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관의 등잔불 : 寄君實 / 풍월정 이정(월산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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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의 등잔불 : 寄君實 / 풍월정 이정(월산대군)
  •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승인 2016.04.0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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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86】
그리움과 기다림이 어떻게 다르냐고 묻는다면 다른 대답을 하지 못할 것이다. 표현상은 분명 같지만 어휘의 의미는 같기 때문이다. 시인은 시대적인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양화도에 망원정을 짓고 일생을 보낼 정도였으니 성격상의 치밀함과 섬세함을 짐작할 수 있겠다. 시인은 부드럽고 청아한 문장을 많이 지어 동문선과 풍월정집에 있는 것으로 보아 짐작할 수 있다. 어느 날 여관에 들어 가랑비 소리를 듣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寄君實(기군실) / 풍월정 이정(월산대군)
여관의 새벽 등불 희미하게 보이고
가을철 외로운 성 가랑비 내리는구나
그대를 생각하는 마음 강물처럼 흐르는데.
旅館殘燈曉 孤城細雨秋
여관잔등효 고성세우추
思君意不盡 千里大江流
사군의불진 천리대강류

여관의 등잔불(寄君實)로 번역해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풍월정(風月亭) 이정(李?:1454~1489)으로 추존된 덕종의 맏아들이며,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月山大君)이다. 왕세자로 책봉된 아버지가 1457년(세조 3)에 죽자 할아버지인 세조의 사랑을 받으며 궁중에서 자랐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여관의 새벽 등불은 희미하고, 가을 외로운 성에 가랑비가 내린다. 그대를 생각하는 마음 끝이 없어, 천리나 긴 강물처럼 흐른다]라는 시상이다.
이정은 1460년 월산군에 봉해졌고, 1468년 동생인 잘산군(?山君:뒤에 성종)과 함께 현록대부(顯祿大夫)가 되었다. 그의 좌리공신 책록은 성종의 장인인 한명회(韓明澮) 등 권신들이 종실의 대표격인 ‘구성군’을 제거하고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취한 조처의 일환이었다. 왕위 계승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던 풍월정은 권신들의 농간을 겪게 되자 양화도 북쪽에 망원정(望遠亭)을 짓고 풍류로 여생을 보냈다.
한 대군이 여관집에 투숙했다. 새벽에 멀리서 비추는 등불은 희미하고 가을철 외로운 성에 가랑비는 시샘이나 하듯이 부슬부슬 내린다. 그리는 사람이 있어 마음이 끌려가며 사무치는데 천리나 되는 긴 강물이 시인의 마음처럼 기다랗게 흐르고 있음을 상상하고 있다.
화자는 객지에서 느끼는 쓸쓸함과 허전함으로 새벽이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창가엔 가랑비 내리는 소리가 정적을 깨며 들린다. 밤늦도록 왜 잠을 이루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3구와 4구에서 화자의 말을 통해 밝힌다. 나그네의 쓸쓸함보다는 그리움이 짖게 깔려 있음이 엿본다.
【한자와 어구】
旅館: 여관. 殘: 희미하다. 꺼져가다. 燈曉: 새벽 등잔불. 孤城: 외로운 성. 細雨: 가랑비. 秋: 가을. 이 [秋]는[孤城]과 [細雨]를 수식하는 역할을 함.
思君: 그대를 생각하다. 意: 뜻. 그대를 생각하는 그 뜻. 不盡: 다함이 없다. 끝이 없다. 千里: 천리. 大江流: 큰(긴) 강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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