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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돌이 처녀
[1364호] 2018년 02월 01일 (목)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webmaster@boeuni.com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나는 주말이면 가끔 고향에 내려가 어머님을 뵙고는 바로 서울로 돌아오곤 했다. 지금처럼 자가용이 흔치 않던 그때는 대부분이 기차를 이용했다. 기차는 완행→준급행→급행→특급 등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사람들은 완행보다는 가격이 조금 높은 ‘준급행’을 선호했다. 준급행은 완행보다는 조금 빠르긴 했으나 역시 정차하는 역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급행이나 “새마을호”와 같은 특급열차 보다는 운임 부담이 적은 것이 장점이었다.

 그날도 나는 그 열차에 몸을 싣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세 명씩 앉을 수 있는 긴 의자는 서로 마주하고 있어서 6명이 대면하고 앉게 되어있었다. 그런 환경에서 모르는 사람들끼리 말을 트고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다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곤 했다. 요즘사람들은 몇 시간을 같이 가면서도 굳은 표정에 구린 입도 떼지 않고 침묵만 지킨다. 그러다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간다온다 말도 없이 각자 사라져 버리곤 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은 내 옆 한자리 건너 창문 옆에는 나 또래의 젊은이가 앉아 있었고 나의 바로 맞은편 좌석에는 가정부처럼 생각되는 한 처녀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윽고 기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그녀는 부스럭거리면서 보따리를 풀고 무언가를 먹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한 보자기에 있던 것을 먹더니 또 다른 보자기를 풀었다. 그렇게 싼 조그만 보자기가 여러개나 되었다. 수원을 지나고 평택과 천안을 지날 때 까지도 그녀는 먹고 또 먹었다. 그런 모습은 나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창문옆에 앉아있던 젊은이가 이윽고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아-따 되게 먹네” 하고 중얼거렸다. 조금 후에 그 청년은 다시 그녀를 힐끗 보고 고개를 돌리며 “아가씨! 마 인제 고만 좀 묵으소!”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달이 된 모양이었다. 순간, 그녀는 허공에 눈빛을 날리며 멈칫 하더니 드디어 풀어헤친 보따리를 주섬주섬 싸는 것이었다. 그리고 먹는 일을 중단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세 가지가 의식주(衣食住)요, 그 중에서도 첫째가 먹는 문제가 아닌가 한다. 모든 생물들은 생명을 담보로 먹이활동을 하고 있으며 식량문제는 서로가 먹고 먹히며 해결토록 한 것이 자연계의 이치다. 먹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어떤 이는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운운 하면서 과학적인 방법으로 자기 종교만이 진리라고 설명하지만 결국은 무지의 폭로와 교묘한 언술의 난무일 뿐이다. 과학은 실험과 검증절차를 통하여 사실로 입증이 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종교는 사실여부를 떠나서 오직 개인적인 믿음이 전부다. 거짓말 중에서 검증 불가능한 사후문제를 말하는 자가 가장 지능적인 자다. 일찌기 아인슈타인은 “나는 자신의 창조물을 심판한다는 신을 상상할 수가 없다.… 내게 신이라고 하는 단어는 인간의 약점을 드러내는 표현이나 산물에 불과하다. 성서는 명예롭지만 꽤나 유치하고, 원시적인, 전설들의 집대성이며 아무리 치밀한 해석을 덧붙이더라도 이 점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나에게 와 닿는 내용이다. 먹고 살기 어려운 일제 강점기를 살아오신 우리 부모님들은 한끼 먹고나면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하는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먹지 않고 사는 방법은 없을까?”하고 고민하시기도 했다. 그러나 먹는 일이 행복의 중요한 수단임을 뒤늦게 느끼게 한다.

 21세기 이 풍요의 시대를 살면서 그때 그 기차 안에서 본 한 무례한 청년과 불쌍한 처녀의 영상이 자꾸만 떠오른다. 생각해보면 그 청년은 그 처녀의 먹는 행복을 앗아가 버린 것이다. 오늘따라 그 착한 처녀에 대한 연민의 정이 더욱 가슴에 저며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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