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스케줄은 백마강 유람선과 부여박물관 그리고 궁남지다. 몇 년 전 문화 해설사에게 질문을 했던 일이 생각난다. 백마강 이름에 관한 유래나 전설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분의 답은 간단한 민간설화였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의자왕을 상징하는 용을 낚으려고 백마를 밑밥으로 썼다는 설이 있습니다.”
내가 금강에 의문점이 있어서 관심을 두고 있었다.
한강이나 낙동강은 어디로 흐르든 한강은 한강이고 낙동강은 낙동강이지만 금강은 지역마다 다른 이름을 준다. 예를 들면 금강을 두고 옥천군 일대는 적등진강 또는 차탄강 등등 여러 가지고 공주지역은 웅진강, 부여 지역은 백마강 서천과 군산은 진강 또는 고성진강이라고 한단다. 각 지역마다 부여처럼 전해지는 설화가 있을 테지만 풀리지 않는 나의 궁금증은 금강의 발원지였다.
중학교 지리 시간에 한반도는 물이 북쪽에서 남으로, 태백산맥을 기점으로 서쪽지역은 동에서 서로 흐르고 동쪽 지역은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고 나는 각인되어 있었다.
속리산 천황봉에 떨어지는 빗물의 일부가 금강으로 흐른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발원지라고는 할 수 없다. 정확한 연도는 기억에 없지만 젊을 때다 금강의 발원지가 장수읍이라는 신문기사를 본 후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청주의 미호천, 대전의 갑천, 강경천, 논산천 등 이 모든 강물은 금강으로 유입되는 것이지 금강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옥천과 영동 사이는 예부터 금강이 흐른다. 그런데 발원지가 저 아래 장수읍이라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백마강 유람을 계획하면서 노트북을 열고 이런저런 검색을 하다가 금강이 대청호에 합류? 더 혼란스럽다.
내가 의문을 품은 것은 꼭 북에서 남이라는 인식이 아니라도 장수읍이 지리산으로 인해 해발 몇 미터인지 모르지만 높다 하더라도 여기 충북으로 흐르는 사이에 덕유산을 무시할 수는 없다. 장수읍에서 시작한 강물이 여기 충북까지 올라온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고도 못 믿겠다. 여러 방향으로 검색했지만 개운하지 않았다.
남한강을 보면서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동서남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낮은 쪽으로 흐르는 물의 섭리는 인력으로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지리에 통달한 것도 아니면서 무조건 남쪽지대가 낮다고 인식하고 있던 내가 우매했던 것 같다.
40여 년 전 충남대와 대전 mbc가 탐사대를 꾸려 발견한 장수읍 신무산 뜬봉샘이 금강의 발원지라고 발표할 때부터 의문을 가졌던 내가 이제 조금 풀렸다.
전부터 가졌던 궁금증이 풀리니 내일 백마강 유람이 더 기대된다.
다음 날, 구드래 나루터에서 황포돛배를 타고 절벽의 저 위에 있는 낙화암을 보면서, 뛰어내리는 궁녀들은 얼마나 절박했을까 싶었다. 옆자리 아줌마가 진짜 삼천궁녀가 다 뛰어내렸냐고 물었다. 예부터 우리 민족의 표현 방법을 설명했다. 예를 들면 서양의 경우 약 1만 명은 될 것 같은 인파라고 한다면, 우리 조상들은 구름같이 밀려오는 인파라고 표현하듯 많다는 의미의 수를 표현한 것이라 했다. 고란사 뒤 약수를 마시면서 역사시간이 됐다.
“궁녀를 그렇게 많이 거느렸다면 방탕이네 그러니까 망했지.” 라는 말에 그 삼천궁녀 때문에 억울한 이미지를 안게 된 의자왕을 설명했다. 재임기간 동안 십여 차례나 신라를 공격해서 수십의 크고 작은 성을 함락 했으며 빼앗긴 대야성(가야)을 찾기 위해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해서 백제를 공격했으며 결국 의자왕은 당의 장수 소정방의 포로가 되어 금강줄기를 따라 부여를 떠나 당나라까지 갔다. 의자왕의 백마는 소정방의 밑밥이 되어 백마강이라는 이름을 남겼다. 이정도로 해명은 했지만 따라서 비겁한 신라가 당과 손잡고 백제를 망하게 했다고 신라를 비겁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젊은이가 있다. 신라가 비겁하다는 말은 좀 거슬렸다.
“당시 신라보다 강국이라고 이유 없이 전쟁을 일으켜 무력으로 신라의 성을 야금야금 함락하는데 국토를 빼앗기고 속수무책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가요?” 반문했다. 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다름 힘을 빌리는 것은 동서고금 역사상 당연지사였다. 이유 없이 국토외 백성을 빼앗기고도 막연히 바라만 볼 수는 없었다는 신라의 진덕여왕 입장을 설명했다. 옆에 계시던 아저씨의 말이 명언이다.
“예나 지금이나 경우에 어긋나는 짓은 하지 말아야 혀, 끝이 안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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