회는 그들을 기억해 내고 그들의 고귀한 정신을 받들어, 살아있는 정신적 지주로서 그 자리에 서있게 한 것이다.

'83년 6월12일에는 보은중학교에서 남부3군 자유총연맹 청년회원간의 친목과 유대를 도모하는 뜻에서 제1회 체육대회를 주최하였다. 그리고 다음 해 6월6일 영동군에서 주최한 체육대회에서는 종합 1위를 차지, 회원들의 단합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와 같이 그들이 쏟아내는 봉사의 손길과 편견섞인 눈으로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 전환의 작업은 쉴 틈이 없었다.

반공연맹에서 자유총연맹으로 이어진 청년회가 성장하도록 살림을 도맡아 꾸려온 역대 회장들을 살펴보면, 초대회장에 이지훈씨를, 그리고 '78년 회칙을 개정하여 남자회원으로 전원 구성하고 2대 회장에도 역시 이지훈씨를 선출, 같은 해 12월22일 회장 임기를 연임제에서 1년 단임제로 개정한 뒤, 3대회장 박수길, 4대회장 김병욱, 5대회장 김창우, 6대회장 윤덕환(작고), 7대회장 권형환, 8대회장 이영복, 9대회장 조영수, 10대회장 이영복, 11대회장 황종관, 12대회장 유영하, 13대회장 정석인, 현임 제14대회장에는 정환기씨가 각각 맡아 자유가 숨쉬는 청년회를 이끌었다.

'89년 4월14일 반공연맹에서 자유총연맹 청년회로 바뀐 지 1년 밖에는 되지 않았지만, 올해 그들은 지난 해에 실시한 사업을 평가하여 효과가 큰 것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우선 지난 4월15일 군내 직장 및 사회단체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군민의 체력증진을 위한 배구대회를 주최, 조직적으로 행사를 치렀다. 그리고 중고교생에게 자유수호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키고자 군내 중고교생 대표에게 전방 견학을 실시, 산교육을 주고자 했다.

자유수호를 위해 일한 자녀와, 가정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이들의 향학열을 북돋아 주려는 장학사업은 그들이 심혈을 기울여 하는 사업중 하나이다. 그리고 군내 각 기관단체 대항 사격대회를 개최하며, 주변의 불우 이웃을 찾아 온정을 베풀어 자립할 수 있도록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다. 위와 같이 자유총연맹 청년회의 활동을 보면 전국의 어느 청년회보다 모범적이다.

사회에서 편견을 가지고 그들을 포장하고는 있으나, 그 포장속의 알맹이는 '81년 연맹 이사장상, 82년 국무총리상, '88년 문공부장관상을 받은 알차고 견실한 조직체로서 횃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한국 자유총연맹 보은군지부장 김병우씨는 “청년회원들을 옆에서 지켜보노라면 정말 성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단체이름이나 한 번 내보자는 그런식이 아닌 살아있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대견해 한다.

“비록 사회에서 우리를 대하는 태도에는 편견이 있을지라도 우리 청년회원들은 묵묵히 사회에 봉사하고 있습니다. 말 한마디라도 격려를 해주면 회원들은 용기를 얻고 더욱 열심히 봉사할 것”이라며 조금은 서운한 빛을 띄우는 정환기회장의 모습을 봉사를 실천하는 순수 그 자체였다.

기획의원 8명, 이사 9명, 직전회장, 회장, 3명의 부회장 그리고 7개 분과로 편성되어 하나를 이루는 60명의 청년 회원들과 만40세 이상의 회원들이 포함된 16명의 특별회원들은 쓰러지지 않는 자유의 깃발을 안고 보은에 살고 있다. 언젠가는 2천7백22m의 높다란 백두산 천지에 자유를 심을 날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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