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틀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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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틀 무렵
  •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 승인 2014.09.1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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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눈을 뜨면 내게는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 되는 시간이다. 창문 쪽을 바라보아도 아직은 한밤인양 어둠에 묻혀있다. 얼마 있으면 날이 밝아오겠지만 아직은 고요한 미명이다. 밤이 길어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이 탓인지는 몰라도 예전에 비하면 잠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조금은 늦게 일어나는 경우도 가끔은 있지만 이때쯤이면 늘 잠에서 깨게 마련이다. 그리고는 직감으로 4시는 좀 넘었으리라고 생각하며 전등을 켜면 거의 틀림이 없다. 알람을 맞추어 놓은 것도 아니고 이때 꼭 일어나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이제는 습관처럼 된 듯하다. 누어있어 보았자 잠이 더 올 것도 아니고 쓸데없이 공상만 옥신각신 하며 오 갈 테니 세수를 한 다음 인터넷으로 새로운 뉴스는 없나 살펴보고는 날이 밝기까지 책을 읽는다. 날이 밝기까지래야 한 두 시간 남짓 하지만 그래도 이시간이 책 읽고 글쓰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요즘은 젊어서 읽었던 기억으로 전쟁과 잘못된 사상의 선택으로 불행한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들의 애련이 생각나서 박경리님의 “시장과 전장”을 다시 읽고 있는 중인데 몇 장 넘기지 않아서 날이 밝기 시작한다.
이렇게 동이 틀 때쯤 이면 창밖으로 가로 늘어진 전선줄엔 가끔 씩 참새 떼가 날아들고 비둘기 까치도 찾아와서 아침 인사를 하는가 하면 어느 날에는 이름 모를 길손들도 다녀가는데 그 중에 단골손님이던 비둘기가 보이지 않은지 꽤 여러 날이 되었다. 그 동안 먹고 살 곳을 찾아다니느라 바빴는지 아니면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한동안 보이지 않아 그냥 잊고 있던 놈들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그렇게 보이지 않던 비둘기 하나가 웬일로 날아와 앉더니 잠시 후에 또 다른 놈이 와서는 거리를 두고 앉아서는 서로 말이 없다. 한 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한 놈이 조금 다가가자 다른 놈이 물러나고 또 다가가면 또 물러나는 것을 보아 아마도 지난밤에 부부싸움을 한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그 동안 보이지 않던 것이 혹시 부부간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집안이 궁하면 부부 싸움을 하게 된다는데 가장이 가장 노릇을 하지 못한 탓인지 딴 짓을 한 탓인지 아니면 주부가 심통을 부리는 것인지는 몰라도 한 놈은 화가 단단히 나 있는 것 같다. 그러자 다가가던 놈이 돌아앉아서 나 있는 쪽읕 바라보며 무어라 하는 것이 화해를 시켜달라고 중재 요청을 하는 것 같아도 부부 싸움은 당사자들이 풀어야 할 문제이지 내가 나설 일은 아니기에 손사래 치고는 잠자코 있었더니 화가 난 놈이 날아가 버리고 곧바로 다른 놈도 뒤따라간다. 살다 보면 부부싸움도 하게 되기 마련이고 또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적당히 하면 활력소가 될 수도 있겠지만 골이 깊어지면 불행해지는 경우도 있으니 이들 비둘기 부부도 적당한 선에서 화해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다시 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비둘기는 부부 금슬이 좋다고 하였으니 아마 저들도 사랑싸움이겠지, 하면서도 가화 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교훈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부부도 가끔은 사소한 일로 다투게 되는데 어제만 해도 그랬다, 새집으로 이사를 했으니 전에처럼 밖에서 나무를 때어 쓸 수 있는 솥을 걸어 달라고 하여 하루 종일 벽돌을 쌓아 만들었더니 뒤늦게 아궁이가 작다고 투정이다. 그러기에 나는 괜찮다, 작다 하며 서로 우기다가 아내가 그만 심통이 나고 말았다. 대개의 경우는 내가 지고 말지만 이번 경우는 고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더니 아직도 새침 해 있는 것 같다.
이런 연유로 해서 그리고 한동안 보이지 않던 비둘기가 다시 찾아 와 준 반가운 마음에서 그들을 보며 잠시 쓸데없는 상상을 하였어도 공연히 즐거워진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이 이야기를 아내에게 하여 주면 어떤 말을 할까? 아마도 글거리 하나 또 생겼네, 하면서 웃겠지, 생각만 해도 재미있다. 오늘도 이렇게 재미있는 일들로 해서 즐거운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오늘의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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