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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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계절
  •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 승인 2013.09.12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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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엔 예정이 없던 집을 새로 짓게 되었다. 건축업자에게 아주 맡겨버리면 편하기는 하겠지만 있는 집을 그대로 두고 옆에다 짓는 것이기 때문에 급하게 서두를 것도 없고 또 그러면 돈도 많이 들 뿐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도 있을 것 같아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나도 건축에 대해서는 조금은 알고 있기에 내가 직접 하기로 하고 자재를 조달하고 인부를 섭외하여 줄 분을 고용해서 일을 하고 있는데 어제부터는 철근 콘크리트와 단열재로 골격을 세워 놓은 외부에 벽돌을 쌓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조적 공 중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분이 오른 손 손목이 없는 장애인 이었는데 그 부분을 수건으로 감아서 벽돌을 들어 올리며 왼손 하나로 일을 하는데 아주 능수능란하여 오히려 정상인들보다도 잘 하고 있었다. 건축 현장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은 대체로 아침 7시 부터 일을 시작하기 때문에 그러자면 새벽같이 일어나 집을 나서야 함으로 늘 피곤함이 남아 있기 마련이란다. 그래서 오늘 이침엔 커피를 끓여서 한 잔씩 드리며 어떻게 해서 오른손을 잃게 되었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더니 어려서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사고로 잃게 되었다고 한다. 젊어서라 하지 않고 어려서라고 했다.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을 하지만 듣는 나로서는 어쩐지 마음이 찡하게 저려 온다. 장애인들은 동정은 하지 말고 배려 해 주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그래도 어려서부터 산업 전선에 뛰어 들어야 만 했던 그의 처지를 생각 해 보면 이제까지 살아 온 그의 삶의 여정도 순탄치 못 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동정이 가면서도 그래도 열심히 살아왔을 그가 존경스럽기도 하였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다고 하였더니 “다 먹고 살기 위 해선데요 뭐, 식구들 먹이고 애들 가르치려면 아무 일이 든 해야지 별 수 있나요” 하고는 씩 웃는다.
어저께는 손아래 동서가 회갑을 맞는 날이었다. 청주 어느 식당에서 가족과 가까운 친지들이 함께 모여서 축하 예배를 드리고 점심 식사를 하였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그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살아 온 세월을 사랑하고 존경해야 한다고 말 해 주었다. 모두가 그러하지만 동서는 정말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한 사람이다. 젊어서 지금까지 가정 밖에는 모르고 살아 왔고 회사에서 퇴직한 후에는 좀 쉬었다 해도 될 터이지만 퇴직 하자마자 곧바로 개인택시를 인수하여 새벽부터 저녁 늦도록 까지 일하면서 한결같이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다. 지금도 쉬는 날에는 집안 청소는 물론 설거지 빨래까지도 다 한다는데 처제가 하지 말라고 성화를 하여도 막무가내란다. 흔히 말하는 팔불출이라 할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가정을 사랑한 사람이기에 그의 삶을 존경하고 사랑하라 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수고하여 땀 흘림으로 먹고 사는 것이 창조주의 뜻이며 살아가는 원리이기에 노동의 가치가 귀한 것이고 모든 사람의 의무이기기도 하여 일을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하겠지만 정상인들도 꺼리는 힘든 일을 한쪽 손을 잃은 사람이 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가 하고 있는 일에 나도 옆에서 벽돌을 하나하나 집어주면서 이 사람의 노동 가치는 보통 사람들의 몇 배 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는 일을 하면서도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동료들과도 농담을 하며 대화도 끊이질 않는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렇게 재미있게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대답하는 말이 엉뚱하게도 “가을이잖아요 가을은 슬픈 계절이니 일이라도 재미있게 해야 지요” 한다. 대답이 너무 뜻밖이라 왜 가을을 슬픈 계절이라고 하느냐 하였더니 이제 머지않아 낙엽이 지면 보고싶은 사람이 생각 날 텐데 왜 슬픈 계절이 아니냐고 하여 무슨 사연이 있는 듯도 싶지 만 더 묻지 않고 너무 낭만적이라 하였더니 그 도 웃으며 낭만은 좋은거유 하면서 내가 벽돌을 쌓아 드리는 이 집에서 건강하게 오래도록 살란다. 나도 고맙다고 하면서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인데 오늘 당신의 이야기를 소재로 글을 쓰고 싶다고 하였더니 어쩐지 말씀 하시는 것이 다르다 했는데 기왕이면 멋지게 써달라고 한다.
어려서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한 쪽 손을 잃었다면 짐작컨대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 했을 것이고 성장하면서는 비관이나 좌절도 많았을 테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있는 불운을 떨쳐버리고 꿋꿋이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바로 인간 승리 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분의 앞날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루하루가 행복한 삶으로 이어 지기를 기원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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