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은 그냥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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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은 그냥이 아니었다
  • 오계자(소설가)
  • 승인 2021.12.02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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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변함없이 화려한 흔적을 남기면서 겨울 준비를 한다. 이렇게 세월은 악보에 맞추는 음악처럼 괘도를 벗어나지 않는데 내 가슴은 갈등이 더해지고 있다.
세월 따라 나이테의 숫자도 늘어나고 머리카락은 하얘지는 것이며, 구남매가 팔남매 되고, 칠남매 되는 것이 당연한 삶의 수순이거늘 왜 이렇게 갈피를 잡지 못할까.
큰오빠의 영면소식에 어떤 생각이나 아픔보다 그냥 눈물이 주르르 뺨을 타고 흘렀다. 남매들이 모여 장례를 치루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야단스러운 통곡도 없고, 한탄도 없었다. 마주보는 남매들의 얼굴엔 소리 없는 눈물만 흐르고 있었다.
그 때도 그랬다. 예닐곱 살쯤이던가 처음으로 집을 떠나 고모 댁에 갔을 때다. 해가 지고 이내가 내리자 내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다.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린 것이다. 같이 갔던 오빠가 “니 와우노?” “그냥” “엄마 보고 싶나?” “아이다.” 그라머 와우는데?“ ”그냥“ 그렇게 나는 그냥 울었다. 진실로 엄마가 보고 싶다는 애절함 같은 건 몰랐는데 그냥 눈물이 흐른 것이다. 울었다 기 보다 그냥 눈물이 나온 것이다. 창피하기도 해서 눈물을 감추고 싶었지만 감당할 수가 없이 흘렀다. 
70년의 시간을 먹고 할미가 된 지금 또 그냥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빠를 보내드리고 와서 주책스럽게 자꾸만 흐른다. 아마 큰오빠가 부모님 같은 존재였나 보다.
엄마와 아버지의 함자에서 따온 ‘달갑회’라는 명칭으로 남매들이 수십 년간 잘 지내왔다. 해마다 여름 총회면 2박3일간 정말 행복했다. 나는 장기자랑에서 2연패의 영광도 경험했다.
이십여 년 전이던가, 회장으로 모시는 큰오빠에게 불만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교인이 아닌 동생들도 있고 타 종교인도 있는데 모임 때마다 기도하고 예배 보는 것은 못마땅해요.” 그 때 오빠께서 하신 말씀은 더 진한 남매간의 우애를 부추겼다. “한실아, 이 사람아 종교문제는 자네보다 내가 더 반대아이가. 그래도 우짜겠노 우리는 형제자매 아이가 더러는 못 마땅해도 맞춰가며 살아야재.” 그 말씀에 큰오빠의 가슴이 엄마의 가슴 못지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 불만 없이 그대로 진행해 오고 있다. 동생들 힘들면 내가 어깨 내어줄게 딛고 일어나라고 하신 오빠가 떠나신 것이다.
그냥 흐르는 눈물은 그냥이 아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볼 수도 품을 수도 없는 너무나 큰 사랑의 원천이다. 한글사전에 뜻풀이 되는 그런 그냥이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없으면 안 되는 전기나 공기처럼 너무나도 대단한 사랑이라서 미처 느끼지 못하고 그냥인 줄 아는 것이다.  
할머니 말씀에 어미는 잠자고 있어도 숨 쉴 때 안개가 나와서 자식들을 쓰다듬어 준다고 하시면서 그 안개가 너희들을 알토란 같이 키워주고 지켜주는 것이라 하셨다. 엄마의 품은 어린 우리들에게 배터리 같은 존재였나 보다. 지금 생각하면 볼 수도 없고 품을 수도 없는 너무나도 큰 사랑인 그 안개가 큰오빠께서도 풍긴 것이다. 엄마 품에서 풍기는 에너지처럼 그동안 큰오빠의 품에서 피어올라 우리들을 지켜주시고 만나면 행복했던 바탕이 되어 주셨지 싶다. 벌써 보고 싶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거이 혈육인기라.” 하시던 분이시다. 
또 흐른다. 그냥 막연하게 눈물만 흘릴 것이 아니라 영면하신 큰오빠에게 마음 깊은 속에서 우러나는 약속 하나 드려야겠다. 저승에서도 빙그레 미소 지으실 약속을 드려야겠다.  
“오빠, 동생들 사랑하신 오빠의 마음은 그냥 사랑이 아니라 세상 무엇보다 귀중한 혈육이 자석처럼 당기는 차원이겠지요. 달갑회를 보전하시고자 베푸신 아량 이였지요. 그 뜻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염려마시고 우리들의 달갑 사랑 변치 않도록 사랑의 안개 내려주소서.” 9남매가 이제 6남매 남았다. 연극무대의 막이 내리기 전에 한 장면이라도 더 보려고 눈정기 곤두세우듯 우리 남매들도 정보따리 허투루 새나가지 않도록 여미었다가 만나는 날 풀어야지. 또 그냥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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