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가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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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가을길
  • 김종례 시인
  • 승인 2014.10.30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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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동으로 인하여 나의 일상 속에서 가장 정서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것은 출퇴근길이다. 어쩌다가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 마을 앞을 아침저녁으로 지나쳐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산소를 지나는 것도 하루 일과가 되었고, 차창 밖으로 언뜻 선뜻 보이는 마을과 커다란 느티나무 추억이 깃든 동구 밖을 스쳐서 나는 날마다 출퇴근을 한다. 보은산외, 청원미원, 경북용화, 괴산청천 4개군을 바람처럼 누비면서, 세 길 가운데 나는 서슴지 않고 내 고향 오대리와 금관으로 이어진 아름다운 숲길로 자주 다닌다. 사계절 내내 청초하고 운치가 있지만, 오색 파스텔톤으로 채색된 가을 숲길에서 감탄사와 감사의 찬송이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요즘이다. 어릴 적에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힘겹게 넘나들던 구티재를 단 1분에 넘고, 허벅지까지 둥둥 걷어 올리고 차가운 물 건너던 산대리 냇물을 비호처럼 날아서, 책보자기 딸랑거리며 한시간 남짓 달려야 했던 등하교 십리길을 단 5분만에 훌쩍 지나다닌다. 아침이면 이슬 담뿍 머금은 길가의 들국화들이 가을햇살에 웃음지며 낮은 자세로 기다리고, 해거름이면 가녀린 허리 파리한 웃음으로 수척해져가는 낭만의 코스모스길이 순정의 여고시절을 추억하기에 흡족한 요즘이다. 손바닥에 까만 씨앗을 받노라면, 하늘 우러러 울려 퍼지는 저녁노을 만종소리와 어머니의 고뇌에 찬 기도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온다. 넘어질 수 없는 오기가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야 했던 눈물겹던 지난 세월 저편에서, 코스모스길 뒷편 저 둥근 언덕길에서 나를 애타게 부르시던 어머니의 음성이 아직도 생생하다, 인고의 생애를 말없이 가슴만 때리며 평생을 침묵하시던 어머니! 이제는 날마다 그 산소 옆을 지나며 고해성사를 읊조려야 하는 나의 출근길에 아침부터 가을비가 내리는 날도 가끔 있다. 어느새 홍건이 취해버린 오래된 느티나무가 심장부터 타오르는 불꽃으로 수채화를 완성하고, 속 좋은 노인마냥 숨어서만 울던 파란만장한 긴 세월을 다 잊었다는 듯, 수많은 가지를 흔들며 축제를 열고 있는 요즘이다. 아슬아슬하게 추억 한알로 매달린 까치밥 몇 개가 다시 발걸음을 붙잡는다. 감나무 아래서 달큰한 홍시를 나눠먹던 그 동무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헤어지면 다시금 만날 날이 쉽지 않다는 것을 그땐 왜 몰랐을까! 어디선가 휘파람 부르며 금방이라도 불러줄 것만 같아서 자꾸만 뒤돌아 봐도 함께 걸어줄 사람 정녕 보이지 않는 고향의 가을길이다. 바람은 바람끼리 꽃잎은 꽃잎끼리 낙엽은 낙엽끼리 몸을 비벼대며 함께 놀자고 손짓을 할 뿐, 제 홀로 몸부림치며 씨름하는 추억들만이 파아란 가을하늘 아래 가득할 뿐이다. 고향길을 호젓이 거닐면서, 저마다의 가슴에 숨겨진 추억들을 그리워하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이렇게 눈물과 웃음을 번갈아 날리며 고향의 마술에 걸려 보았으리라. 우리가 이렇게 옛날이 그리워 몸살을 앓듯이, 먼 훗날 누군가가 또 이 길을 걸으며 지금 이 순간을 그리워하겠지... 동네 샛길로 달아나는 바람을 애써 잡아보려고 이리저리 용을 쓰는 시월 햇살이 윈도우에 눈부시다. 아직도 젊은 날의 생채기들이 남아있다면 저 황금 들녂위에 두루마리처럼 펴 널어서 보송보송 말리고만 싶어지는 넉넉한 가을햇살이다. 세상과 일상에서 쌓아 두었던 회한과 미움들이 마냥 부끄러워지면서, 모든 걸 정화하고 용서하고 싶어지는 마음 간절해진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비움과 채움의 교차로와도 같은 추수 풍경이 그림같다. 만선이 되면 다시 비워야 하는 우리네 삶의 어김없는 섭리처럼, 황금물결 위에서 씨름하며 막힘없이 소통되는 저 들녘바람처럼, 때로는 치유의 날개를 달고 훨훨 비상하는 저 철새처럼 한없이 자유인이길 갈망하는 우리들의 고향길! 마을 앞 갈대천에서 짝을 찾아 울어대는 산꿩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다시 눈물이 난다. 내게도 눈물이 날만큼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또 얼마나 위안이 되는 이 순간인지.... 천년을 지나도 늘상 가락을 지닌다는 오동나무 커다란 잎이 차량 윈도우에 떨어지며 햇살을 가리운다. 가을이면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잠 못 들게 하던 시몬의 낙엽이 눈물처럼 뚝 뚝 윈도우 위에 떨어진다. 가을은 점점 깊어만 가고 늦가을 나체들이 우수수 후루룩~~ 가득히 날리는 가을길에서 다시 가속페달을 밟는다. 저마다의 가을을 보내야하는 우리네 진부한 삶의 모습은 이렇게 늘 분주하다. 어느새 저녁노을 찬란한 서쪽 하늘로 해가 저물고, 어느덧 시간여행 사막삼장도 막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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