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보은국도에서!
상태바
아름다운 보은국도에서!
  • 회남초등학교 교감 김종례
  • 승인 2013.04.18 15: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년 삼백예순날 아침저녁으로 똑같은 길을 달리는 출퇴근길은 누구에게나 커다란 의미가 있는 하루의 일과이다. 어느 날은 권태로움에 멀리 고속도로로 돌아도 다니지만, 그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출퇴근길은 동정호를 지나 넘나드는 꼬부랑 수릿티재와 대청호 가로수길이다. 그리도 폭설이 잦았던 지난겨울에도 한 번도 눈이 쌓여 넘지 못한 날이 없었던 수릿티재, 남이 편안히 새벽잠을 잘 때 꼭두새벽에 고개를 넘나들며 제설작업에 여념이 없던 분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 여름철이면 길가로 뻗어 나오는 잡풀이 자랄 겨를도 없이 언제나 깔끔하고 단정하게 손질해 주는 누군가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도 그 분들을 본적은 없지만, 날마다 수릿티재를 넘나들며 제설장비와 싸리비, 낫자루를 든 노인들의 손길을 피부로 느끼며 감사의 마음에 젖기도 하는 길! 4월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나의 출퇴근길은 정녕 심심치가 않다. 해마다 제일 먼저 잎을 틔우는 것은 언제나 능수버들인데 가지마다 연한 연둣빛으로 출렁거리는 버드가지를 바라보며 마음까지 파도치는 봄을 맞게 된다. 연한 연둣빛이 점점 짙어가면서 마음이 다시 틈실해 질 무렵이면 수릿티재의 연한 연분홍빛이 다시 내 눈을 사로잡고 마음을 에워 쌓는다.
어? 진달래네! 어머나 네가 벌써 피어나다니... 아침 안개에 둘러싸인 동정 호수를 끼고 한 모롱이 돌아갈 때, 급기야 연한 미소를 머금은 진달래가 출근길의 나를 막아선다. 어제저녁 퇴근길에도 뵈지 않던 얘들이 너무 반가워서 자동차를 파크하고 한참 올려다보며 마중하였다. 갓 시집 온 새아씨처럼 수줍은 빛으로 하느적거리며 제 홀로 흔들리고 있는 중이었다. 어젯밤 망령든 꽃샘추위 속에서 신열을 곰삭이며 밤을 지새웠는지 연한 연분홍빛이 눈물 날만큼 가냘픈 기색이다. 진달래는 이 4월에 이산 저산 지천으로 피어나 산모롱이 바위틈마다 올망졸망 숨어서는 이 민족을 밝혀 주던 동학의 숨결마냥 혼불이 되어 활활 타오를 것이다. 그리고 며칠 전 어느 날 밤, 춘삼월도 아닌 춘사월에 눈이 소복이 내렸다. 아침도 대충 챙기고 설중매라도 볼 양으로 나는 급하게 수릿티재로 올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수릿티재에 펼쳐진 2월의 설중매보다도 더 짜릿한 광경! 연한 연둣빛의 버드나무 가지에 수정처럼 매달린 눈꽃, 백설의 눈꽃사이에서 핀 노오란 개나리, 눈꽃 사이에 핀 연분홍 진달래가 오금을 못 펴고 바르르 떨면서 버티고 있는 설경은 과연 장관이었다. 일장춘몽을 잡으려는 듯한 동정호 안개와 무언가 아쉬워서 선뜻 의자를 비우지 못하는 눈꽃들에 휩싸여 설중화가 몸살을 앓고 있는 여기가 바로 인간이 갈구하는 파라다이스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보은 25번 국도는 이름답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드디어 대청호 가로수 길에도 벚꽃이 피어나기 시작하였다. 와! 벚꽃이다~~ 대청호 산모롱이 돌때마다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석양을 배경으로 눈부시게 난무하는 벚꽃을 바라보며 퇴근을 하였다. 오랜만에 환경지킴이 조끼를 입은 노인의 얼굴도 활짝 펴지고, 소녀들의 신선한 미소가 꽃잎과 어울려 더욱 상큼해 보인다. 유모차에 누운 아기의 까만 눈동자 속에서 연분홍 꽃잎은 나비가 되어 너울너울 춤을 춘다. 천상을 나르는 아기나비가 된 듯이 낯선 내게조차 연신 방긋이 웃는다. 대청호 가로수 벚꽃이 잠시의 몽환으로 왔다가 서러운 몸짓으로 돌연히 꽃비를 뿌릴 무렵이면 나의 출퇴근길 수릿티재는 다시 한바탕 화려한 잔칫날이 재연될 것이다. 나 여기 있으니 가로수 벚꽃이 진다고 너무 안타까워도 슬퍼하지도 말라는 듯, 산 벚꽃이 올해도 손짓을 해대며 고개를 넘는 이들 앞에 흩날릴 것이다. 대청호 가로수 벚꽃이 손을 내밀면 언제라도 포근하게 다가와 안기는 새아씨라면 수릿티재 산 벚꽃은 다가갈 수 없어 더욱 아름답고 애처러워 보이는 첫사랑이라고 하는 게 딱 어울리는 4월의 하모니! 매스컴을 타고 날아오는 산 넘어 남촌의 꽃소식들로 저녁밥상이 훈훈한 요즘이지만, 수릿티재와 벚나무 가로수길을 달리는 나의 출퇴근길 보은국도보다 어찌 더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랴! 고목나무에도 꽃이 필 듯, 삭정이에도 잎이 필 듯한 보은 25번 국도에서 나도 어느새 한 마리 나비가 되고 한 송이 꽃이 되어, 호수와 산과 사람의 가슴까지 꽃 그림자 물드는 4월을 오늘도 힘차게 달린다. (끝)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