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안드레와 사소한 짓거리로 정이 들어가면서 가을이 가고 또 겨울이 왔다.
날씨가 추워지자 남편과 나는 얘를 어디다 재울 것인가를 두고 다시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60년대 새마을 운동 당시 스레트 지붕으로 지은 구옥의 구조는 작은 방1, 주방 겸 방이 1,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해 주는 통로인 마루가 있다. 마루도 바깥이나 별 다를 바는 없지만, 한대보다는 아늑하지 않을까 싶어서 한번 들여놨다가 남편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철물점에 가서 개집을 하나 사다 주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플라스틱 호텔에는 한 번도 들어가지를 않는다. 억지로 쑤셔 넣고 출입구를 돌멩이로 꽉 막아도 금새 지붕을 날려 보내고 성난 들짐승처럼 기어 나오곤 한다. 몇 날을 씨름 하다 할 수 없이 뜰팡 옆 오망한 구석지에 박스를 놓고 수건을 깔아 주었다. 작은 몸 하나 딱 들어갈 만한 공간인지라 안드레는 언제나 몸을 작게 옴츠려서 동그랗게 말은 후, 얼굴을 꼬리에 박고 잠을 자는데 위에다 박스로 지붕을 만들어 줘야 잠이 들곤 하였다. 아마도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잃은 터이라 아늑하고 어둡고 좁은 공간을 좋아하는 기질이 된 것 같다. 한번 얼굴을 박으면 번개 천둥이 치거나 고드름 떨어지는 소리가 굉음을 내어도 아침까지 요지부동 일어나지 않다가, 새벽이 되어 내가 신발 찾느라 부시럭대는 소리에 깨어나 뜰팡으로 기어 나와 스트레칭을 한다. 그것도 앞다리 한번 쭈욱, 뒷다리 한번 쭈욱, 골고루 운동을 하는 것이 하도 신기하여 티브이에서 간혹 보던 동물 수련사 마냥 훈련을 시켜가기 시작하였다. 엄동설한 바람이 매서운 겨울에는 자다가도 몇 번씩 문을 열어보게 하는 날짐승 안드레! 동물을 딱 질색하며 인정머리 없던 내게 따스한 마음을 선물하였고,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우주 섭리의 양면성의 이치도 깨닫게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일찍 깨어난 김에 새벽기도를 가려고 문을 나서려는데 뜰팡에 있던 신발이 보이지 않는다. 시간은 자꾸만 다가오는데 따뜻하고 편한 부츠 한 짝이 없어서 기도회를 못 갔던 일이 있었다. 오후에 퇴근을 하고 보니 잃었던 신발이 제자리에 와 있어서 깜짝 놀라 이웃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아본즉, 신발을 물어 간 것은 옆집 강아지였고 제자리에 가져다 놓은 것은 우리 집 고양이란다. 이렇게 신기하고 기이한 묘기 대행진이 자주자주 사람을 감동시키고 웃음을 선물하는 나날이었다. 결초보은(結草報恩), 한낱 날짐승인데도 저를 거두어 준 주인을 이렇게나마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런지...... 날마다 먹이를 거두어 주는 제 주인을 위해 이렇게나마 밥값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 아닐런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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