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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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
  • 김정범 내북면노인회장
  • 승인 2013.08.14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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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농장을 노년의 취미로 삼아 가꾸고 있는 형님이 얼마 전에 작업 중 허리를 다쳐서 며칠을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며칠 동안 농장 관리를 맡게 되었는데 나는 야생화에 대하여 별로 아는 것이 없어서 농장을 관리 한다는 것은 말이 그렇지 그저 하우스 문이나 환기 장치를 개폐 하는 것이 전부이고 그보다는 농장에 있는 강아지들과 고양이 그리고 고라니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이었다.
형님은 개와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을 좋아 하여서 농장에서 늘 몇 마리씩을 기르고 있는데 고라니 새끼가 농장 식구가 된 것은 열흘 쯤 전에 마을 어느 분이 아침 일찍 들에 나갔다가 농수로에 빠져 죽을 지경에 처한 놈을 보고 야생화농장으로 데리고 와서 형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맡아 기르게 되었는데 처음에 형님이 내게 전화로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와보라고 하기에 가보았더니 형수는 이 어린 것을 어떻게 기르겠느냐며 도로 산에 놓아주라고 하였고 나도 산에 놓아주면 죽게 될 터이니 차라리 동물 보호 단체에 연락하여 보내주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형님은 그래도 며칠 우유를 먹여 보다가 여의치 않으면 그 때 어떻게 하더라도 우선은 무얼 먹이는 것이 급하다며 이내 우유를 사다가 먹이기 시작 하였다. 너무 어린 까닭에 사료나 풀을 먹일 수 없어서 우유를 먹이게 되었는데 이놈이 입맛도 까다로워서 그 후로는 처음부터 제가 먹던 우유가 아니면 다른 것은 먹으려 하지를 않는다. 그렇게 되어 아침저녁으로 어린아이와 같이 젓 병에 우유를 타서 먹이는데 한 병을 다 먹고도 양이 차지 않는지 젓 병을 물고는 놓으려 하지 않는다. 딱한 생각에 좀 더 주고 싶어도 많이 먹이면 안 된다는 형님 부탁도 있고 하여 더 줄 수도 없어서 나도 젓 병을 놓지 못하고 있노라면 아쉬워하며 바라보는 검은 콩처럼 작은 두 눈동자가 내게서 연민을 발동 시키고 만다. 만일 어미를 잃지 않았다면 지금쯤 산이나 들에서 마냥 자유롭게 뛰어다닐 놈이 제 몸집 보다 조금 큰 우리에 갇혀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외로울까 싶은 마음에 손을 내밀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애무해 주었더니 이놈도 곧 반응을 보이며 입으로 손을 핧고 머리를 숙이며 다가온다. 몸집에 비해 나무젓가락처럼 가늘고 긴 다리가 앙증맞기도 하지만 어떻게 이 가는 다리로 그처럼 잘 달릴 수 있을까 싶어 신기하기도 하였다.
고라니는 원래가 야성이라서 혼자서 생활하기를 좋아하여 동류라도 잘 어울리지를 않고 더욱이 사람에게는 기척만 들려도 천적을 만난 것처럼 도망 가버리는데 이놈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처럼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며칠 동안 길들여서인지 사람이 다가 가면 우리에서 나오려고 하며 반가워 한다. 그러나 반가워서라기보다는 먹이를 달아는 뜻이 더 하겠지마는 짐승은 짐승다워야 하는데 본성을 잃고 산다는 것은 어째든 불행한 일일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가엽다는 마음이 앞선다. 그리고 아무리 야성이 강한 짐승이라도 사람에게 길들여지면 정말 그 야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일까라는 생각에 서커스단의 맹수들을 떠올려 본다.
사슴과에 속하는 노루나 고라니 하면 우선 착하고 순한 짐승으로 여겨져서 사람들은 대체로 싫어하거나 미워하지를 않는다. 예외로는 농작물에 피해를 주어서 농민들에게 미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본성만은 착한 놈들이어서 늑대나 여우처럼 두려운 존재가 아닌 것만큼은 분명 하다.
운전을 하다 보면 가끔은 도로에서 차에 치어 죽은 고라니를 보면서 왜 도망가지 못하고 차에 치어 죽을까 하고 이해하지 못하였는데 작년 가을에 실제로 그 숙제를 풀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서울에 있는 친구가 속리산엘 가려고 왔다며 함께 가자고 하여 속리산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문장대에 올랐다 내려오니 늦은 시간이 되어서 전조등을 켜고 돌아오는데 갑자기 시커먼 물체가 앞을 가로막아서 급제동을 하고서 자세히 보니 고라니가 전조등 불빛을 바라보고 서서 도망가지 않기에 비상등을 켜고 전조등을 끈 후 경적을 울리고 전조등을 다시 켜니 그제야 도망가고 있었다. 전에 들은 이야기 이지만 고라니는 밤에 불빛과 마주치면 달아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제 지금 이 순간 이 고라니 새끼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앞으로 좀 더 자라면 야생으로 돌아가 아무쪼록 짐승 본래의 삶을 살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김정범 내북면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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