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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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저녁에
  • 김정범 내북면노인회장
  • 승인 2012.10.11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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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이렇게 깊어만 가는 가을밤에는 나도 모를 상념들이 찾아와 왠지 마음을 산란케 한다. 호수 같은 하늘에 떠돌던 조각구름이 어둠에 묻혀 버리고 여정도 없이 떠돌던 바람이 뜰에 머물다 떠나가면 담 밑 외진 곳에 홀로 서 있는 맨드라미는 핏빛과도 같았던 그 정열을 잃은 채 찬 이슬에 젖어야 할 이 밤의 고독을 떨리는 몸짓으로 서러워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이제는 벌레들의 울음소리도 들리지를 않는다. 무슨 사연이 있어 밤을 새워가며 그렇게 울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차가운 이 가을의 긴 밤을 서러워하며 울어야 할 그들의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제껏 내가 세상을 살아오면서 내 인생이라는 삶 속에 주어진 힘겨운 사연들로 인하여 긴 밤을 괴로워했던 지난날들의 그 많은 시간들처럼 저들도 이 가을밤에 울어야 할 사연들이 있었겠지 싶기도 하지만 가을로 가득 찬 하늘의 별을 헤던 시인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이라 했는데 그러고 보면 정말 내 이름이 부끄러워 내게 다가와 그렇게 울어주고 갔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까지 내가 살아오는 동안 남들에게 또는 내가 내게 부끄러운 일들이 얼마였는지를 돌이켜 보면 정말 부끄럽다는 생각에서 어찌 저들이 밤을 새워 울어주지 않았으랴 싶기도 하다.
열려 있는 창으로 서쪽 하늘에 별이 구름 사이로 보인다. 문득 이 가을날 저녁의 밤하늘이 보고 싶은 마음에 집 앞에 나와 하늘을 보노라니 오랜만에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들이 참으로 아름답다. 구름이 조금은 심술을 부리기도 하지만 언제 이렇게 많은 별들이 하늘을 채우고 있었나 싶기도 하고 무엇이 바빠서 잃어버리고 있었나 싶기도 한 것이 꼭 나를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 만 같다. 별을 보면 제일 먼저 찾아보게 되는 것은 언제나 길잡이가 되어주고 자리가 변하지 않는다 하여 사람들도 그런 사랑을 원한다는 북극성이다. 마음씨 착한 소녀의 전설이 담긴 북두칠성이나 허영심 많은 에티오피아 왕비의 이야기가 있는 카시오페아도, 그리고 다른 별자리도 생각나는 대로 찾아본다. 멀리 남쪽 끝에서는 이름 모를 별 하나가 내게 손짓을 하고 있다.
예전에도 이때 쯤 저녁이면 마당에 앉아서 하늘 높이 떠있는 벌들을 바라보기를 좋아 하였다. 서늘한 바람이 마당을 쓸고 지나가고 하늘 높이 별들이 총총 떠 있을 때면 별자리를 찾아보며 별들의 이야기나 전설들을 떠올리곤 하였는데 어쩌다 유성이 흐르면 저별은 어디로 누구를 찾아가는 것일까? 혹시 맑은 영혼이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길을 저 별이 안내 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고 길게 뻗친 은하수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바라보며 저 은하수가 입에 와 닿으면 쌀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한 어른들의 말을 떠올리고는 빨리 은하수가 입에 와 닿기를 기다리기도 하였었는데 어느새 그 은하수가 정말 입에 와 닿아 있다. 특히 뤼브롱 산위에서 홀로 양을 치는 목동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만 사모하는 주인집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식량을 전 해 주기 위해 노새의 방울 소리를 울리며 목장에 왔다가 갑자기 내린 소나기로 인하여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되자 밤늦도록 모닥불을 피워 놓고 별을 보며 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자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든 아가씨의 얼굴을 행복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혹시라도 깰까봐 그대로 밤을 새운 알퐁스 도오데의 목동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생각하면서는 나도 모르는 그리움에 애태우며 밤을 새우던 때도 있었던 것 같다.
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눈을 감을 본다. 이제 황금물결을 이루고 추수를 기다리는 그 들판을 지나 내게 다가온 소슬바람에는 이 가을 저녁 별들의 밀어가 있고 옛이야기가 있다.
석양에 황혼이 곱게 물들었다가 어둠이 내릴 무렵이면 집집마다 초가지붕 위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부엌에 저녁상을 차려 놓은 아내는 아기를 안고 사립문 밖에 서서 하루 일을 마치고 밭에서 소를 몰고 돌아올 임을 기다리는 아낙의 설레임에는 소박한 행복이 찾아들고 밥상을 마주하고 하루의 일들을 서로 이야기 하노라면 옹달샘처럼 솟아나는 사랑의 기쁨, 그리고 마루 끝에 앉아서 하늘을 보며 별들과 이야기를 나누노라면 이야기 마다 수많은 전설이 찾아와 열리고 그럴 때면 언제나 뒷문 밖 커다란 굴밤나무에서는 부엉이가 찾아와 울어주던 밤, 이제는 이 모두가 내 마음의 고향이기에 그 마음의 자리에 만 남아 있어 그리움 또한 그 머물고 있는 마음의 자리로 만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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