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현암에 묻힌 대곡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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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현암에 묻힌 대곡의 정신
  • 보은신문
  • 승인 2008.09.1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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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우리지역 옛 이야기 열세번째 

어려서, 할머니 무릎에 누워 듣는 옛날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신바람 해피통신이 잊혀져 가는 옛 추억을 되새기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려 주는 우리 지역 옛 이야기’는 우리 지역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나 문화재, 그리고 지역을 빛낸 인물들에 대해 소개할까 합니다.

구수한 우리 지역의 옛 이야기들도 이제는 점점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들려주었던 우리 지역 옛 이야기들을 지면에 충실히 담아내도록 하겠습니다.

 

높은 학문과 지조있는 선비의 모습을 보여준 성운선생

보은읍 종곡리 저수지 뒤 동북쪽 산골짜기에 모현암이라는 작은 기와집이 서있다.

오랜 세월 속에 비 맞고, 먼지가 앉아 퇴락한 이집은 조선 명종 때 이름 높던 학자인 대곡 성운 선생이 세상에 대한 뜻을 버리고 숨어 살던 곳이다.

선생은 창녕 성씨로 이름은 운이고, 자는 건숙, 호는 대곡이다.

1497년에 선공감 부정 세준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학자의 집안에서 태어난 선생은 어려서부터 글을 배워 학문이 뛰어났다. 선생의 성품은 온순했고, 뜻과 기상이 장대하여 작은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퇴계 이황이 ‘숨어 있는 성 선생’이라고 부른 이가 바로 선생을 말한 것이다.

선생은 1531년 중중 26년에 사마시에 올랐으나 1545년 명종 원년, 사화로 그의 작은 형이 모함을 받아 죽음에 이르게 되자 세상에 뜻을 버리고 처가의 고장인 보은군 보은읍 종곡리에 내려와 종산 아래 집을 짓고 ‘대곡재’라 현판을 달았다.

명종이 즉위한 뒤 광릉참봉을 제수하고 조정에 나올 것을 권했지만 선생은 병이 들었다는 이유로 벼슬을 사양하고 ‘대곡재’에서 한 발도 나오지 않았다.

선생은 ‘대곡재’에서 매형인 김제군수 김천부를 비롯한 일가친척들의 자제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

그가 이 골짜기에 들어와 30여년을 지내는 동안 조정에서는 몇 번이고 벼슬을 주며 불렀으나, 선생은 끝내 사양했다.

선생은 이곳에서 소를 타고, 소매 짧은 옷에 거문고를 타며 사람들과 노닐다가 돌아오곤 했다.

남명 조식과 화담 서경덕도 선생을 찾아왔고, 토함 성재원도 대곡을 찾아와 산수와 시를 즐겼다.

이와 같이 당대의 대학자들이 모여 노는 것을 가리켜 큰 성이 하늘로부터 종곡에 떨어졌다고까지 했다.

선생은 술도 즐기고, 아름답고 예쁜 시도 썼다.

[봄옷은 지은 지 오래라 소매가 짧고, 옛 거문고가 손에 편하니 일곱 줄이 길다. 십년동안 산중의 약 맛을 고루 보았더니 손이 오면 때로, 입의 향내를 귀로 듣노라.]

선생의 시 한 구절이다.

선생이 세상을 버리고 사는 동안 명종과 선조, 두 임금으로부터 종 9품에서 종3품에 이르기까지 벼슬이 주어졌다.

하지만 선생인 끝내 움직이지 않았고, 그를 사랑하던 두 임금은 쌀을 비롯해 특별히 겉옷과 속옷을 하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은 그것조차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선생은 비록 배가 고팠으나 그것을 알지 못했고, 산간에서 오직 글 읽는 것으로 낙을 삼고 평생을 욕심 없이 살았다.

선생이 83세가 되던 해, 노환으로 앓게 되자 선조는 특별히 사람을 보내 치료토록 했고,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후한 부의를 내리고 관에서 장례를 치르라고 명하였다.

선생의 후학들은 선생을 종곡리 남쪽 산언덕에 장사를 지냈고, 대대로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또한 그와 학문을 같이 논하였거나, 그의 학문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이렇다 할 벼슬에 오르지 않았으니 선생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선생이 살던 모현암 인근에는 서리를 이간다는 고산식물인 구절초가 유독 잘 자라고, 우암 송시열이 지은 그의 묘비는 부정한 짓을 한 처녀가 이 비석 돌을 끓인 물을 먹으면 낙태를 할 수 있다고 하여 한 조각씩 떼어가 지금은 크게 훼손되어 있다.

이 모두가 지조 있는 선생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흥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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