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길 예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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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길 예술제
  • 오계자(보은예총 회장)
  • 승인 2022.11.0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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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이 저물고 있는 날이다, 오전은 충북대 인문학 강의를 듣고 가까운 지인과 셋이 속리산 세조길을 걸었다. 완전 축복의 길이다. 반세기를 보은에 살면서 더군다나 가을을 좋아하는 내가 여태 이런 굉장한 선물을 몰랐으니 흘러간 시간들이 아깝고 자연에 미안했다. 함께 온 작가들도 가까운 곳에 이런 환상적인 풍광을 두고 단풍맞이 멀리 갈 필요가 없다는 말을 여러번 되뇌였다. 
자연이 내뿜는 붉은 화려함에 취하며 몇발짝 걷다보면 노오란 세상의 은은한 아름다움이 넋을 앗아간다. 단순한 단풍 놀이가 아니라 자연의 예술제에 흠벅 젖어버렸다. 아름다움의 한도를 넘어 미친 가을계곡에서 행복이 이런 거구나! 내 가슴도 미친 듯 뛰었다. 등따숩고 배부르며 눈앞에 펼쳐진 금수강산 풍광에 빠지고보니 이것이 축복이로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살면서 받은 은혜 아직 다 갚지도 못한 내가 이렇게 축복을 누려도 될까 양심에 가책이 오지만, 먼저 떠난 그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고개를 들지만 하늘에 감사하고 자연에 감사했다. 
축복받은 고을에 살면서 그 진가를 몰랐던 자신을 돌아본다. 원래 남의 밥 콩이 더 굵어보인다는 옛말처럼 차를 타고 멀리 가야만 멋진 단풍놀이가 되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여기저기 지인들에게 사진을 발송했다. 세조길 예술제에 오라고. 
메시지 띄우느라 고개숙이니 계곡의 바위들은 독특한 매력으로 나를 부른다. 넝쿨을 머리에 이고 앉았거나 맑은 물에 잠겨 왼종일 물놀이를 하는가하면 반지르한 피부 일광욕 하는 너럭바위도 매력이다. 고개들어 하늘을 보면 아기별 이파리들이 살랑이며 하늘 무대에 귀여운 몸짓으로 예술제 분위기를 살린다. 
학창시절부터 가을을 좋아하던 내가 19년 전부터 몇 년 동안 단풍을 보면 눈물이 흘렀다. 이별을 준비하는 힘든 과정을 알기 때문에 ‘너희도 이별 준비 하는구나. 얼마나 애를 태울까, 얼마나 괴로울까’ 마음이 짠했다. 
너무나 긴 남편의 투병 생활에서 희망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어두컴컴한 터널 속이었다. 그 불행이 스스로 자초한 병이고 본인의 노력으로 훌훌 털어 낼 수 있는 상황인데도 자포자기한 상태라서 아픔보다 미움이 더 컸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후회와 미안함만 남는다. 뭣이 대단하다고 손 한번 잡으려면 톡톡 뿌리쳤던가, 뭣이 잘났다고 함께 가자는 시내외출을 그리도 뿌리쳤던가.        
밤하늘의 수많은 별처럼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당신을 만나 사랑을 배우기도 전에 티격태격 미움부터 배워서 남들처럼 애틋한 사랑 한번 주지 못해 미안하다. 외출 때마다 슬그머니 내손잡을 때 차갑게 뿌리쳤던 것은 싫어서가 아니라 쑥스러워 그랬다고 말해 주고 싶다. 좋은 인연을 만났지만 내가 맞춰주지 못했던 것 같아서 늘 미안하다. 당시에도 속으로는 남편이 참 상냥한 성격이라 고마운 생각을 했었다. 전형적인 경상도 스타일에 O형인 내가 그이에겐 얼마나 재미없었을까 싶어서 가끔 애교스럽지 못해 미안하다고 표현하면 “대신 당신은 유머감각 최고잖아.” 하면서 간지러운 애교보다 더 좋다고 했다.  
어제는 선생님께서 물어보셨다. “그립나요?” “아뇨 그냥 미안해요.” 대답했다. 아마 평소 대화중에 나도모르게 그이와 함께했던 일들이 나오게 되나보다.  
“미움조차 그리움의 일부인데 미안함이란 진한 그리움이지요” 선배 문인의 말에 오늘은 공감을 한다. 내 인생은 지금 11월인가 12월인가 묻는다면 욕심으로는 11월이고 싶다. 실제는 이별잔치인 가을 세조길이 축복의 길이 되어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주듯 얼마남지 않은 내 삶의 늦가을에 서서 생각이 깊어진다. 축복의 길 계곡이 베푸는 아름다움은 따를 수는 없지만 힘든이에게 위로를 주고 아픈이를 보듬어주는 할미가 되고 싶다. 떠들썩한 봉사활동은 못하더라도 소소하지만 따뜻한 보살핌을 주는 할미가 되고 싶다. 계곡의 단풍들이 좀더 오래오래 버텨서 더 많은이들에게 기쁨을 주면 좋겠다는 마음에 예쁜 별들 떨어질라 바람아 멈추어다오 가슴으로 빌었다. 이제라도 단풍을 보며 아픔이 아닌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음도 감사한다. 
비만 오면 드라이브를 즐기는 그이가 내 등을 꾹꾹 찔러서 데리고 나가던 취미도 전염되어 이젠 비가오면 나도 모르게 자동차열쇠를 손에 쥔다. 그이가 좋아하던 Kenny G의 트럼펫 연주를 들으며 혼자 드라이브를 한다. 비오는 날이면 더 미워죽겠다. 
축복의 길 예술제도 모르고 떠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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