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견새 울음소리 : 子規啼 / 자하 신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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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견새 울음소리 : 子規啼 / 자하 신위
  • 장희구(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승인 2016.06.09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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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93】
‘청구영언’에 고려 말 매운당 이조년(李兆年:1269∼1343)의 시조 한 수가 전한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은 삼경인 제/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라는 시조다. 텍스트의 시는 위 매운당의 시조가 시적배경이 되고 있다. 전해오는 우리의 전통 시조를 한역화하는 소악부를 저술했던 시인이었기에 가능했겠다. 두견새 우는 소리가 사람의 잘못으로 빚어진 것이 아니라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子規啼(자규제) / 자하 신위
배꽃에 달은 밝고 하늘은 오경인데
피 토하며 우는 소리 원망하는 두견새
알겠네! 잠 못 이룬 그 뜻을, 다정도 병인 양하니.
梨花月白五更天 啼血聲聲怨杜鵑
이화월백오경천 제혈성성원두견
진覺多情原是病 不關人事不成眠
진각다정원시병 불관인사불성면

두견새 울움 소리(子規啼)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1845)로 조선 후기의 문신, 화가로 알려진다. 시에 있어서는 김택영이 조선 제일의 대가라고 칭할 만큼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 가객 중의 한 사람이다. 파직과 복직을 되풀이하는 등 기복이 많다가 이조참판, 병조참판을 지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배꽃에 달은 밝고 하늘은 오경인데,피 토하며 우는 소리 원망하는 두견새. 다정이 원래 병인 것을 진작 깨달았지만, 사람들 일과 관계없는데도 잠 못 이루겠구려]라는 시상이다.
자하는 당시 국내외의 저명한 예술가, 학자와 폭넓은 교유를 했다. 1812년 중국에 가서 옹방강(翁方綱)을 비롯한 그곳의 학자들을 만나고 돌아온 이후 그 전에 쓴 자신의 시들을 다 태워버렸다.
칠언절구의 형식으로 논평한 [동인논시절구(東人論詩絶句)], 시조를 한역한 [소악부(小樂府)], 판소리 연행을 한시화한 [관극절구(觀劇絶句)]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한 시인이 배꽃이 필 무렵 달구경을 하고 있다. 멀리서 피 토하는 소리로 우는 두견새의 원망 소리에 차마 잠을 못 이룬다. 두견이 우는 소리와 관계는 없는 일이지만 잠 못드는 시인이다.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선현의 시조 한 수가 시적 배경이 되었음을 알게 한다.
화자가 잠 못 드는 애탄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배꽃이 달빛을 받아 환하게 비추면 마음이 서성였던 것은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거기에 두견새까지 방해부리는 듯이 화자의 마음을 서성이게 했으니 그 심정이야 오죽했겠는가.
【한자와 어구】
梨花月白: 매꽃에 달은 밝다. 五更天: 하늘은 오경이다. 啼血聲: 피토하며 우는 소리. 聲怨杜鵑: 원망하는 두견새 소리. 진覺: 진작 깨닫다. 多情: 다정. 정이 많다. 原是病: 원래 병이다. 不關: 관계가 없다. 관계하지 않는다. 人事: 사람의 일. 不成眠: 잠을 이룰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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