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53】
작은 사물을 언뜻 보고 느낌을 옮기는 시문이 많다. 동물이 자식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행여 효심이 잘못되었는지 반성하는 경우도 있고, 길을 걷다 몸이 아픈 노인을 만나면 자기 부모의 안녕을 생각하기도 한다. 모두가 비유적인 자기 성찰을 뜻하고 있음이다. 마당에 서있는 앵두나무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열매를 보고 버티어 서있는 나무를 부모에 비유하며 행여 자기 효심의 잘못은 없었던가 반성하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마당가 살구열매 누렇게 익어가고
붉은 앵두 다닥다닥 정답게 붙었구나
알겠네 부모님 심정을, 자식걱정 이 마음.
庭杏欲黃熟 含桃紅滿枝
정행욕황숙 함도홍만지
方知父母意 我亦念吾兒
방지부모의 아역념오아
알겠구먼, 지금 부모의 그 심정을(覽物有感)로 번역되는 오언절구다. 작자는 용재(容齋) 이행(李荇:1478∼1534)으로 그는 지금도 필동 골짜기 둔덕 바위 위에 청학도인(靑鶴道人)으로 쓰인 글씨가 있는데 이곳이 이행이 살았던 집터라고 알려진다. 우의정 대제학을 지냈던 사람으로 퇴궐 후에도 망건에 무명옷 차림의 평범한 시골의 모습으로 이곳을 거닐었다고 한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마당가 살구는 누렇게 익어 가고, 붉은 앵두는 다닥다닥 열렸네. 알겠네, 지금 부모의 심정을.. 나 역시 내 자식을 걱정하는 걸]이라는 시상이다.
이 시제는 [사물을 보고 느낌이 있음]으로 번역된다. 연산군 10년, 무오사화의 참혹함을 채 잊기도 전에, 조정에는 또 한 차례 액운이 밀어닥쳤다. 연산군의 모후인 폐비 윤씨의 복위에 반대하였다는 명목으로 많은 신하들이 극형을 받거나 유배를 당했던, 갑자사화가 그것이다.
당시 응교(應敎)로 가 있던 시인 또한 이에 연루되어 그 해 4월 7일에 곤장 60대를 맞고 충주(忠州)로 유배 가게 되었는데 이 시는 그 때 지은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생사(生死)를 예측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 되면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하잘 것 없는 사물도 각별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화자는 가족과 막 이별하고 도착한 유배지에서 접하게 된 살구며 앵두의 선명한 색상과 풍성한 이미지는 평소보다 더욱 곱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잠시 감정이 고조되게 만들었을 것은 분명하다 하겠다. 자기를 보내는 부모 마음을 생각했을 것이니 화자 또한 그 자식을 생각하는 각별한 마음을 드러내고도 있다.
【한자와 어구】
庭杏: 정원의 살구나무. 欲: 하고자 하다. 黃熟: 누렇게 익다. 含: 머금다. 桃紅: 붉은 앵두. 滿枝: 가지에 가득하다. 다닥다닥 붙었다.
方知: 알겠네. 바야흐로 알겠구먼. 父母意: 부모님의 진정한 뜻(의지). 我亦: 나 또한. 念: 생각하리라. 吾兒: 내 자식. 곧 ‘내 자식들의 걱정’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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