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학에 밝았던 작은 우암, 송시도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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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학에 밝았던 작은 우암, 송시도 선생
  • 보은신문
  • 승인 2008.07.18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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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우리지역 옛 이야기 열한번째 

어려서, 할머니 무릎에 누워 듣는 옛날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신바람 해피통신이 잊혀져 가는 옛 추억을 되새기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려 주는 우리 지역 옛 이야기’는 우리 지역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나 문화재, 그리고 지역을 빛낸 인물들에 대해 소개할까 합니다. 구수한 우리 지역의 옛 이야기들도 이제는 점점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들려주었던 우리 지역 옛 이야기들을 지면에 충실히 담아내도록 하겠습니다.

 

송시도 선생은 우암 송시열 선생의 동생으로 한 때 보은 금적산 아래에 자리를 잡고 산 바 있는 주자학에 밝았던 유학자다.

선생은 1613년 광해군 5년에 태어났다. 부친은 옥천에 있었던 송갑조였는데 당대에 명문이 있던 은진송씨다. 선생은 자를 성모라 했으며 호를 세한재라 했다.

선생이 아호를 이 같이 부른 것은 금적산 아래에 소나무와 잦나무를 심고 집을 세한이라했기 때문이다. 소나무와 잦나무는 추운 겨울을 잘 견디기 때문에 선생은 이를 사랑한 것 같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형인 우암과 더불어 사계 김장생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1659년 효종 10년, 선생의 나이 47세에 학생으로 천거되어 내시교관에 임명됐다. 그 후 장흥고 주부를 거쳐 사헌부 감찰을 역임했고, 이어 보은현감, 익산군수에 올랐다.

선생은 한 때 금적산 아래로 퇴거하여 살았다. 선생이 시골에서 주자학을 공부할 때는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했으며 모두 경배하였다고 한다.

선생의 나이 77세에 형인 우암이 제주도에 유배되는 몸이 되었다.

선생은 우암을 따라 제주도로 갔다. 망망한 대해가 둘러싸인 고도에서 선생은 형님과 같이 고통을 나누었던 것이다. 그러나 선생은 제주도에서 심한 병을 얻어 위독하게 되었다.

우암은 선생을 고향으로 돌아가게 했다.

이해 여름인 6월8일, 공주의 별장에 돌아오게 됐다. 그러나 선생은 노구에 병환을 얻은 탓인지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때마침 국문을 받기 위해 상경중이던 우암이 정읍에 도착한 날인데, 이상하게도 선생이 세상을 떠나던 날 우암도 사약을 받게 됐다.

형제가 같은 날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선비들은 이를 애통해 하며 동년 동일에 세상을 같이 떠났으니 천륜지기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선생의 시신은 보은 차마동(수한면 교암리) 양지바른 곳에 모셔졌으며 후손인 송치규가 글씨를 쓴 묘비가 세워졌다.

이흥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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