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아낙의 눈물만 뺨에 가득하고 : 伊川 / 어우당 유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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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낙의 눈물만 뺨에 가득하고 : 伊川 / 어우당 유몽인
  •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 승인 2015.05.28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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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46】
가난했던 현실은 너무 많았다. 배를 움켜쥐고 날마다 날품팔이를 하던지 남의 처자 길쌈을 하면서 살아갔다. 관리들의 수탈은 더욱 심했다. 서민들의 집을 들이 닥쳐 있는 대로 빼앗아 갔다. 오전에 왔다가 다시 오후에 오는가 하면 돈이며 물건이며 모두 빼앗아 갔다. 남편 겨울옷을 짜고 있는데 베틀에 메여있는 베를 잘라 관리에게 주고 나니, 오후엔 다른 관리가 와서 세금 명목의 물건을 내놓으라하네 라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伊川(이천) / 어우당 유몽인
아낙이 베 짜면서 뺨에 가득 눈물 괴고
낭군 위해 겨울옷을 촘촘히 짜렸더니
아침에 관리에게 건네니 다른 관리 또 찾았네.
貧女鳴梭淚滿시 寒衣初擬爲郞裁
빈녀명사루만시 한의초의위랑재
明朝裂與催租吏 一吏재歸一吏來
명조열여최조리 일리재귀일리래

가난한 아낙의 눈물만 뺨에 가득하고(伊川)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1559~1623)이다. 성리학의 대가 성혼의 문인인 그는 스승의 교훈을 거역해 파문당하여 성혼이 죽은 뒤에 그를 모욕하는 글을 써서 비난을 받았다. 황해도관찰사?좌승지?도승지를 거치는 등 승승장구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가난한 아낙이 베를 짜니 눈물이 뺨에 가득하고, 겨울 옷, 처음에는 낭군 위해 짜려 했구나, 아침에 칼로 끊어서 관리에게 건네니, 한 관리 돌아가자 다른 관리 찾아오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이천에서 본 여인이]로 번역된다. 강원도 이천군에 있는 면에서 보았던 어떤 사실을 시문으로 읊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자연을 음영한 것이 아니요, 지방 관리들의 수탈의 모습이었다. 조선 사회가 극도로 피폐하여 살기가 어려웠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정도였던가를 짐작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적나라한 조선 후기의 생활상을 보인다.
위 시에서 시인의 생각을 적는 대목은 한 마디도 없다. 낭군을 위해 옷배를 짜고 있다는 것 외에는 들은 내용도 없다. 모두는 본 내용을 서술 형식으로 시문을 썼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 시인의 간곡한 염원이라면 수탈의 비참함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의지를 엿보게 된다.
화자는 처절한 여인의 비통함을 한 마디로 쏟아내고 있다. 남편의 겨울옷을 짜고 있던 옷배다. 그런 정성으로 짜던 배를 끊어 주고 났더니, 오후에 또 다른 관리가 찾아왔다는 대목에서 비참한 생활상을 고발하는 시적 묘미를 살려 내는 효과를 부린다.
【한자와 어구】
貧女: 가난한 아낙. 鳴梭: 배를 짜다. 淚滿: 눈물이 가득하다. ?: 뺨. 寒衣: 겨울 옷. 初: 처음에는. 擬: ~하려고 하다. 爲郞裁: 낭군 옷 짜다(만들다)
明朝: 밝은 아침에. 裂與: 끊어서 주다. 催租吏: 곡식 재촉하는 관리. 一吏: 한 관리 ?歸: 겨우 돌아가다. 一吏來: 한(다른) 관리가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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