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는 시장에서 조금은 큰 병아리를 몇 마리씩 사다가 기르는 것이 보통이지만 지난해 이맘때쯤에는 집에서 병아리를 부화하고 싶은데 암탉이 품지를 않는다고 하였더니 형님께서 토종닭 몇 마리를 주셨는데 그 것이 자라서 봄내 알을 잘 낳더니 그 중 한 마리가 알을 품고 싶어 꼬꼬거리기에 짚으로 둥지를 만들어서 열 개의 알을 넣어 주었는데 오늘 아침에 사료를 주려고 닭장에 들어서니 삐악 거리는 소리가 나기에 들여다보니 여덟 마리의 새 생명을 탄생 시켰다. 흔히 하는 말처럼 달걀을 사람이 깨면 반찬이 되고 스스로가 깨고 나오면 병아리가 된다더니 스무하루를 어미닭 품에 있다가 껍질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여 손으로 잡아보려고 하니 어미는 모성애의 본능으로 손등을 찍으며 난리를 피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이런 구절이 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생명이 태어나려면 하나의 세계를 파괴 하여야 한다/
달걀은 생명을 품은 세계다. 하나의 세계를 깨뜨린다고 하는 것은 고통을 견디어야 하는 아픔이 있게 마련인데 달걀이 병아리가 되기 위해 얼마만큼의 고통을 겪고 참았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때로는 나도 고정관념이나 선입견, 또는 아집이나 편견 같은 자신을 위장하고 있는 껍데기를 깨뜨려야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 본다. 나도 모르게 자신을 감싸고 있는 이러한 껍데기들은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를 소외 시키고 배제되는 불행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 닭장은 다세대 주택이다. 담장과 차고 옆에 서너 평 쯤 되는 공간이 있어 그 곳에 철망을 둘러치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덮어서 그 안에 또 칸막이를 하여 3칸으로 나누었는데 각 칸마다 살림을 따로 하는 주인들이 몇 마리씩은 다 있다. 한 쪽 칸은 애완용조류를 기르고 싶어 파이프를 세워서 기둥을 만들고 2층 주택으로 만들었는데 아래층은 어느 분이 주기로 되어 있는 애완용 닭이 살 집이고 지금 그 2층이 병아리가 어미와 함께 당분간 살집이다. 제일 넓은 집에는 알을 낳는 큰 닭 12마리가 있는데 매일 10여개의 알을 낳아 준다. 가끔은 미쳐 꺼내오지 못한 알을 닭들이 쪼아 먹어 아내가 속상해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매일 달걀을 몇 개씩 얻을 수 있는 것이 즐거운 모양이다. 주요섭님의 단편 소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는 젊은 미망인 옥희 엄마가 오빠의 친구이며 선생님으로 자기 집 사랑방에 하숙하는 이에게 달걀을 밥상에 올려 줌으로 자신의 숨은 연정을 표현 하였는데 나는 달걀을 별로 좋아 하지 않기에 달걀은 남게 마련이어서 아내는 그 것을 모아서 신문지로 다섯 개 혹은 열 개씩 싸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우리 아이들이나 친지들에게 나누어 주는데 나누어 주면서도 집에서 기른 것이라서 맛이 좋다는 빈말도 잊지 않는다. 그러기에 아내가 신문지로 계란을 싸는 것을 보면 또 누구를 주려는가 보다 싶어 누구를 주려느냐고 물으면 아내는 내 가 주고 싶은 사람 줄 것이니 상관하지 말라고 한다. 사료를 구입 하고 먹이를 주는 것과 닭장 청소 등 관리는 언제부터인지 내 몫이 되었고 사료 값이나 노동력을 감안하면 손익계산서로는 맞을 리가 없지만 아내는 그래도 언제나 달걀을 챙겨서 나누어주는 것이 그렇게 즐거운가보다.
지금은 이렇듯 흔한 달걀이 그 때는 왜 그렇게 귀하였는지, 달걀로 인한 어릴 적 생각이 떠오르면 나는 밀물처럼 밀려오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싸이고 만다.
지금이야 알판이 있어 편리하고 안전하게 보관도 하고 운반도 할 수 있지만 그 때에는 볏짚을 펼치고 열 개씩 묶어서 이를 한 줄이라고 하였는데 달걀 하나라도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이 못 되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쯤으로 기억 된다. 당시에는 보리 베고 모내기 할 때가 되면 학교에서는 가정 실습이라 하여 학교 수업을 쉬고 집에서 가사를 돕도록 하였었는데 내가 가정 실습을 마치고 학교에 가기 위해 청주에 가려는데 내게 줄 차비가 없자 어머니께서는 급히 달걀 한 줄을 엮어서 마을에서 장사하는 분에게 팔아 여비를 마련 해 주신 일이 있었는데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그때 그 모습의 어머니가 내 앞에 계신다.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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