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의 명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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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의 명수들
  • 사단법인 한국전통문화진흥원 원장 이장열
  • 승인 2015.07.0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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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이란 없는 사실을 꾸며서 사람을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하는 비열한 짓이다. 뒤에 숨어서 세치 혀로써 중상ㆍ모략하는 복수방법이다. 무함을 받은 사람은 정신적, 신체적으로 큰 피해를 입게 마련이다. 요즈음은 무함과 관련한 ‘명예훼손’이라는 죄목이 있고 삼심제도 하에서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다행이다. 그러나 절대군주가 지배하던 고대, 중세시대의 국가체제 하에서는 ‘역모’라는 죄목에 걸리게 되면 처절한 고문으로 없는 죄까지도 만들어진다. 게다가 노한 군주에 의해 즉시 삼족, 또는 구족이 모두 죽게되는 멸문지화를 당하게 된다. 설령 나중에 그것이 무함이었음이 밝혀지더라도 이미 피해에 대한 회복은 불가능한 것이다. 남을 무함하는 이유는 개인 또는 집안간에 수원지간인 경우, 자신의 비리나 죄를 감추기 위해서, 혹은 포상금을 노리거나 단순한 질투심에서도 행해진다.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에 ‘비무기’라는 간신이 있었다. 그는 평왕의 아들인 태자 ‘건’의 소부(少傅, 부스승)였으나 나중에는 평왕을 섬겼다. 평왕은 비무기를 시켜 태자비를 진나라에서 간택해 오도록 하였는데 진나라 여인은 천하절색이었다. 비무기는 평왕에게 아부하기 위하여 이 여인을 평왕의 후궁으로 삼도록 간하여 진여인은 평왕의 후궁이 되었다. 비무기는 곰곰이 생각했다. 평왕이 죽고 태자가 왕이 되었을 때 그 화가 자기에게 미칠 것을 걱정한 그는 태자 ‘건’을 제거코자 평왕에게 수시로 태자를 무함하였다. 버쩍 의심이 든 평왕은 태자의 태부(太傅, 스승)인 오사에게 물어보았다. 오사는 모든 것이 비무기의 무함인 것을 알고 평왕에게 골육을 멀리하지 말라고 간하였다. 이것을 안 비무기는 오사마저 제거할 결심으로 그들이 반역할 조짐이 보이며 반역하면 큰일이라고 말하였고 이를 안 태자 건은 목숨을 보전키 위해 이웃나라로 도망을 갔다. 이에 평왕은 오사를 하옥하였다. 평왕은 오사 일족을 모두 죽이고자 두 아들에게 관직을 준다고 유인하여 모두 오라고 하였다. 맏아들인 오상은 평왕에게 가면 죽을 줄 알면서도 수금되어있는 아버지에게로 갔고 둘째아들 오자서는 주변국으로 피신하였다. 이렇게 하여 비무기는 평왕을 꼬득여 오사와 오상 부자를 죽이고 ‘극완’까지도 무함으로 죽였다.
무함쟁이로 또 한 사람은 중국 진나라 시황제와 이세황제 때 ‘조고’라는 사람이다. 진시황은 죽으면서 태자 부소를 후계자로 하라고 유언하였다. 그러나 태자 부소는 두뇌가 명석하고 결단성이 대단하여 조고가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대상이었다. 그래서 진시황의 유서를 뜯어고쳐 바보같은 둘째아들 ‘호해’를 후계자로 하고 부소에게는 독주와 단검을 내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자결토록 지시하는 유서를 만들었다. 조작된 진시황의 유서에 따라 부소는 독주를 들이키고 자살하였고 새로운 이세황제를 옹립한 조고의 권세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그는 어느날 ‘사슴’ 한 마리를 이세황제에게 보이며 ‘말’이라고 하였다. 황제가 웃으며 ‘말’이 아니라 ‘사슴’이라고 하니 조고는 측근자에게 “이것이 무엇이냐”고 다시 물었다. 더러는 ‘사슴’이라고 하고 혹은 ‘말’이라고 하였다. 조고는 이후 사슴이라고 한 측근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이리하여 모든 실권이 조고에게 돌아가자 승상 ‘이사’는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조고는 다시 꾀를 내어 황제에게 ‘이사’가 모반을 꾀하고 있다고 무함하여 초평왕은 즉시 ‘이사’를 포박하여 함양 시가에 나가서 아들과 함께 죽였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또 개인적인 질투심으로 남을 무함하여 죽인 ‘비무기’와 ‘조고’의 말로도 그들에 의해 무함당해 죽은 사람들과 똑 같은 길을 걸었다. 오나라가 초나라를 침략하여 나라가 혼란하고 백성들이 비무기를 원망하자 민심수습 차원에서 자상이 초왕과 함께 비무기를 죽인뒤 그의 일족까지 모두 주살하였다. 조고는 자기의 잘못을 질책하는 이세황제를 죽이고 이세의 큰조카 자영을 황제로 옹립하였다. 자영은 황제가 되자 병을 핑계로 조고를 병문안오도록 유인하여 바로 조고의 목을 베고 그 시체를 갈갈이 찢어 군중들에게 보인 다음 그의 삼족까지 모조리 몰살하였던 것이다.
<사단법인 한국전통문화진흥원 원장 이장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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