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진달래네! 어머나 네가 벌써 피어나다니... 아침 안개에 둘러싸인 동정 호수를 끼고 한 모롱이 돌아갈 때, 급기야 연한 미소를 머금은 진달래가 출근길의 나를 막아선다. 어제저녁 퇴근길에도 뵈지 않던 얘들이 너무 반가워서 자동차를 파크하고 한참 올려다보며 마중하였다. 갓 시집 온 새아씨처럼 수줍은 빛으로 하느적거리며 제 홀로 흔들리고 있는 중이었다. 어젯밤 망령든 꽃샘추위 속에서 신열을 곰삭이며 밤을 지새웠는지 연한 연분홍빛이 눈물 날만큼 가냘픈 기색이다. 진달래는 이 4월에 이산 저산 지천으로 피어나 산모롱이 바위틈마다 올망졸망 숨어서는 이 민족을 밝혀 주던 동학의 숨결마냥 혼불이 되어 활활 타오를 것이다. 그리고 며칠 전 어느 날 밤, 춘삼월도 아닌 춘사월에 눈이 소복이 내렸다. 아침도 대충 챙기고 설중매라도 볼 양으로 나는 급하게 수릿티재로 올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수릿티재에 펼쳐진 2월의 설중매보다도 더 짜릿한 광경! 연한 연둣빛의 버드나무 가지에 수정처럼 매달린 눈꽃, 백설의 눈꽃사이에서 핀 노오란 개나리, 눈꽃 사이에 핀 연분홍 진달래가 오금을 못 펴고 바르르 떨면서 버티고 있는 설경은 과연 장관이었다. 일장춘몽을 잡으려는 듯한 동정호 안개와 무언가 아쉬워서 선뜻 의자를 비우지 못하는 눈꽃들에 휩싸여 설중화가 몸살을 앓고 있는 여기가 바로 인간이 갈구하는 파라다이스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보은 25번 국도는 이름답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드디어 대청호 가로수 길에도 벚꽃이 피어나기 시작하였다. 와! 벚꽃이다~~ 대청호 산모롱이 돌때마다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석양을 배경으로 눈부시게 난무하는 벚꽃을 바라보며 퇴근을 하였다. 오랜만에 환경지킴이 조끼를 입은 노인의 얼굴도 활짝 펴지고, 소녀들의 신선한 미소가 꽃잎과 어울려 더욱 상큼해 보인다. 유모차에 누운 아기의 까만 눈동자 속에서 연분홍 꽃잎은 나비가 되어 너울너울 춤을 춘다. 천상을 나르는 아기나비가 된 듯이 낯선 내게조차 연신 방긋이 웃는다. 대청호 가로수 벚꽃이 잠시의 몽환으로 왔다가 서러운 몸짓으로 돌연히 꽃비를 뿌릴 무렵이면 나의 출퇴근길 수릿티재는 다시 한바탕 화려한 잔칫날이 재연될 것이다. 나 여기 있으니 가로수 벚꽃이 진다고 너무 안타까워도 슬퍼하지도 말라는 듯, 산 벚꽃이 올해도 손짓을 해대며 고개를 넘는 이들 앞에 흩날릴 것이다. 대청호 가로수 벚꽃이 손을 내밀면 언제라도 포근하게 다가와 안기는 새아씨라면 수릿티재 산 벚꽃은 다가갈 수 없어 더욱 아름답고 애처러워 보이는 첫사랑이라고 하는 게 딱 어울리는 4월의 하모니! 매스컴을 타고 날아오는 산 넘어 남촌의 꽃소식들로 저녁밥상이 훈훈한 요즘이지만, 수릿티재와 벚나무 가로수길을 달리는 나의 출퇴근길 보은국도보다 어찌 더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랴! 고목나무에도 꽃이 필 듯, 삭정이에도 잎이 필 듯한 보은 25번 국도에서 나도 어느새 한 마리 나비가 되고 한 송이 꽃이 되어, 호수와 산과 사람의 가슴까지 꽃 그림자 물드는 4월을 오늘도 힘차게 달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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