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마루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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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마루의 추억
  • 이영란 종곡초등학교 교감
  • 승인 2014.08.2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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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이글거리는 한 여름은 운동장 끝의 해바라기도 더위에 지친 듯 고개를 숙이고 가을을 기다리며 씨앗을 더욱 알차게 영글도록 참고 있나보다. 바람 한 점 없는 오늘은 솔내음 꿈터의 소나무에서 매미의 울음소리가 방학에 아이들이 없는 공간을 대신 해 주고 있다.
울타리 너머 해바라기와 아침에 찐 옥수수를 보니 문득 어린 시절의 생각이 난다. 내가 중학교 시절까지 살았던 시골집은 방이 5칸이며 대청마루와 툇마루가 있는 꽤 큰집이었다. 여름에 대청마루나 툇마루에서 방학 숙제나 동화책을 보는 것은 행복과 희망을 심는 씨앗이 되었다. 그런 시골집에 여름방학이면 서울에서 꼬마 손님들이 10여명 내려와 열흘 동안 전쟁터를 방불케 하곤 했다. 우리 7남매의 교육은 부모님께 엄청난 경제적 어려움이었고, 7남매들은 조금이라도 학비를 보태거나 부모님의 일손을 도와 드려야 했다. 그래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오빠들은 나와 동생 또래인 아이들 개인교습을 하곤 했다. 그 당시에는 대학생들의 학비나 생활을 도와주기 위해서 개인 교습이나 또래 교습을 허락해 주는 시절이었다. 겨울방학은 시골이 추워서 어린 학생들이 시골체험을 할 수 없어 오고 싶어도 올 수 없었으므로 여름방학이면 10명의 5.6학년 머슴아 손님들이 20여 일 동안 시골 체험학습과 또래 교습을 하곤 했다. 시골 사는 나와 동생은 서울에서 온 선 머슴아들의 빨래, 운동화 빨기, 방 청소 해주기, 간식 차려 주기 등의 뒷바라지에 학교 다닐 때 보다 더 힘든 생활이었지만, 그 당시 시골에 내려왔던 이종사촌 동생과 세 명의 50대들이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배가 나온 중년의 폼으로 지난해 아들 결혼식에 축하하러 왔을 때는 그 누구보다 반갑고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였다. 까까머리 서울 머슴아들이 겪은 가장 인상 깊은 시골 체험은 지금도 해 보고 싶은 공동묘지 가기, 옥수수 따기, 개울에서 멱 감기, 툇마루에 앉아 달과 별 관찰하기, 모깃불에 감자 구워 먹기였다.
담력을 키운다는 핑계로 집에서 3km 떨어진 산속 공동묘지를 손전등만 갖고 포복하듯이 한 체험은 지금 생각 해 봐도 참 인상 깊은 체험이었다. 막내아들이었던 한 머슴아는 울면서 대학생인 오빠의 손을 놓지 못하고 징징 거렸던 일, 공동묘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밭에서 복숭아 서리하던 일(지금은 절대 하면 안 되며 복숭아나무가 있는 곳은 우리 밭이었음)을 생각하면 역시 시골의 추억은 인생의 양념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매일 오후 1시에서 4시까지 앞 도랑 항건천에서 하는 멱 감기는 서울 머슴아들은 좋지만, 빨래와 운동화를 빨아야 하는 우리에게는 최악이었다.
이런 추억과 더불어 무더운 여름이면 생각나는 대청마루의 고마움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엄청난 무더위에 대청마루의 뒷문을 열고 앉아 있으면 지금의 에어컨에 비교 할 수 없는 시원한 자연 바람이 나의 고단함을 씻어 주고, 누워서 읽는 동화책의 즐거움은 자연바람과 함께 낮잠을 즐길 수 있는 행복의 열매를 제공해 주었다. “산바람 강바람‘의 동요가 절로 흥얼거려졌다.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 학교 다니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인 나에게 대청마루의 바람과 함께하는 한 권의 동화책은 요즈음 책이 흔한 세대에서 느낄 수 없는 행복이고 만족감이었다.
갑자기 고향집과 대청마루가 그리워진다. 삐거덕거리는 대청마루의 뒷문을 열면 마음까지 시원하고 지금 내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가 속 시원히 풀릴 것 같다. 우리 친정어머님은 집 뒷마당에 갖은 채소를 가꾸어 봄부터 가을까지 반찬과 간식을 해결 해 주셨다. 주렁주렁 달린 오이와 내 팔뚝만한 옥수수는 하교 후의 최고의 간식이었고, 주먹만 한 토마토는 아버님의 건강식이었다. 그리고 보랏빛과 하얀 빛이 어우러진 도라지는 여름에는 대청마루의 정원이었고, 겨울에는 도시락 반찬으로 요긴하였다. 아! 우리 어른들은 이렇게 추억을 머금고 사는가 보다. 앞날보다 지나간 날이 많은 우리들은 아름다운 추억에 밝은 미래를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100세 시대의 바른 삶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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