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으로 먹는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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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으로 먹는 나이
  •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 승인 2015.02.12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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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도 며칠 남지 않았다. 하얀 면빗 쪽달이 창 밖에 홀로 서있는 소나무에 걸쳐있어 아침이 더 차가운 것 같기는 해도 이내 햇볕이 누리를 채우니 쪽달은 가지 속으로 숨어버리고 만다. 그저께 매서운 추위가 지나갔는데도 이제는 남풍이겠지, 라고 생각하면 봄기운이 태동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이젠 겨울도 다 가지 않았나 싶다.
설날은 대체로 입춘을 전후로 해서 오게 마련인데 지난해 가을엔 윤달이 있어서 금년 설은 좀 늦은 감이 있긴 해도 날씨도 그렇게 춥지를 않아 포근한 명절이 될 것 같다. 누가 뭐라 해도 설은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인데도 한 때는 이중 과세를 한다 하여 구정을 공휴일에서 제한 적도 있었는데 민족 정서가 가득 담긴 설날의 역사와 전통은 누구도 거역 할 수 없기에 그래서 모두가 고향을 찾는가 보다.
서양에서는 생일을 맞아야 한 살을 더하게 된다는데 우리나라는 설을 기준으로 해서 한 살을 더 먹게 되니 다음 주 설날이면 떡국을 한 그릇 먹으면서 나도 나이를 한 살 더하게 될 것이다.
지난 해 설날 손자가 왜 설날에는 떡국을 먹는 거냐고 묻기에 현문우답인지는 몰라도 떡국을 먹어야 나이도 먹는 것이고 그래야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만 대답했는데 떡국도 요즘처럼 아무 때나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보릿고개라는 가슴 아픈 말이 나올 만큼 먹거리를 걱정 하며 살아야 했던 선조들은 그래도 설날만은 세배 오는 손님을 비롯해서 이웃과 나누어 먹기 위해서 떡국을 끓였으며 그래서 명절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란 이야기는 좀 더 자라서 이해 할 때쯤이면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어렵게 먹는 떡국처럼 한 살을 더하기 위해 살아 온 날들도 그 만큼 힘겨웠기에 설날 떡국을 먹을 땐 나이를 한 살 더 먹은들 어떠랴 싶기도 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내가 어렸을 적엔 마을 어른을 만나면 때나 시를 가리지 않고 진지 잡수셨어요? 하면서 고개 숙여 인사를 했는데 이렇듯 먹고 사는 문제가 삶의 모든 수단과 방법의 전부였던 때를 이 시대 아이들이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어제 아내가 설 준비를 한다고 하여 시장에 들렸는데 과일 고기 생선 채소 등 모두가 넘쳐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라는 말을 실감했는데 나도 그 시대를 살아왔으니 오늘 이 땅에 사는 이들은 정말 복을 많이 누리고 사는 것 사람들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먹을수록 많아지는 것이 무엇이냐? 라는 수수께끼처럼 왜 나이는 먹을수록 많아지느냐 라고 하는 것도 天增歲月人增壽(하늘이 세월을 더하니 사람의 나이도 더한다)란 말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어렸을 때 설과는 달리 또 나이를 하나 더 한다는 서글픈(?) 생각이 앞서는 것을 어쩌지 못하는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어쩌랴, 나무도 세월에 따라 나이테를 하나 씩 더 하면서 늙어가고 이 땅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세월 따라 흥망성쇠를 이어 가는 것이 섭리이고 순리이기에 소리 없는 세월도 날이 가고 달이 가면서 역사가 되어 쌓이면서도 잊혀가는 것이니 그렇게 생각하면 나 하나의 존재라야 변변치 못 한 것이니 나이를 한 살 더한 들 어떠며 조금 더 늙어진들 어떠랴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게 억지라도 부려서 조금의 위안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은 그래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사람다워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인데 그럴 때면 마음이 다시 무거워지는 것 또한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사람다워야 한다는 것은 종교적 차원의 가르침이나 윤리 도덕의 기준을 다 따르지는 못하고 산다 할지라도 적어도 기본만은 잃지 않고 남에게 해가 되지 않아 원망 없는 사람으로 살았으면 하는 소망과 서로 돕고 도움을 받으며 어우러져 살아가는 원리 속에서 도움을 받는 대상의 자리에 설 수밖에 없는 때가 될지라도 내 노년의 삶을 통하여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아직은 내가 이렇게 자신의 소망을 조금씩은 지켜가고 있으나 언제 잃을까 하는 두려움에서는 내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결코 유쾌할 수는 없어도 어쩔 수 없이 이번 설에도 떡국은 또 먹어야 될 것 같다..
이제 이번 주말이면 귀향길이 시작 될 텐데 모두가 오고가는 길이 안전하고 즐거운 명절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독자들께 인사드린다. “여러분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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