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 어린 소년이 처음으로 집을 떠나 청주에서 중학교에 입학 하면서 고등하교를 졸업 할 때 까지 늘 함께 하던 친구였다. 이 친구 말고도 다른 친구 하나가 더 있어서 학교는 달랐어도 나이와 학년은 같았기에 우리 셋은 자칭 삼총사라 하며 항상 붙어 다니면서 학창 시절의 꿈같은 추억이 많은데 이 다른 친구는 청주에서 약국을 경영하며 충북 약사 회장을 지내기도 하여 서로 왕래하며 지냈는데 불행이도 일찍 타계 하여서 이제는 볼 수 없는 사람이 된지 이미 오래이지만 그는 내성적인 나와는 달리 활달하고 재치가 있어서 만나면 언제나 우리를 즐겁게 해 주는 친구였다.
지금이야 청주를 이웃 집 다니듯 30여분 거리이지만 그 때는 방학을 하여 집에 오려면 70리 길을 걸을 때도 있었고 지금처럼 과외나 학원도 없었으니 방과 후나 일요일엔 늘 붙어 다니던 친구였는데 졸업을 하고 군대에 다녀오면서 한동안 소원하다가 이 친구는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전화도 쉽지 않던 때라서 소식이 끊기게 되었는데 30여년 후 다시 소식을 알게 되어 그 후로는 지금까지 가끔 만나곤 한다. 그 친구 말로는 우리가 헤어져 있던 동안에도 내 생각이 나서 찾아보려고 하였다는데 나 역시도 그 친구를 늘 잊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이제는 서로가 주름진 얼굴을 반백의 머리가 덮고 있어서 학창 시절의 모습은 세월 속에 묻혀버렸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언제나 반가운 친구이다. 그런데 오늘 다시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제 전화 하였을 때 안부는 들었으나 혹시 건강 상태는 괜찮은지 직접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다시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나이를 한 살 더하고 보니 무엇보다도 건강이 걱정 되는 모양이다. 내가 미처 답신을 못하고 있던 차에 다시 전화를 받고 보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마운 마음에서 나는 언제나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일부러 큰 목소리로 말하며 자네 건강이나 잘 챙기라고 하였더니 이제야 안심이 된다며 전화를 끊으려 한다. 그런데 슬그머니 장난기가 발동하여 이렇게 형님 안부를 늘 물어주니 고맙다고 하였더니 동생 까부는 것은 여전하다며 되받는다.
생일도 나 보다 빠르지만 중학교 3학년 때 쯤 인가, 이 친구와 처음 장기를 배울 때 장난삼아 이기는 사람을 형이라 하기로 하였는데 그 때 내가 진 것을 이 친구도 잊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언제 한번 만나자고 약속 하면서 전화는 끊었지만 이 친구 건강이 조금은 염려가 되기도 한다. 내가 이 친구 건강을 염려하는 것은 그 이유가 있는데 그 것은 재작년 이른 봄에 뇌경색으로 입원한 일이 있어서이다. 그 때도 알려 주지를 않아서 문병을 하지 못 했는데 다행이도 경증이라서 별 문제는 없었다고 나중에 만난 자리에서 이야기를 해서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 때 나는 이 친구에게 하나님께서 각별히 몸조심 하라고 경고 해 주신 것이니 내 말을 잊지 말라고 해 준적이 있다.
이제 이 친구와 만나게 되면 무엇이 바빠서 그렇게 빨리 갔는지 모르지만 먼저 간 친구에게도 한번 찾아 가 보아야겠다. 지금은 흰 눈이 그가 잠든 무덤을 차갑게 덮고 있겠어도 익살스러운 그의 웃는 얼굴은 지워지지 않는 환영으로 남아 있어 가끔은 나로 하여금 옛날을 부르도록 하기도 한다.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저런 사람을 사귀면서 친구가 되기도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각별한 친구는 있게 마련이고 특히 사회적 지위 고하나 빈부의 차이를 초월하여 허물없이 언제나 만나면 반가운 친구는 역시 어릴 때의 고향 소꿉친구나 학창 시절의 친구들인 것 같다.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만날 수는 없어도 언제나 보고 싶고 서로가 염려 해 줌으로 어려울 때 그 사람으로 해서 위로를 받을 수 있고 짧은 전화 한 통화로도 마음이 편안 해 질 수 있다면 그런 친구야 말로 친구라는 의미의 그 이상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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