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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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 오계자 (보은예총 회장)
  • 승인 2022.05.0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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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비 내리는 5월, 한반도의 산천이 아름다움의 절정으로 뽐내는 5월, 사랑과 감사의 마음이 오가는 5월이다. 가정의 달이라는 포스터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나는 저런 포스터만 보면 아이 엄마들이 안쓰러워진다. 그동안은 가정의 달이라고 객지 나가 있던 가족들도 만나고 여행을 하는가 하면 선물 주고받는 과정이 행복했다. 그랬던 5월이 마냥 즐겁고 감사하기엔 버겁고 힘든 가족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몇 해 전이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을 목격했다. “난 5월이 두려워.”
5월이 곤혹스러운 젊은 엄마의 툭 뱉는 말을 듣고 그냥 가볍게 그럴 수 있구나 했다. 그런데 듣고 보니 그리 예사로이 흘릴 문제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젊은이들이 많은 아파트엔 아침시간이 남편 출근 준비와 아이들 한술이라도 더 먹여서 등교 시키려고 정신없다. 이어서 유치원과 어린이집 셔틀버스가 다녀가고 나면 아이엄마들은 휴~ 하지만 온 집안에 어질러진 상태는 보나마나 다 알만한 아침이다. 그래서 잠시 엄마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인사 정도만 하고, 수영장 셔틀버스 오기 전에 한술 떠야 되고 집안 정리도 한다며 올라간다. 그런데 그날(15일)은 한사람 두 사람 모이기 시작하더니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약속이나 한 듯 어린이 놀이터에 모였다. 수다가 시작되었다. 젊은 엄마들은 대화의 주제가 무얼까 궁금했다. 마침 내 차가 바로 그 옆에 주차되어 있는 핑계로 슬쩍 그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5월이 가정의 달이라고? 아이 엄마들에겐 공포의 5월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린이날 선물만 기다리는 아이들 기분 챙기랴 어버이날 시댁 부와 모님 친정의 부와 모님은 그나마 양쪽 어른들이 원한다는 핑계 앞세워 그냥 현금봉투로 드렸단다. 그날이 마침 스승의 날이라 모인 게다. 큰아이 학교 담임 작은애 유치원은 원장과 담당 선생님까지다. 멀찌감치 서서 듣고 있던 나까지 답답해진다.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에 젊은 엄마들이 안쓰럽다고 했더니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딸내미 피아노 선생님에 아들 태권도, 영어, 수학 등등 과외 선생님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동안 조금씩 불린 쌈지까지 풀어야할 판이다.
“우리 수영강사 줄꺼 20만원 봉투에 넣었어. 점심 어디서 대접할까?”
이게 마지막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끝이 없는 감사인사들이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55평짜리 동이라 경제적 중류층은 되는 부류들이 살고 있으니 척척 봉투준비가 쉬운지 버거운지 모르겠지만 빠듯하게 사는 엄마들은 어떡해.
감사인사 드리기만 하고 받지 못하는 아이엄마들이 정말 딱했다. 하지만 엄마들은 걱정 말란다. “있잖아요, 우리 건이가 색종이로 카네이션 만들어서 달아주는데 온 몸이 짜릿 했어요. 감사합니다. 그 말이 모든 스트레스 다 날려버렸어요.” 모두들 경험한 행복이다. “나는요 현주가 준 편지 읽으며 울었어요. 엄마 고생하는 거 다 알고 있다면서 엄마 은혜 갚기 위해서라도 성공할 거래요. 엄마 건강만 잘 챙기고 오래오래 살라며 편지 끝에 찐진심이래요.”
 아무리 힘들어도 어린 녀석들의 꾹꾹 눌러 써내려간 편지는 엄마들의 가슴에 잡동사니 다 쓸어내고 행복으로 채운다. 나는 45년 전 첫아이 유치원서 만들어 온 색종이 카네이션을 며칠 동안 달고 있었다. 또르르 말려들면 다리미로 펴서 또 달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가 제일 행복 했던 것 같다. 지난해 어버이 날, 딸과 같이 현대 백화점가서 옷을 고르면서도 내내 옛 생각했다. “엄마 더 골라요 아들이 신용카드 준 것도 써야죠.” 비싼 옷을 입어보면서도 색종이 카네이션이 그리웠다.
1년에 두세 번 비싼 옷과 비싼 건강식품보다 1분이라도 매일매일 자식들 목소리 전화 안부가 더 좋은 어른들이다. 전화요금 많이 나온다고 어여 끊으라고 하시고는 진짜 끊으면 못내 아쉬워서 이미 통화 끝난 휴대폰을 한참동안 만지작거리신다. 오늘은 까치가 서쪽을 보고 노래하네 대전 딸이 오려나, 까치가 북쪽을 향하면 서울 사는 아들이 오려나, 기대하는 시골 어른들이다. 자식 들이 바빠서 못 오는 걸 알면서도 자동차 소리는 용케 듣고 내다보신다. 아들딸들아! 노인들이 원하는 것은 저네들 목소리와 손자손녀들 목소리란다. 어미 휴대폰 녹슬지 않게 해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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