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
상태바
꽃샘추위
  •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 승인 2014.03.13 08: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동안 포근하던 날씨가 다시 쌀쌀해 지더니 눈도 내렸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엿보다가 의례히 한두 번 씩은 찾아와야 하는 꽃샘추위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꽃샘추위는 한겨울의 강추위보다도 더 춥게 느껴질 때가 있다. 우수 경칩 때 김칫독 깬다고 늦추위가 매서울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어느새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봄기운이 꽃샘추위의 시샘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언 땅에서도 싹을 틔우는 강인함이 있고 겉옷을 벋게 하는 온화함도 있는 봄이지만 이렇듯 꽃샘추위의 시샘에 떨고 있는 것을 보면 봄은 역시 여인의 마음처럼 여린가 보다. 그래서 봄을 여인의 계절이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따사로운 봄빛은 어느새 여인의 순정처럼 포근하게 내게 다가온 것이다.
꽃샘추위란 이름은 예쁘지만 불청객이라서 반가워 할 이 없으니 오래 머물지 않고 곧 떠나기는 하겠지만 그래서 봄기운이 이렇게 떨고 있는 것도 잠깐이겠지만 그러나 길목에서 비껴서고 싶지 않은 마음에 심술을 부리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심술이라는 놈은 원래가 고약한 것이라서 평상시에는 감추어져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고 있지만 언젠가 발동을 하게 되면 상대를 괴롭게 하는데 그 기세등등하던 동장군도 패전 장수처럼 그렇게 쉽게 물러날 수만은 없을 터이니 봄기운에 밀려 쫓겨 가다가도 뒤돌아보면 심통이 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다. 기지개를 켠 봄 길잡이가 이제 곧 싹을 내고 잎과 꽃을 피우면 모두가 마음을 주고 반길 터이니 어찌 겨울의 심술보가 가만히 있을 수 만 있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놀부처럼 온갖 심술이 가득한 심술보가 있어 그런 것도 아니고 천지조화 삼라만상의 이치에 따라 찾아오는 남쪽 손님을 반기는 사람들의 마음에 시샘을 느껴 살짝 부려보는 심술이라면 그런대로 참아주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조금 염려스러운 것은 가는 겨울의 시샘이 너무 심해서 과수나무의 꽃눈을 얼게 하여 꽃을 피우지 못하게 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다.
어느 해인가 그때도 그랬다. 꽃샘추위의 시샘이 너무 심해서 꽃눈을 얼게 하고 과수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여 과수 농가의 애를 태운 일이 생각난다. 과수농사가 흉년이 들면 농가는 물론이지만 그 여파로 과일 값이 오르게 되고 그러면 사서 먹어야 하는 소비자들에게도 부담이 되니 봄기운에 심통이 난 꽃샘추위의 지나친 시샘은 그 해 뿐 아니라 다음 해까지도 이어져 사람들에게서 미움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꽃샘추위의 심술도 조금이면 그러려니 하고 재롱쯤으로 여겨 그냥 넘길 수 있겠지만 지나치면 사람에게도 커다란 괴로움을 주기 때문에 금년 꽃샘추위는 이렇게 이번이 마지막으로 끝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내 마음 속에 있는 봄의 전령도 미움 없이 너그럽게 보내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그래, 그런 마음으로 보내주자. 그래도 심술이 남아 꽃샘추위가 다시 찾아온다 해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달래서 보내주는 것이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란 생각이다. 내가 세상을 살면서도 이런 마음으로 사는 것이 도리 인 것처럼, 그런데 어쩌랴, 그런 줄 알면서도 그렇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걱정 일 수밖에 없다.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봄기운도 떨고 있는 야속함 때문에 꽃샘추위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보내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좀 더 배우려 한다. 봄날처럼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평안의 기쁨을,
외동 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전화를 했다. 내게는 늦둥이 손자라서 입학식에 가보려고 생각은 했으나 어떤 일로 가지 못해서 조금은 미안한 마음에 축하를 한다고 하였더니 대뜸 하는 소리가 할아버지 학교에 가기 싫어요, 학교에 안 가면 안돼요? 한다. 그래서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처음 유치원에 갔을 때처럼 새로운 변화에 대한 탓인 듯, 하여 달래 주었더니 곧 바로 잘 다닐게요, 한다.
아마도 학교에 가기 싫다는 손자 아이의 마음도 꽃샘추위처럼 오래이지는 않고 곧 봄날처럼 될 것이다.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